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재산 기준 불명확·주무관청 지정 혼란
재산 운용·사업 변경까지 잇단 제약
공익법인 설립 과정에서 ‘공익법인법’에 따른 허가를 시도한 법인의 60% 이상이 난관을 겪은 것으로 나타났다. 가장 큰 이유는 모호한 ‘기본재산’ 규정과 주무관청(主管官廳) 지정의 불확실성이었다.
이 결과는 지난달 28일 서울 강남구 법무법인 율촌에서 열린 ‘공익법인의 실무적 검토’ 학술대회에서 발표됐다. 학술대회는 한국외대 법학연구소 공익활동법센터와 사단법인 온율, 한국모금가협회가 공동 주최하고 산은나눔재단이 후원, 사랑의열매 서울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지원했다. 이날 전규해 온율 변호사는 6월 말~7월 초 94개 공익법인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 “기본재산 범위 모호해 설립 어려움 겪어”
조사에 참여한 법인의 60.6%가 “설립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었다”고 답했다. 가장 큰 걸림돌은 ‘기본재산 범위 불명확(38개 법인)’이었다. 현행 공익법인법 제4조 제1항은 ‘기본재산으로 목적사업을 원활히 달성할 수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에 한해 설립 허가’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제11조는 기본재산을 ▲설립 당시 출연된 재산 ▲기부·무상으로 취득한 재산 ▲그 재산에서 발생한 과실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현금·주식·부동산 등 자산별로 어디까지를 기본재산으로 볼 것인지는 명확히 밝히지 않는다.
이 때문에 어떤 재산을 기본재산으로 볼지 기관마다 해석이 달라 혼란이 발생한다. 실제 응답자의 60.6%는 “출연재산 평가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었다”고 답했으며, 이유로는 ▲주무관청과 세무당국의 평가 기준 불일치(21곳) ▲출연 시점과 평가 시점 불일치(21곳) 등이 꼽혔다. 전 변호사는 “출연재산 평가 기준을 일원화하고, 주무관청 심사기준을 표준 매뉴얼로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설립 허가를 받을 주무관청을 정하는 것도 큰 부담이었다. 응답자의 26곳은 “목적사업에 맞는 주무관청이 어딘지 판단하기 어려웠다”고 답했다. 사업 내용이 복합적일 경우 혼란은 더 커진다. 보통 가장 비중이 큰 사업을 기준으로 관할 부처를 정하지만, 해당 부처가 관할 밖 사업에 대해 책임을 회피하는 경우가 많아 법인이 사업을 포기하거나 부처 변경을 요구받는 사례도 있었다.
◇ 재산 운용·사업 변경도 규제 벽
설립 후에도 문제는 이어졌다. 응답자의 64.9%는 “기본재산을 매도·증여·임대 등으로 운용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지만, ‘수익이 발생하지 않는 자산까지 기본재산으로 묶여 활용이 곤란하다’는 불만이 가장 많았다(34곳). 어떤 자산이 기본재산에 해당하는지 기준이 모호하거나, 기본재산에서 발생한 수익의 활용 범위가 명확하지 않다는 지적도 나왔다.
또한 목적사업을 변경하거나 확대하려는 과정에서도 주무관청의 문턱은 높았다. 주무관청은 설립자의 의사와 기존 목적사업이 충분히 달성됐는지를 기준으로 허가 여부를 판단하는데, 설립자가 이미 유고한 경우 이를 소명할 방법이 없어 현실적으로 변경이 막히는 경우가 많았다. 새로운 사업을 추가하려 할 때는 반드시 추가 기본재산 출연을 요구받는 경우도 많았다. 기본재산 최소 기준이 법령에 명시되지 않아 부처와 담당자에 따라 달라지기도 했다. 과거 3억 원 수준이던 기준이 최근에는 5억 원 이상으로 높아지는 경우도 있었다.
이날 설문내용을 바탕으로 FGI(표적 집단 면접) 결과를 발표한 황신애 한국모금가협회 상임이사는 “법률과 행정의 충실한 감독이 때로는 공익사업 수행을 가로막는 과도한 규제가 된다”며 “공익 환경을 전문적으로 이해하는 전담 기구가 지침을 마련하고, 법률 간 용어와 개념을 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편, 한국외대 법학연구소 공익활동법센터는 올해 연구 주제를 ‘공익법인법’으로 정하고, 법률이 제대로 운영되고 있는지, 공익활동을 장려하거나 필요할 때 규제하는 데 적합한지, 개선해야 할 점은 무엇인지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그 일환으로 지난 5월에는 ‘공익법인법의 이론적 검토’ 학술대회를 열었으며, 이번 세미나는 그 연장선에서 실제 공익법인법 적용을 받는 단체들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마련됐다. 장보은 한국외대 법학연구소 공익활동법센터장은 “이번 연구와 논의가 공익 관련 법 제도가 실제 공익활동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개선되는 데 기여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조유현 더나은미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