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1일(월)

아빠가 감옥에 갇혔다…위기의 자녀들 [사각지대 해법 찾기②수용자 자녀]

수원 영아 사망사건, 청년 무연고 사망… 사회문제가 곪아 터진 후 이슈가 돼야 새로운 대책이 만들어지는 것은 여전합니다. 2024년 복지 예산 122조 3779억원. 매년 복지 예산은 늘어나지만, 정책의 손길이 닿지 못하는 사각지대는 끊임없이 생겨납니다. ‘더나은미래’는 아동·청소년·청년·노인·장애인 등 사회복지 현장의 사각지대는 무엇인지 들여다보고, 민간 차원의 해법과 성과를 심층적으로 분석하는 [사각지대 해법 찾기] 기사를 연재합니다. /편집자 주

“아빠 없이도 엄마 말 잘 들으며 살아야 한다.”

지현(가명)은 중학교 때 아버지의 이 한마디를 끝으로 약 4년 동안 아버지를 집에서 볼 수 없었다. 아버지가 성추행으로 고소를 당해 수감된 것이다. 지현 아버지는 택시 기사였는데, 술에 취한 여성이 아버지를 고소했다는 얘기를 어머니로부터 전해 들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아버지가 택시 운전을 하기 전 사업을 하다 난 부도 때문에 채권자들이 아버지를 고소했다. 지현 아버지는 3년 8개월을 교도소에서 보내야 했다. 지현은 아버지의 부재로 당장 경제적인 어려움에 시달려야 했다. 아버지가 모든 경제 활동을 담당했기 때문에 지현네 집 수입은 0원이었다.

지현은 당장 살던 집에서 이사해야 했다. 학교와 멀리 떨어진 지역에 10평도 안 되는 집에선 엄마와 지현, 지현 언니와 오빠, 동생까지 5명이 함께 지내야 했다. 어머니가 마트에서 일을 시작했고, 형도 아르바이트해 생활비를 보탰지만, 5인 가족에겐 턱없이 부족했다.

식사는 주로 교회에서 주는 반찬으로 해결해야 했으며, 옷은 어머니 지인들로부터 물려받아 입었다. 그러던 중 다행히 지현 오빠가 신청한 기초생활보장 수급자가 선정돼 돈을 지원받았고, 수용자 자녀 지원 비영리단체 ‘세움’을 통해서도 매달 7만원씩 받아 가까스로 생계를 이어갈 수 있게 됐다.

책 ‘어둠 속에서 살아남다-7명의 수용자 자녀 이야기’ 中

지현은 수용자 자녀였다. 수용자 자녀란, 구치소나 교도소에 수감된 이들의 미성년 자녀를 칭하는 말이다. 법무부 2024 현황조사에 따르면, 전체 5만8981명의 수용자 중 8267명(7.1%)이 미성년 자녀가 있었다. 법무부 관계자는 “응답을 거부하는 인원이 약 1만명 정도 되기 때문에 미성년 자녀가 이보다 더 많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부모 수감과 동시에 ‘생계유지’ 어려워져

수용자 자녀가 마주하는 가장 큰 현실적 장벽은 주 양육자였던 부모와 강제분리되면서 겪는 경제적 어려움이다. 2017년 국가인권위원회 실태조사를 보면, 수감된 부모의 89%가 생계비와 양육비 부담자였다. 그중 외벌이, 즉 생계비를 혼자 담당했다는 응답은 52.5%로 절반이 넘었다. 한 명의 수감이 전체 가족의 가난으로 이어지는 이유다. 수용자 자녀 지원 기관 ‘세움’의 2021년 사업보고서에서도 수용자 자녀의 67%가 ‘경제 지원’을 가장 필요한 항목으로 꼽았다.

‘한부모가족 지원법’, ‘국민기초생활보장법’ 등으로 지원받을 수 있지만, 당사자가 ‘나는 수용자 자녀’라는 현실을 드러내야 한다. 이지선 이화여대 사회복지과 교수는 “수용자 자녀가 부모가 수감되었다는 걸 입증하는 것과 동시에 자신의 가난까지 입증해야 한다”면서 “친구들에게조차 꺼내놓기 어려운 이야기를 해야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수용자 자녀가 복지 사각지대에 놓이는 요인 중 하나다.

실제로, 현무(가명)는 초등학생 때 아빠가 수감되고 엄마와 둘이 살게 됐다. 아빠가 모든 경제활동을 책임지고 있었기 때문에, 현무와 엄마는 당장 월세를 낼 수 없어 집에서 나가야만 했다. 이모네에 양해를 구하고 같이 살게 됐는데, 이모네도 형편이 넉넉하지 않아 여간 눈치 보이는 일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현무네는 아빠가 출소할 때까지 긴급지원, 수급지원 등 공적 자원 신청을 하지 않았다. 주민센터에 신청하러 갔는데, 혹시 현무 학교 학부모나 관련 인물이 있어서 소문이 날까 두려웠던 것. 현무 엄마는 작은 사무실 경리로 아르바이트를 구해 어려운 살림을 이어가야 했다.

아동복지실천회 ‘세움’ 사업부의 최윤주 부장은 “세움에 지원을 요청하는 수용자 자녀와 가족들이 가장 많이 하는 질문 중 하나가 ‘지원을 받으려면 수용자 자녀인 것을 학교에 밝혀야 하느냐’는 것이다”라며 “알려야 하면 차라리 지원을 받지 않겠다고 하는 이들도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쟤도 아버지처럼 사고 치는 거 아냐?” 편견까지

수용자 자녀는 세상의 차별적 시선에도 시달린다. 연우(가명)는 중학교 때 전교회장이 된 이후 어느 날, 학교 친구들이 자신이 수용자 자녀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시골 학교였던지라, 소문은 삽시간에 전교생에게 퍼졌다. 친구들은 ‘뻔뻔하다 못해 소름끼친다’ ‘범죄자 자식이 학교를 대표한다는 게 말이 안 된다’라며 연우를 손가락질하고 비난했다. 그렇게 연우는 왕따가 됐다.

어느 날엔 수행평가 조별 과제 때문에 조원들과 교실에서 모이기로 했다. 시간에 맞춰 약속한 교실에 간 연우는 당황했다. 아무도 없었고, 연락도 되지 않았으며 기다려도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연우는 한참의 기다린 끝에 터덜터덜 교실을 나섰는데, 옆 교실에서 친구들의 웃음 소리가 들렸다. 창문 사이로 자신을 빼고 화기애애한 조원들의 모습이 보였다. ‘나만 빼고 한 뒤에 ‘무임승차’라고 욕하려는 건가’ 온갖 부정적 생각이 연우를 사로잡았다. 우울한 마음에 울며 집으로 가는데 털어놓을 사람조차 없다는 사실이 연우를 더욱 슬프게 했다.

가족들에게조차 외면당하는 게 수용자 자녀의 현실이다. 지훈(가명)은 아빠가 수감된 후 엄마도 생계를 위해 집을 떠나자, 큰아버지집에서 생활하게 됐다. 처음에는 반갑게 맞아주는 듯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쟤도 자기 아빠처럼 사고 치는 거 아냐?’, ‘그 유전자 어디 가겠어?’라며 골칫덩이 보듯 대했다. 지훈은 그저 ‘죄송합니다’라는 말밖에 할 수 없었다.

“나에게 일어난 변화는 ‘아버지의 부재’ 하나인데, 이제까지 나를 지켜주던 보호막은 모조리 사라졌고 주변의 취급 또한 손바닥 뒤집듯 바뀌었어요.”

“인식 전환, 민관협의체 구성해야”

전문가들은 수용자 자녀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이지선 교수는 “왜 가해자의 자녀를 돕느냐는 인식이 큰데, 부모의 범죄와 자녀를 동일시하는 것을 멈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수용자 자녀는 누군가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놨을 때 상대방이 긍정적으로 받아들여 준다면 조금씩 용기를 얻고 세상에 자신을 드러낼 수 있게 된다”며 “초기에 긍정적 수용을 경험하면 괴로웠던 과거로부터 완전한 회복이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정부와 민간기관이 협력해 숨어 있는 수용자 자녀를 발굴하기 위해 ‘민관협의체’를 구성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최재형 전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해 11월, 세움과 사단법인 온율과 함께 ‘위기 수용자 자녀 지원을 위한 민관 정책간담회’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최 전 의원은 “수용자 가족 및 자녀를 지원 대상으로 하는 법 규정이 별도로 존재하지 않고, 기존의 지원책 역시 파편화되어 있다”며 “여러 관계자의 의견을 반영할 수 있는 민관협의체 구성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조유현 더나은미래 기자 oil_lin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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