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 혼인의 ‘첫 장면’, 호주·뉴질랜드는 달랐다

정대훈 사단법인 코피온 사무국장

다문화 혼인은 더 이상 예외적인 선택이 아니다. 국가통계포털의 2024년 다문화 인구동태 통계에 따르면 전체 혼인 가운데 다문화 혼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9.6%로, 혼인 10건 중 1건에 이른다. 다문화 이혼 역시 전체 이혼의 8.7%를 차지한다. 특히 결혼 5년 미만에 이혼하는 비율은 31.3%로, 한국인 간 혼인(15.3%)의 두 배에 가깝다.

문제는 이 수치가 개인의 선택이나 적응 실패만으로 설명되기 어렵다는 데 있다. 다문화 혼인 가족의 초기 정착 과정에서 발생하는 갈등과 단절은, 상당 부분 제도와 지원 구조의 한계에서 비롯된다. 코로나19 이후 다문화 혼인이 다시 증가하는 상황에서, 우리 사회가 초기 정착 지원에서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 점검할 필요가 있다.

이 질문에 대한 실마리를 찾기 위해 아산 프론티어 아카데미 14기 사회혁신 프로젝트 팀 ‘비비빅(VVVIC)’은 2025년 9월 이민 선진국으로 꼽히는 호주 시드니와 뉴질랜드 해밀턴을 방문하여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었다. 현지에서 만난 기관들은 다문화 가족의 정착을 ‘개인의 적응’이 아니라, 관계와 환경을 함께 설계해야 할 사회적 과제로 바라보고 있었다.

◇ “정착은 이주여성 혼자의 몫이 아닙니다”

2002년에 설립된 뉴질랜드 해밀턴의 샤마(Shama Ethnic Women’s Trust, 이하 샤마)는 이주여성들이 주도해 만든 비영리단체다. 설립 초기에는 기존 이주여성 정착 프로그램이 실제 정착 과정에서 충분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소규모 풀뿌리 조직에 가까웠다.

뉴질랜드 해밀턴의 비영리단체 ‘샤마(Shama Ethnic Women’s Trust)’ 구성원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샤마

샤마는 이후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보조금, 민간 재단과 개인 기부, 프로젝트 단위 펀딩 등을 통해 조직의 기반을 확장해 왔다. 사회서비스의 공백을 메우기 위한 이주여성들의 자발적 실천으로 시작한 이 단체는 지금까지도 ‘이주여성에 의해, 이주여성을 위한’ 기관이라는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다.

이곳에서 인상적인 점은 정착의 책임을 이주여성 개인에게 한정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프로그램 운영을 총괄하는 파리야 베굼(Fariya Begum)은 “남편 배우자가 함께 커뮤니티에 참여할 때 가정 내 상호 이해와 존중의 문화가 형성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샤마는 정기적으로 ‘오픈데이(Open Day)’를 열어 부부가 함께 센터를 방문하고 프로그램을 체험하도록 한다. 다문화 혼인 가족의 안정적인 정착이 개인의 적응 문제가 아니라, 부부가 함께 조정하고 학습해 나가야 할 공동의 과정임을 분명히 보여주는 방식이다.

지난해 9월 ‘비비빅(VVVIC)’팀이 파리야 베굼(Fariya Begum)샤마 프로그램 운영 총괄을 만나 설명을 듣고 있다. /정대훈 코피온 사무국장

◇ ‘지원’이 아니라 ‘관계’를 설계하다

뉴질랜드 와이카토 지역의 대표적인 이주민 정착 허브인 세틀먼트 센터 와이카토(Settlement Centre Waikato, 이하 SCW)는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시민단체가 함께 운영하는 통합형 정착 지원 기관이다. 센터 운영은 해밀턴 멀티컬쳐 서비스 트러스트(Hamilton Multicultural Services Trust, 이하 HMS)가 맡고 있다.

SCW는 언어·이동·연결·권리 보호라는 네 가지 축을 중심으로 이민자의 삶 전반을 조정하는 구조를 갖추고 있다. 200명 이상의 직원은 20여 개국 출신으로 구성돼 있으며, 다문화 가족의 상황을 하나의 유형으로 일반화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

지난해 9월 뉴질랜드 해밀턴시 세틀먼트 센터 와이카토(SCW) 앞에서 ‘비비빅(VVVIC)’팀과 관계자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정대훈 코피온 사무국장

특징은 통역, 법률, 주거, 심리지원 등 관련 기관들이 한 공간에 함께 입주해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영어교육 비영리단체인 와이카토 영어교육 홈튜터(ESOL Home Tutors Waikato)와 RMS 난민 재정착 지원기관(RMS Refugee Resettlement) 처럼 성격이 전혀 다른 조직들이 같은 사무 공간에서 근무하며, 필요할 경우 즉각적으로 연계·협업하는 구조를 갖고 있었다. 행정 편의를 넘어 사회적 연결과 심리적 안정까지 고려하는 구조다.

이주여성 당사자이자 HMS 대표 엘리 윌킨슨(Ellie Wilkinson)은 “모든 이주여성의 배경과 상황은 다르다”며 “미리 설계된 프로그램에 초대하는 방식이 아니라, 지금 당사자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듣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SCW의 지원은 교육이나 복지 제공에 그치지 않고, 개별 상황에 맞는 솔루션을 연결하는 방식으로 설계돼 있었다.

특히 ‘지역사회 중개자(Community Connector)’는 이주민이 자신의 문제를 안전하게 이야기할 수 있도록 돕고, 상황에 따라 적절한 기관으로의 연결을 담당한다. 이들은 뉴질랜드에서 정착을 경험한 선배 이주민으로, 프로젝트의 성격과 이주민의 상황에 따라 풀타임 또는 파트타임으로 활동하며 정착 과정을 밀착 지원한다.

이들의 지원은 일회성 상담에 그치지 않는다. 반복적이고 지속적인 만남을 통해 신뢰가 쌓일수록 주거·고용·교육·복지·건강 등 복합적인 영역으로 지원 영역이 확장된다. 이 과정에서 한 명의 중개자가 다수의 이주민을 관리하는 방식이 아니라, 소수의 이주민과 장기적인 관계를 유지하며 단계적으로 해결책을 함께 만들어가고 있었다.

호주 최대 이주민 정착기관 세틀먼트 서비스 인터내셔널(SSI). /정대훈 코피온 사무국장

호주 최대 이주민 정착 지원 기관인 세틀먼트 서비스 인터내셔널(Settlement Services International, 이하 SSI) 역시 같은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2000년 11개 이민자 지원센터의 연합으로 시작한 SSI는 현재 연간 약 6만 명 이상을 지원하는 대형 비영리 단체로 성장했다.

SSI는 정부 주도의 단편적 지원만으로는 이주민의 자립과 사회적 통합이 어렵다고 판단하고, 관계 회복과 형성을 초기 정착의 핵심 요소로 설정했다. 이주민을 단순한 지원 대상이 아니라, 역량과 경험을 지닌 주체로 인식하는 접근이다.

‘비비빅(VVVIC)’팀이 호주 최대 이주민 정착기관 세틀먼트 서비스 인터내셔널(SSI) 관계자들과 만나 이주여성 정착에 대한 질문을 하고 있다. /정대훈 코피온 사무국장

SSI의 국제 보호 자문관 카르멘 갈리(Carmen Ghaly)는 “언어 교육이나 행정 서비스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며 “부부 관계와 지역사회와의 연결이 장기적 통합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 한국의 초기 정착 지원은 무엇을 놓치고 있는가

현재 한국의 다문화가족 초기 정착 지원은 한국어 교육 등 강의형 프로그램에 집중돼 있다. 이 방식은 정착 과정에서 발생하는 어려움을 개인의 부족으로 환원하기 쉽고, 관계 갈등이나 구조적 문제를 충분히 다루지 못한다.

호주와 뉴질랜드의 사례는 초기 정착이 단일 프로그램으로 해결될 수 없음을 보여준다. 배우자가 함께 참여하는 관계 회복 과정, 개인 상황에 맞춘 맞춤형 지원, 지역사회와의 지속적인 연결이 함께 작동할 때 정착은 비로소 안정된다.

이제 한국 사회도 질문을 바꿔야 할 시점이다. 다문화 혼인 가족이 얼마나 빨리 적응하는지가 아니라, 이들이 어떤 관계와 환경 속에서 일상을 이어갈 수 있는지를 묻는 질문이다. 초기 정착을 개인의 과제가 아닌 사회의 책임으로 바라볼 때, 다른 해법이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정대훈 사단법인 코피온 사무국장

필자 소개

유엔 경제사회이사회(UN ECOSOC)로부터 특별협약 지위를 부여받은 국제개발 협력 NGO 사단법인 코피온의 사무국장이다. 지구촌의 기회 불평등 문제를 해소하고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 본 기고문 시리즈는 아산나눔재단이 운영하는 사회혁신가 양성 프로그램 ‘아산 프론티어 아카데미’의 수강생들이 해외 선진기관 탐방에서 얻은 통찰과 우리나라 소셜섹터로의 시사점을 나누기 위해 기획되었습니다. 본 기고문은 아산 프론티어 아카데미의 14기 수강생이 각 사회혁신 프로젝트 팀을 대표해 작성한 것으로, 아산나눔재단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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