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안쪽에서 문을 잠그고 안 열어줬어!”
2017년 어느 날, 교도소에서 1년 반 만에 아빠를 만난 대용(가명·6세)군이 엄마에게 펑펑 울며 말했다. 대용군의 눈에 들어온 모습은 철창이 있는 반투명 플라스틱 창 건너편에 앉은 아빠였다.
이 이야기를 전해 들은 비영리단체 아동복지실천회 세움은 ‘아이들이 실제 가정집과 같은 분위기에서 부모를 만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다 같은 해 법무부에 아동을 위한 접견실을 제안했다.
세움의 요청에 교정 본부는 ‘공간’을, 아산나눔재단 등 기부자들은 ‘후원’으로 응답했다. 민간과 정부가 협력한 모델이었다. 2017년 여주교도소 ‘아동친화적 가족접견실’ 시범사업을 시작으로 청주여자교도소에도 실제 가정집과 같은 분위기의 접견실도 구축했다. 가족들이 둘러앉아 식사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아이들이 읽을 동화책과 장난감 등을 구비했다. 이후 세움은 법무부에 아동친화적 가족접견실 설치 설명서를 만들어 제공했다. 이를 기반으로 법무부가 전국 교정시설에 설치를 확대해 현재는 전국 54개 교정기관 중 49곳에 구축돼 있다.
이렇듯 국내에서 수용자 자녀에 대한 지원이 본격화되기 시작한 데에는 민간의 역할이 컸다. 세움은 평일 접견이 어려운 수용자 자녀를 위한 ‘토요일 아동접견의 날’도 교정 본부에 제안했다. 학업 등으로 평일 접견이 어려운 수용자 자녀와 주 보호자가 토요일에 30분 이내로 접견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법무부가 이를 받아들이면서 2021년부터 토요일 접견이 허용됐다.
2022년에는 서울 대구, 대전, 광주 등 전국 4개 지방교정청에서 ‘위기 수용자 자녀 지원팀’도 운영되기 시작했다. 이 밖에도 법무부는 수용자 자녀 학자금 지원, 가족생계비 지원, 상담 및 멘토링 지원 등의 사업을 하고 있으며 여성가족부 산하 전국의 가족센터에서는 수용자 가족지원 상담을 진행 중이다.
각종 지원책에도 불구하고, 수용자 자녀가 여전히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수용자 가족 및 자녀를 지원 대상으로 하는 근거 법령이 없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한다. 사단법인 온율의 전민경 변호사는 “수용자를 위한 지원이 시행되고 있더라도 개별법이 없는 현 상황에서는 단발적으로 끝날 수 있다”며 “미국과 같이 수용자 자녀를 위한 법 조항을 마련해둔 해외 사례를 참고해 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 美, 연방법·주법으로 지원 의무화
수용자 자녀를 위한 근거 법령을 별도로 마련해 둔 나라는 미국뿐이다. 미국은 연방법인 ‘안전하고 안정적인 가족 촉진 개정법(Promoting Safe and Stable Families Amendments of 2001)’에 수용자 자녀에게 멘토링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공공 및 민간단체에 대한 지원 규정을 두고 있다. 선정된 단체는 최대 500만달러(한화 약 68억9950만원)의 보조금을 정부로부터 지급받는다. 수감자 자녀는 이를 통해 부모가 석방될 때까지 일대일 상담부터 다른 수용자 자녀들과의 그룹 멘토링, 학습 과외 등을 제공받는다.
각 주 차원에서도 다양한 법령이 존재한다. 오리건주법은 ‘수용자 자녀의 권리장전(Bill of rights of children of incarcerated parents)’에서 수용자 및 그 가족에 관한 지침을 수립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교정국이 민간단체와 협력해 자녀를 둔 수용자에게 적용할 정책 및 절차에 사용되는 지침을 개발하고 예산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
일리노이주도 마찬가지다. 일리노이주법에 따르면, 복지국과 교정국은 민간단체 등과 협력해 지역사회 내에서 수용자 자녀에 대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단체의 현황을 파악해야 한다. 또한, 수용자 자녀 및 그 가족을 위한 안내 자료를 개발해야 할 의무가 있다.
무엇보다 범죄자 체포 단계에서부터 미성년 자녀에 대한 지원이 시작되도록 규정한 점이 눈에 띈다. 루이지애나주법을 보면, 경찰관이 피의자를 체포할 때 ‘미성년 자녀가 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특히 체포된 사람이 미성년 자녀를 보호하거나 돌볼 책임이 있는 경우, 경찰관은 적절한 보호자에게 이를 인계하거나 아동 보호 서비스에 연락해야 한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뉴멕시코법에도 동일한 내용이 담겨 있다.
이러한 해외 사례를 바탕으로 국내에서도 지원책을 마련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세움은 연구소장인 이지선 이화여자대학교 사회복지과 교수를 필두로 사단법인 온율과 지난해부터 일명 ‘K 모델’에 대한 공동 연구를 진행 중이다.
사단법인 온율의 전규해 변호사는 “새로운 법을 제정하기보다 형사소송법 등에 있는 관련 규정을 개정하자는 방향으로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 체포 단계부터… 단계적 법 개정 필요해
세움 연구소가 제시하는 ‘K 모델’을 위해서는 피의자 체포부터 형 선고, 수감 이후까지의 단계적 법 개정이 요구된다.
이지선 교수는 “미국처럼 경찰이 피의자를 체포하는 단계에서부터 미성년 자녀 유무와 주 양육자 존재 등을 확인하는 것을 의무화하는 것이 가장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지원받아야 할 미성년 자녀 정보의 누락이 없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은 피의자가 교정 시설에 입소했을 때 하는 설문조사를 바탕으로 미성년 자녀 수를 파악하고 있다. 그러나 법무부의 2024년 조사에 따르면, 이마저도 응답을 거부하는 인원이 1만여 명이어서 정확한 파악이 어렵다.
이 교수는 정보 파악과 더불어 권역별 센터 마련도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그는 “체포 단계에서 파악된 정보를 권역별 센터로 전달하면, 센터에서 한부모가정 등 공공지원법 안에서 지원 가능한 대상인지 알아봐 주고, 수용자 자녀에게 관련 정보를 안내해줘야 한다”고 설명했다.
형 선고 단계에서는 피의자가 미성년 자녀가 있을 경우, 자녀의 주거지역과 가장 가까운 교정 시설로 배치돼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학회지에 실린 2022년 ‘수용자 자녀의 접견 경험에 따른 부모와의 관계에 관한 탐색적 연구’ 조사에 따르면, 수용자 자녀 대부분 왕복 네 시간 가까이 걸려 수감된 부모를 만나러 가는데 “자주 만날 수 있는 거리에 있다면 관계가 나아질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가 있었다. 해당 조사에서 수용자 자녀 A양(17)은 “고속버스 터미널까지 가서 버스를 타고, 내려서 또 택시나 버스를 타고 가야 하는 데 너무 오래 걸린다”고 토로했다.
피의자 수감 이후엔 부모와 아이의 ‘개별 면담’의 필요성도 제기됐다. 같은 조사에서 또 다른 수용자 자녀인 B양(18)은 “할머니한테 ’이런 건 아빠한테만 따로 얘기하고 싶다’고 울면서 혼자 갈까도 생각했다”며 “아빠한테 고민을 말할 수가 없게 됐다”고 털어놨다.
세움과 온율은 오는 9월 각 기관의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회의를 거쳐 ‘올해 안에 K 모델을 완성한다’는 계획이다. 전 변호사는 “K 모델이 나오면, 최대한 많은 국회의원에 협력을 요청해 의원 발의를 해서 정부부처에서 관심 가질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 올해 12월… 수용자 자녀 지원책 마련할 ‘골든타임’
“수용자 자녀 보호를 위한 정책을 도입하고 자녀가 적절한 환경에서 양육될 수 있도록 대체 양육 방법을 마련하라.”
유엔 아동권리위원회는 지난 2019년 한국 정부가 제출한 유엔 아동권리협약 5-6차 국가보고서에 대해 이러한 내용의 최종 권고문을 발표했다. 1991년부터 유엔 아동권리협약에 당사국으로 참여하고 있는 한국은 해당 권고사항에 대한 이행현황을 오는 12월까지 7차 국가보고서를 통해 증명해야 할 의무가 있다.
세움 측은 정부가 7차 국가보고서를 제출해야 하는 올해 12월까지를 ‘골든타임’으로 보고 있다. 현재 홈페이지를 통해 권고문 이행을 촉구하는 서명을 받고 있다. 서명에는 사각지대 발굴을 위한 찾아가는 맞춤 서비스 방안을 고려하거나, 초기 위기 개입 상황에서 수용자 자녀가 받을 수 있는 지원에 대해 안내할 것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이경림 세움 대표는 “수용자 자녀를 가해자의 자녀가 아닌, 우리가 함께 살아가야 할 대한민국의 미래로 바라봐야 한다”면서 “정부와 민간이 협력해 구체적인 실행안을 마련해야할 때”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조유현 더나은미래 기자 oil_line@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