청각장애 아이돌을 세계적 K팝 스타로…차해리 대표의 ‘발버둥’

[임팩트를 짓다] 차해리 파라스타엔터테인먼트 대표
진동·AI 훈련으로 무대 장벽 낮추고 해외 진출

“단순히 좋은 일을 하기 위해 장애인 아티스트를 제작한 것이 아닙니다. 이 분야가 반드시 성장할 수밖에 없다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지난 20일 서울 강남구 파라스타엔터테인먼트 사무실에서 만난 차해리 대표는 장애인 아티스트 전문 기획사를 운영하게 된 계기에 대해 이같이 설명했다. 장애 아티스트에게 재능이 없었던 것도, 이들을 찾는 방송·광고 수요가 없었던 것도 아니다. 밀려드는 제안을 검토하고 출연료를 협상하며 일정을 관리해 줄 ‘전문 중개자’가 없었을 뿐이다. 차 대표는 바로 그 빈틈에서 사업 기회를 포착했다. 사회문제를 해결하면서도 시장에서 수익을 내는 엔터테인먼트 모델을 만들 수 있다고 판단했다.

2020년 설립된 파라스타는 장애 아티스트 전문 엔터테인먼트 기업이다. 청각·시각·뇌병변·지체장애를 가진 가수, 배우, 모델, 댄서 등 약 40명이 소속돼 있다.

◇ 에이전시에서 K팝 기획사로  

차 대표가 처음 장애 아티스트 시장을 눈여겨본 것은 2018년이다. 아나운서 출신인 그가 서울패럴림픽 30주년 행사의 사회를 맡으며 만난 선수들은, 미디어에 으레 그려지는 ‘도움을 기다리는 어두운 모습’과 달리 누구보다 건강하고 매력적이었다.

결정적인 계기는 2021년 도쿄패럴림픽을 앞둔 시점이었다. “에이전시가 없어 광고나 후원 제안을 놓친다”는 선수들의 토로가 이어졌다. 실제로 유명 기업의 제안이 소셜미디어 메시지함에 방치되는 경우가 허다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차 대표는 파라아이스하키 국가대표팀 한민수 전 감독과 뜻을 모아 2020년 파라스타를 창업했다.

초기에는 장애인 스포츠 선수들을 비롯해 모델, 가수들의 방송과 광고를 연결하는 에이전시로 출발했다. 휠체어 이용자의 욕창이나 화상장애 아티스트의 건강 악화를 단순한 ‘스케줄 펑크’로 취급하지 않도록 계약서부터 뜯어고쳤다. 촬영장의 휠체어 접근성을 사전 점검하고 수어 및 문자 통역을 지원했다. 차 대표는 “‘장애인 아티스트와 일하기 어렵지 않을까’ 하는 업계의 우려를 불식시키는 데 주력했다”고 했다.

하지만 수수료 기반의 에이전시 모델만으로는 성장에 한계가 있었다. 기존 아티스트의 출연을 중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대중성과 확장성을 갖춘 IP(지식재산권)를 직접 기획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가 택한 돌파구는 ‘K팝 아이돌’이었다. 명확한 콘셉트와 퍼포먼스를 기획해 단기간에 세계 시장을 겨냥할 수 있기 때문이다. 1년 반의 훈련을 거쳐 김지석, 박현진, 이찬연으로 구성된 청각장애 남자 아이돌그룹 ‘빅오션’이 탄생했다.

파라스타는 남은 투자금을 빅오션에 모두 쏟아부었다. 통장 잔고가 바닥을 보일 무렵, 수십 개 기획사의 매니저가 모이는 방송사 피칭 자리에 찾아가 음악방송 관계자들을 설득했다. 그 결과, 빅오션은 2024년 4월 20일 장애인의 날에 한 공중파 음악방송 무대에 오르며 정식 데뷔했다. 이후 빅오션은 지상파 3사를 포함한 국내 주요 음악방송에 잇달아 출연하며 대중에게 이름을 알렸다.

◇ 연습실에서 장벽 없애고, 무대는 일반 아이돌처럼

빅오션의 훈련 과정은 남달랐다. 멤버마다 청각장애의 정도와 들을 수 있는 음역대가 달라 수어의 정확한 표현과 군무의 호흡을 맞추는 데 공을 들였다. 안무는 손목에 착용한 스마트워치의 진동과 빛으로 박자를 전달하는 메트로놈을 활용해 익혔고, 노래는 애플리케이션으로 자신의 음정을 확인하며 연습했다.

AI는 음원 제작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쓰였다. 멤버들의 목소리와 가창 데이터를 학습한 AI 기술로 녹음 과정에서 음정과 발음을 보완해, 각자의 음색은 유지하면서도 자연스러운 보컬을 구현했다.

파라스타의 원칙은 복잡한 훈련 과정은 회사가 감당하되, 실제 방송 현장에서는 일반 아이돌과 다르지 않게 움직이도록 하는 것이었다. 멤버들은 별도의 특수 장비나 추가 지원 없이 음악이 나오면 준비한 무대를 그대로 선보일 수 있도록 훈련했다. 보청기와 인공와우를 사용하는 만큼 인이어를 착용하는 일반 아이돌보다 음향 세팅이 오히려 간단한 경우도 있다.

차 대표는 “방송국 관계자들이 무대에 어떤 특수 장비가 필요한지 물을 때마다 추가 장비는 필요하지 않다고 답한다”며 “현장에서 청각장애인과 함께 일하는 데 작은 장벽이라도 느끼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했다”고 말했다.

이 훈련 기술을 별도 사업으로 키울 준비도 하고 있다. 파라스타가 훈련 과정에 도입한 진동형 메트로놈 시스템이 중소벤처기업부의 기술창업 지원 프로그램 팁스(TIPS)에 선정돼 외부에서도 쓸 수 있는 수준으로 고도화하는 과제를 추진하고 있다. 향후에는 시각 신호와 진동의 세기로 음정과 박자 등 음악의 요소를 전달하는 애플리케이션이나 서비스형 소프트웨어로 발전시켜, 다른 청각장애인의 음악 훈련과 배리어프리 공연 환경 조성에 활용한다는 구상이다.

현재 파라스타는 콘텐츠·행사 제작 사업을 정리하고 아티스트 매니지먼트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회사의 중심에는 빅오션이 있다. 빅오션은 현재 회사 매출의 90% 이상을 책임지는 핵심 아티스트로 성장했다. SNS(인스타그램·틱톡·유튜브) 합산 팔로워는 약 190만 명에 달하고, 최근 앨범 판매량도 직전 앨범보다 153% 증가하며 팬층을 빠르게 넓혀가고 있다.

해외에서도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유럽과 미국 투어를 비롯해 프랑스와 일본에서는 단독 콘서트를 마쳤다. 올해는 뉴욕과 LA 등 미국 주요 10여 개 도시를 도는 투어를 앞두고 있으며, 오는 9월에는 뉴욕 패션위크에서 유명 디자이너와 협업한 패션 컬렉션도 선보일 예정이다. 이러한 성과를 인정받아 빅오션은 중소 기획사 소속 아티스트 최초로 ‘포브스 아시아 30세 이하 리더(Forbes 30 Under 30 Asia 2025)’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성장 가능성을 본 투자도 이어졌다. 파라스타는 씨엔티테크, 한국사회투자, 엠와이소셜컴퍼니(MYSC) 등으로부터 지금까지 누적 18억 원을 투자받았다.

◇ “모범보다 변종이고 싶어” 

차 대표는 파라스타의 성장 비결을 묻는 질문에 “발버둥”이라고 답했다. ‘어제와 오늘은 반드시 달라야 한다’는 것이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것이 핵심입니다. 실수가 발생하면 단순히 개인의 문제로 넘기지 않고, 시스템 구조를 개선하거나 AI 기술을 도입해 반복 업무를 줄이는 방향으로 해결책을 찾고 있습니다.” 글로벌 활동이 늘어나면서 주간 회의를 영어로 전환하고, 직원들의 체력 관리를 위해 출퇴근 자율화와 운동 지원금을 지원하는 것도 이러한 변화의 일환이다.  

차 대표는 파라스타가 ‘좋은 일을 하는 모범 기업’보다 ‘변종’으로 기억되길 바란다고 했다. 감동에 머무는 장애 콘텐츠 대신 대중이 먼저 찾아보고 공유하고 싶은 콘텐츠를 만드는 것이 목표다. 

“지나치게 엄숙한 잣대나 사회적 기대감을 갖기보다는, 남들이 가지 않는 방식을 시도하고 실패도 겪으며 끈질기게 성장해 내는 기업으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그것이 자본주의 시장 내에서 사회적 문제를 가장 영리하게 풀어나가는 방식이라고 믿습니다.” 

조유현 더나은미래 기자 

관련 기사

Copyrights ⓒ 더나은미래 & futurechosun.com

댓글 작성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


더나은미래 특별기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