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생에너지 확대 외치지만…전력산업 제도는 ‘구조적 병목’ 그대로

기후솔루션·RAP 보고서 “독립 규제기관·시장 개혁 필요해”

재생에너지 확대의 가장 큰 걸림돌은 기술이나 설비가 아니라 전력산업의 제도라는 지적이 나왔다. 지난 2일 정부가 2026년을 ‘에너지대전환의 성과 원년’으로 선언하며 재생에너지 100GW 보급, 전력망 확충, 전력시장 개편을 제시했지만, 전력산업의 실제 작동 방식은 여전히 과거 구조에 머물러 있다는 평가다.

이 같은 문제의식은 최근 정책 흐름에서도 드러난다. 정부는 에너지대전환을 핵심 국정 과제로 내세웠지만, 지난달 공개된 광주·전남 특별법 초안에는 한국전력이 재생에너지 발전사업에 직접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특례 조항이 포함됐다. 재생에너지 확대를 내세우면서도, 전력산업의 수직 통합 구조를 오히려 강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기후솔루션과 국제 에너지 규제 전문기관 RAP는 5일 공동 보고서에서 한국전력 중심의 전력산업 구조와 제도 설계가 에너지대전환의 속도를 늦추고 있다고 평가했다. /뉴시스

5일 기후솔루션과 RAP(Regulatory Assistance Project)는 공동 보고서에서 한국전력 중심의 전력산업 구조와 제도 설계가 에너지대전환의 속도를 늦추고 있다고 진단했다. 보고서 제목은 ‘한국의 미래 전력산업 미리보기’로, 정부의 에너지대전환 목표를 전제로 이를 가로막는 구조적 병목을 짚었다.

보고서는 재생에너지 확대가 지연되는 원인을 개별 사업의 문제나 기술 부족에서 찾지 않았다. 대신 독립 규제기관의 부재, 한전 중심의 수직 통합 구조, 화석연료 발전에 유리하게 설계된 시장 규칙이 전환의 핵심 제약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정책 목표와 전력산업의 실제 작동 원리 사이에 구조적 간극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출력제어 반복, 투자 지연, 계통 병목 현상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설비 확대와 계획 발표만으로는 에너지대전환의 성과를 담보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현재 전력산업은 중앙집중형 대규모 발전을 전제로 설계돼 있어, 재생에너지와 에너지저장장치, 수요자원, 분산에너지 같은 새로운 자원이 계통에서 정당한 가치를 인정받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한국의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은 10% 미만으로 OECD 최하위권에 머물러 있다. 이 구조에서는 계통 운영과 투자 결정이 기존 화석연료 발전자산 유지에 유리하게 작동할 수밖에 없고, 재생에너지 접속과 신규 투자는 자연스럽게 뒤로 밀린다는 평가다.

보고서는 특히 한전이 송·배전과 판매, 발전 자회사 지분을 동시에 보유한 수직 통합 구조를 가장 큰 구조적 제약으로 꼽았다. 자연독점 영역인 전력망과 경쟁 영역인 발전·소매가 결합된 현 구조에서는 계통 운영의 중립성이 훼손되고, 재생에너지 접속과 투자 결정이 지연될 위험이 크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발전공기업 통폐합 논의에 앞서, 한전의 송·배전 부문을 독립시키는 구조 개편이 선행돼야 한다고 제안했다.

독립 규제기관의 부재 역시 핵심 문제로 지적됐다. 현재 전력 규제는 정부 부처에 종속된 구조로 운영되며, 요금과 허가, 시장 규칙 같은 핵심 결정이 정치적·단기적 판단의 영향을 받기 쉽다는 평가다. 보고서는 국무총리실 산하 또는 별도의 독립기구 형태로 규제 기능을 분리하고, 고정 임기와 명확한 법적 책무를 부여해야 장기적이고 예측 가능한 에너지 전환이 가능하다고 제언했다.

시장 설계도 도마에 올랐다. 현행 비용기반시장(CBP)과 총괄원가보상제는 화석연료 발전에 유리한 가격 신호를 제공하고, 재생에너지와 분산자원의 시장 참여를 제약하고 있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경쟁입찰 기반 도매시장 전환, 차액계약제도(CfD) 도입, 전력구매계약(PPA) 제도 개선, 분산에너지 자원이 정당한 보상을 받을 수 있는 요금·시장 체계 마련을 주요 과제로 제시했다.

한가희 기후솔루션 전력시장계통팀장은 “재생에너지 확대는 단순한 설비 보급의 문제가 아니라, 구시대에 설계된 전력산업의 원칙을 바꾸는 문제”라며 “새로운 목표를 선언하는 것보다 기존 제도와 인센티브, 거버넌스를 얼마나 정합적으로 맞추느냐가 전환의 성패를 좌우한다”고 말했다. 그는 “더 늦기 전에 정부가 전력산업 개편을 단계적으로 추진하며 사회적 소통에 나서야 지속가능한 전환이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채예빈 더나은미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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