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프리카 남동부에서 2000km 떨어진 인도양에 모리셔스(Mauritius)라는 섬나라가 있습니다. 16세기부터 사람들이 정착하기 시작한 이 섬은 수백만 년 동안 고립된 생태계로 진화했습니다. 그래서 고유종이 많았습니다. 청둥오리, 앵무새, 거북이, 야자나무, 거미 등이 살았으나 대부분 모리셔스 고유종이었습니다.
그중에는 도도새도 있었습니다. 비둘기의 한 종으로부터 진화했으나 하늘을 날지 못했습니다. 고립된 섬에는 천적이 없었고 땅에는 좋아하는 과일과 씨앗이 풍부했으니 굳이 날 필요가 없었겠지요. 결국 이 녀석들의 몸무게는 10~18kg까지 늘어납니다. 1598년 네덜란드인들이 모리셔스에 도착했을 때도 인간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천적이란 걸 몰랐으니까요. 80년 후 도도새는 멸종되었습니다.
46억 년의 지구 역사에는 10억 종이 넘는 생물종이 살았다고 합니다. 그중 99%는 도도새처럼 사라지고 1% 미만이 살아남았습니다.
◇ 적자생존, Survival of the fittest
영국 맨체스터의 자작나무 숲에는 흰 나방이 많았습니다. 흰 나무껍질에 위장하기 좋은 밝은 색상의 나방이 생존에 유리했습니다. 산업혁명이 시작되자 석탄을 태운 연기가 하늘과 나무를 뒤덮었습니다. 흰 나방은 줄어들고 검은 나방이 번성했습니다. 검은 나방은 흰 나방의 색이 변화한 것이 아니라 흰 나방의 돌연변이 중 하나였습니다.
모든 생물집단에서 돌연변이는 끊임없이 나타납니다. 대부분은 생존에 불리할 때가 많지만 환경이 급변하면 상황이 달라집니다. 이전에는 불리했던 유전적 특성이 오히려 생존의 열쇠가 되기도 합니다. 살아남는 것은 강한 자가 아니라 변화된 환경에 가장 적합한 자입니다.
일본 도쿠시마현 가미야마초는 도쿄에서 600km 떨어진 인구 6천 명의 산골이었습니다. 25년 전, 지역 주민들은 NPO를 만들고 그린밸리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국내외 예술가를 초대해서 산골마을에 활력을 불어넣으려는 취지였습니다. 인터넷을 자유롭게 사용하는 외국인들을 위해 마을 곳곳에 초고속 와이파이도 깔았습니다. 빈집을 정비해 카페, 레스토랑, 옷가게도 열었습니다. 조금씩 입소문이 퍼져 워케이션 방문자가 늘었습니다. 그중 한 명을 NHK에서 보도하며 워케이션의 성지가 되었습니다. 계곡에 발 담그고 노트북으로 업무를 보는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직장인이라면 한 번쯤 꿈꾸는 장면입니다. 이후 100개 이상의 위성오피스가 들어왔고 160여 가구가 이주했습니다. 젊은 세대의 비율이 높아지고 출생률도 증가했습니다.
25년 전, 가미야마는 돌연변이였습니다. 다른 지역은 기업을 유치하려고 할 때, 제빵사와 디자이너처럼 마을에 필요한 인재를 주민들이 지명해서 데려왔습니다. 대규모 관광객 유치를 위해 축제를 열 때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예술가를 초청하고 주민들과 교류하도록 했습니다. 산골 마을에 초고속 와이파이를 설치한다는 건 당시로서는 무모한 일이었습니다. 경쟁에서 승리한 지역이 아니라 변화된 환경에 가장 적합한 지역이 살아남습니다.
◇ 도도새가 멸종한 이유
모리셔스 섬의 도도새는 인간의 사냥으로 사라진 것이 아닙니다. 그리 이쁘지도 않았고 맛이 없었다는 기록으로 보아 사육하거나 도축할 필요가 없었을 겁니다.
영어 관용구에는 “Dead as a dodo”가 있습니다. 도도새처럼 완전히 사라져서 다시는 볼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Dodo의 이름은 포르투갈어 ‘doudo’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유력합니다. ‘바보’, ‘어리석은’이라는 뜻입니다. 천적이 없었기에 사람이나 외래종을 두려워하지 않고 쉽게 잡혔기 때문입니다. 네덜란드인들과 함께 상륙한 쥐, 돼지, 원숭이, 고양이 등의 외래종에 의해 도도새의 알과 새끼는 살아남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한 번에 한 개의 알만 낳다 보니 번식 속도도 느렸습니다.
도도새가 멸종한 이유는 ‘고립’입니다. 인간이나 외래종을 접할 기회가 없었기에 생존을 고민한 적이 없었습니다. 하늘을 날기 위해 날갯짓을 할 이유도, 치명적인 이빨이나 발톱을 가질 이유도 없었습니다. 두려움도 몰랐습니다. 고립된 섬에서 매일 보는 친구들과 살았으므로 세상 모두가 친구라고 생각했습니다. 변화도 몰랐습니다. 모리셔스 섬은 8백만 년 전 화산 활동으로 생겼습니다. 열대 기후가 안정적으로 유지되어 급격한 환경 변화도 적었습니다. 간혹 돌연변이가 생겼지만 환경 변화가 없었으니 대체로 생존에 불리했을 겁니다.
고립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다양성입니다. 지역에는 다양한 산업, 다양한 기업이 필요합니다. 잘 키운 특산품도 좋지만 열 개의 독특한 제품도 키워야 합니다. 지역민이 중심이 되어야겠지만 동남아 사람과 유럽인도 있어야 고립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전국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정책이 아니라 돌연변이 정책이 필요합니다. 그러려면 선택이 아니라 선택의 패턴을 바꿔야 합니다.
◇ 불편하고 낯선 것
1990년대 이후 전국 대부분의 지자체가 동일한 패러다임을 추구했습니다. 산업단지 조성, 관광단지 개발, 공공기관 유치 등의 사업이 지역마다 반복적으로 추진되었습니다. 이런 방식이 익숙하고 편안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어제와 다른 선택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선택은 달랐을지 몰라도 선택 패턴은 동일한 경우가 많습니다. 그 선택의 패턴이 바뀐 것을 알 수 있는 방법은 ‘불편함’입니다. 어제와 다른 선택을 했는데 마음이 편안하고 익숙하다면 우리의 선택은 여전히 어제의 길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뜻입니다.
돌연변이라고 해서 괴팍하고 기행적인 정책을 펼치라는 건 아닙니다. 정책 수립에 심리학을 도입해서 시민들의 정서적 반응을 예측하고 조정해 볼 수 있습니다. 워런 버핏의 파트너 찰리 멍거는 심리학을 비롯해 물리학, 수학, 역사, 생물학 등 다학제적 사고방식으로 투자를 결정했습니다. 경제 정책을 수립할 때 역사, 수학, 생물학 전문가가 참여하고 돌봄 정책은 마케팅과 심리학 전문가가 함께 하는 것도 변화의 시작입니다.
오랫동안 전형적인 틀을 유지해온 공공의 보고서에 아마존의 ‘6페이지 문서’를 도입해 볼 수도 있습니다. 구조화되지 않은 사고와 피상적인 정보를 전달하는 파워포인트 형태의 발표를 지양하기 위해 제프 베조스가 도입한 보고서 양식입니다. 6페이지 문서는 정책 기획자가 아이디어를 숙성시키고 전략적 우선순위를 명확히 수립하여 실행력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이런 변화를 작은 실험으로 검증하고 보완하면서 학습하는 조직을 만들어야 합니다. 끊임없이 성장하는 조직은 끊임없이 배우는 조직입니다. 급격한 환경 변화에서는 배우는 법을 배우는 것이 조직의 경쟁력입니다.
우리 사회에서 돌연변이는 이상하고 낯선 존재로 여겨지며 변방으로 밀려납니다. 하지만 역사는 종종 변방에서 시작됩니다. 로마 제국의 붕괴는 변방의 게르만족에서 시작되었고, 르네상스의 태동은 이탈리아의 작은 도시국가들에서 시작되었습니다. 혁신과 변화는 안락한 중심부가 아니라 생존을 위해 분투하는 변방의 절박함에서 태어나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이 서울 중심으로 움직이는 대한민국에서, 다음 세상을 여는 돌연변이는 지역으로부터 시작되기를 바랍니다.
오승훈 공익마케팅스쿨 대표
필자 소개 마케팅은 더 많은 사람을 위해 쓰여야 한다는 믿음으로 ‘지역의 미래’를 탐구하는 오래된 마케터입니다. 현재 공익마케팅스쿨 대표이자 공익 싱크탱크 그룹 ‘더미래솔루션랩’의 전문위원으로, 공익 마케팅 전략과 지역경제 정책에 대한 해법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주요 저서로는 ‘슬리퍼 신은 경제학’이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