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받은 기억조차 없었다”…낙인 내면화한 수용자 자녀의 고백
아시아 첫 국제컨퍼런스서 정체성 회복·권리 보장 필요성 제기
“나는 수용자 자녀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저의 정체성을 정할 수는 없습니다.”
1일 서울 영등포구 하이서울유스호스텔에서 열린 국제수용자자녀컨퍼런스(이하 INCCIP)에서 발표자로 나선 안모 씨는 단호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어머니의 수감 이후 ‘수용자 자녀’라는 꼬리표는 그에게 오랜 시간 숨기고 싶은 과거였다. “이제는 같은 아픔을 지닌 누군가에게 ‘괜찮다’고 말할 수 있게 됐다”는 그는, 자신의 경험을 솔직히 꺼냈다.

◇ “가면 쓰고 연기하며 살았어요”
안 씨는 중학교 2학년 무렵 어머니가 수감됐다. 알코올 의존이 심했던 아버지를 대신해 생계를 책임지던 어머니는 무리하게 일을 하다 범죄를 저질렀고, 어린 안 씨는 갑작스레 보육원 생활을 시작해야 했다. “적응이 쉽지 않았어요. 가능한 한 빨리 이곳을 벗어나야겠다고 생각했죠.”
무엇보다 그를 괴롭힌 건 정체성이었다. “‘수감자 자녀’라는 사실을 들키면 따돌림당할 거란 두려움에 일부러 엄마가 있는 척, 같이 밥을 먹고 왔다는 식의 거짓말도 했어요. 저는 ‘가면을 쓰고 연기하며 살아가는 아이’였어요.”
“사랑을 받아본 기억이 없었어요. 내가 어떤 존재인지 고민해볼 기회조차 없었는데, 처음 마주한 정체성이 ‘수용자 자녀’였어요. 그리고 그건 숨겨야 한다고 생각했죠.”
안 씨는 “‘수감자 자녀’라는 것은 사회적으로 분명 부정적인 낙인”이라며, “문제는 사회뿐 아니라 당사자 스스로도 그 시선을 내면화하게 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수치심과 무가치함이 반복되면 결국 ‘나는 결함 있는 존재’라고 믿게 됩니다.”
◇ 물질적 지원보다 중요한 건 ‘정체성’을 찾아주는 것
전환점은 수용자 자녀를 지원하는 비영리단체 ‘세움’과의 만남이었다. 그는 수용자 자녀 당사자 7명의 이야기를 엮은 책 ‘어둠 속에서 살아남다’ 집필에 참여하며 같은 경험을 가진 이들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를 얻었다. “조심스레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는 과정에서, 서로가 있는 그대로 수용될 수 있다는 경험이 큰 위로가 됐어요.”
그는 “수용자 자녀들에게 가장 큰 상처는 사랑의 결핍”이라며, “물질적 지원만으로는 삶의 방향을 바꾸기 어렵다”고 말했다. “‘나는 소중한 존재’라는 출발점을 갖지 못한 이들에게, ‘세움’ 같은 공동체가 정체성을 찾아주는 동반자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수용자 자녀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우리는 가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알았으면 좋겠어요.”
이날 발표자로 나선 국내외 당사자들은 정체성 회복과 낙인 극복을 위한 사회적 지원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미키코 오타니 전 유엔 아동권리위원회 위원장은 “수용자 자녀 문제는 더 이상 형사사법의 영역이 아니라, 아동의 권리 문제”라고 강조하며, “모든 정책 결정에 아동의 ‘최고 이익’ 원칙이 적용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어 “수용자 자녀의 권리는 다양한 제도와 정책이 유기적으로 작동할 때 실현될 수 있다”며, 전인적(child rights holistic) 접근과 당사자 목소리 반영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한편, INCCIP는 수용자 자녀의 권리 보장을 위한 국제 학술대회로, 올해는 아시아 최초로 한국에서 제4회 대회가 열렸다. ‘우리들의 목소리: 수용자 자녀의 회복탄력성(Voices of Strength: Resilience of Children with Incarcerated Parents)’을 주제로 열린 이번 행사는 ‘아동복지실천회 세움’이 주관했으며, 13개국의 전문가와 당사자들이 참여해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수용자 자녀의 현실과 해결 방안을 논의했다.
조유현 더나은미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