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수의 생각<1> 함명준 강원도 고성 군수
인구, 기후, 산업의 급격한 전환 속에서 우리는 어떤 미래를 만들어야 할까요? 소멸과 부활의 최전선에서 분투 중인 군수님에게 길을 묻습니다. 첫 번째 주인공은 함명준 강원도 고성 군수입니다. 국토 최북단 고성군의 미래를 여는 전략은 무엇일까요? /편집자 주 |
비무장지대와 가까워서일까, 강원도 고성의 하늘은 맑고 따스하다. 그리고 고요하다. 연간 1000만 명이 방문한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을 만큼 고요했다.
“고성군에 있는 콘도들이 속초에 인접한 게 많습니다. 거기서 일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속초에서 출퇴근하지요. 방문객들도 잠은 고성에서 자고 소비는 속초에서 합니다.”

지난달 16일 강원도 고성에서 만난 함명준(65) 군수는 1000만 관광객의 실상을 에둘러 말했다. 속초까지만 연결된 동해고속도로를 탓할 법도 하지만 그는 ‘분산과 공존’을 해법으로 내놓았다.
◇ 리조트가 아니라 ‘기회의 인프라’를 짓는다
“마을과 마을 사이에 호텔을 지어야 합니다. 방문객들이 숙소를 나와 마을에서 시간을 보내야 지역에 더 많은 기회가 생기거든요.”
그는 ‘기회’라고 표현했다. 마을과 동떨어진 곳에 대형 리조트가 생기면 숙박객은 그 안에서 모든 것을 해결하거나 차를 타고 나와 속초로 간다. 마을 사이에 리조트가 들어오면 기회가 만들어진다. 음식점, 카페, 상점이 생기고 젊은 사람들도 들어온다.
지역에 리조트 하나가 생기자 주변에 민박촌이 생기는 현상을 보면서,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 더 많은 것이 모이는 시장(market)의 기능을 깨달았다고 한다. 행정이 주도해서 인위적으로 무엇을 만들기보다 ‘지역에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지역의 힘을 축적하는 길’이라는 그의 철학을 알 수 있었다.
행정의 책임자이자 정치인으로서의 고뇌도 보였다. 마을 사이에 호텔을 유치하려면 주민의 공감대와 동의가 있어야 한다. 그 주민 중에는 민박이나 펜션을 하는 사람도 있다. 그들이 반대를 표명하면 정치인으로서 군수는 섣불리 추진할 수 없다. 함명준 군수만의 딜레마는 아니다. 관행을 버리고 변화를 추구하는 지자체장이 가진 숙명적 과제다.
함 군수는 오션뷰에 대해서도 ‘기회의 분산’을 강조했다. 고성을 찾는 사람이 증가하면서 해안가의 펜션도 늘고 있다. 그러나 맨 앞에 건물을 4, 5층으로 짓다 보니 그 뒤에 사는 주민은 바다를 볼 수 없다. “원래 살던 주민들은 다 떠났지만 그 사람들은 거기 살지도 않아요. 인터넷으로 예약받고 CCTV로 관찰하면서 돈만 가져갑니다.”
“오션뷰를 독점한 거나 마찬가지죠. 앞에는 저층으로 짓고 뒤로 갈수록 높이 짓는 ‘극장식’ 개발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더 많은 사람들이 고성을 향유할 수 있습니다.”
고성군 바로 아래, 서피비치로 유명해진 양양군을 보며 경쟁적인 관광객 유치 전략을 펼칠 수도 있지만 함명준 군수의 해양자원에 대한 생각은 달랐다.
해양심층수는 고성군의 대표 산업 중 하나다. 2000년대 초반, 해양수산부가 동해안 일대를 조사한 결과 고성군이 최적의 입지로 꼽혔다. 해변에서 수심 200m 해역까지의 거리가 3km로 전국에서 가장 짧았다. 거리가 짧으면 취수관 설치 비용이 적게 들고 장비 운영이나 유지보수가 쉽다.
◇ ‘백두대간 연어’와 고성의 미래산업 실험
현재는 생수에 주력하고 있지만 함 군수의 미래는 연어 양식에 있었다. 연어는 냉수성 어종이라 차가운 심층수와 표층수를 혼합하면 연어 양식에 최적 수온인 8~16도를 쉽고 안정적으로 맞출 수 있다. 심층수에는 미네랄이 풍부하고 병원균이 없어 항생제 사용을 최소화할 수 있다. 요즘 문제가 되고 있는 미세 플라스틱도 없다. 이보다 중요한 점은 고성군의 해양자원을 군민이 나눠 쓸 수 있다는 점이다.
기후변화로 어종이 바뀌면서 배타던 사람들이 고성을 많이 떠났다고 한다. 매년 심각한 태풍 피해로 바다에서는 양식을 하기도 어렵다. 심층수를 이용해 육지에서 양식을 하면 지역의 차별화된 산업이 될 수 있다. 고성군은 백두대간을 병풍처럼 두르고 있어 산촌이라 생각했는데 강원도에서 세 번째로 논이 많다고 한다. 그만큼 넓은 평야를 가졌다. 함 군수의 바람이 이루어진다면, 앞으로 우리의 식탁에 오를 연어는 노르웨이 수입산이 아니라 백두대간이 키운 연어가 될지 모르겠다.
해상풍력단지도 고려하고 있었다. 고성군은 최근 8년간 신재생에너지 사업에 181억 원을 투입해 에너지자립도 42.7%를 달성했다. 100% 에너지 자립을 이루려면 해상풍력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동해안 전체가 해상풍력의 요건을 갖추고 있으나 현재는 남해안 중심으로 투자가 진행되고 있다. 수심이 관건이다. 고성 앞바다는 수심이 깊어 전봇대처럼 해저에 고정하는 고정식 해상풍력은 맞지 않다. 풍력 터빈을 해수면 위에 띄우고 닻으로 고정하는 부유식 해상풍력이 적합할 수 있으나 초기 비용이 많이 들고 아직은 상업화를 위한 기술 개발이 더 필요한 실정이다.
“수심이 깊어 당장은 어렵겠지만 해상풍력발전으로 에너지자립도시를 만들고 싶어요. 코펜하겐 미델그룬덴처럼 주민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사업구조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미델그룬덴 해상풍력단지는 인근의 4만 가구에 전기를 공급하고 있으며, 전체 지분의 50%를 8000명의 주민이 설립한 협동조합이 소유하고 있다. 해상풍력은 대규모 투자가 필요하고 법적 요건도 갖추어야 한다. 오랜 기간 풍황을 측정해 사업 타당성도 검증해야 한다. 함 군수의 생각처럼 주민참여형이 되려면 지역의 공감대를 얻기 위한 토론과 설득도 필요하다. 지자체장의 임기는 짧고 변화와 혁신의 시간은 길다.
함명준 군수는 자신의 실수를 가감 없이 드러내는 사람이었다. 군의원 시절에 군청 공무원 중 고성에 살지 않는 사람이 많은 것을 두고 질타했다고 한다. 그 후로 많은 공무원들이 고성으로 이주했다.
“나중에 군수가 되어 살펴보니 공무원들이 혼자 고성에 살고 가족은 속초에 있더라고요. 자녀 교육 때문이었어요. 제가 고통만 안겨준 거죠. 그때 교육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배웠어요.”
컨설팅 회사 ‘맥킨지’에서 전 세계 6800명의 CEO와 60만 명 이상의 사람들에게 물었다. 한순간의 성공에 그치지 않고 지속적으로 탁월한 성과를 창출하는 조직의 비결은 무엇일까? 한 마디로 ‘배우는 법을 배우는 조직’이었다.
지방소멸대응기금을 비롯해 매년 수십조 원의 예산이 지역을 살리기 위해 투입되고 있다. 어느 지역에서 축제로 성공하면 여기저기서 축제를 연다. 출렁다리를 너무 많이 만들다 보니 전 세계에서 출렁다리 기술력은 한국이 1등이라는 웃지 못할 이야기가 떠돈다.
어쩌면 우리는 한순간의 성공사례에 매몰되어 있지 않을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배우는 법을 배우는 것이 아닐지, 함명준 군수를 인터뷰하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인터뷰=오승훈 공익마케팅스쿨 대표/더미래솔루션랩 전문위원
정리=김규리 더나은미래 기자
함명준 고성 군수 – 1960년생, 제37·38대 민선 고성군수 – 울산전문대(현 울산과학대) 조선과 졸업 – 前 국민건강보험공단 근무 – 前 강원도 고성군의회 제6·7대 의원(6대 전반기 부의장) – 現 접경지역 시장·군수협의회 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