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해법] 고액·유산 기부 막는 세제 장벽
기부금 공제 선택권·세액 거래 제도 등 실효적 개편 필요
기부 의지는 있지만 제도 장벽이 높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고액·유산기부와 관련해선 세제 개편 없이는 활성화가 어렵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2023년 소득 수준별 기부율을 보면 월 소득 600만 원 이상 고소득 가구의 기부 참여율은 34.4%로 비교적 높았다. 하지만 2021년과 비교하면 오히려 2.6%p 감소했다. 중위 소득층(200만~600만 원) 기부율이 같은 기간 증가한 것과 대비된다.
전문가들은 이처럼 기부 여력은 있지만 참여율이 정체되거나 감소하는 현상은 세제 설계의 한계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황영기 한국자선단체협의회 이사장은 지난 8일 사단법인 온율과 사회적가치연구원이 공동주최한한 ‘제2회 율촌-온율 공익법제 컨퍼런스’에서 “부의 양극화가 심화되는 상황에서 초고액 기부 시장은 커질 수밖에 없다”며 “기부자가 소득공제와 세액공제 중 선택할 수 있는 구조로 제도를 유연하게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일본은 기부자가 자신에게 유리한 공제 방식을 선택할 수 있도록 제도를 설계했다. 특히 한국에서 근로소득자는 세액공제만 가능하지만, 사업소득자는 기부금을 비용으로 처리할 수 있어 형평성 문제도 제기된다. 전영준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는 “기부금에 대해 선택형 공제를 허용하거나, 일정 금액 이상에 대해 추가 공제율을 적용하는 등 제도적 유인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유산기부도 막는 ‘세금 리스크’
기부세제 문제는 생애 마지막 기부인 유산기부로까지 이어진다. 관련 세법이 미비하거나, 기존 상속제도와 충돌해 실제 기부가 무산되거나 위축되는 사례가 적지 않다.
대표적인 사례가 고(故) 황필상 박사의 사례다. 황 박사는 2002년 아주대학교에 약 200억 원 상당의 주식과 현금을 기부해 구장학재단을 설립했지만, 세무당국은 황 박사와 재단 간 특수관계를 인정해 140억 원의 증여세를 부과했다. 그는 소송을 제기했고, 2017년 대법원에서 증여세 부과는 부당하다는 최종 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그 사이 재단 운영은 큰 타격을 받았고, 공익 기부에 과도한 세금이 부과될 수 있는 제도의 문제점이 드러났다.
김근재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는 “현행 신탁기부 제도는 주로 현금에 한정돼 있지만, 부동산·주식 등 다양한 자산을 신탁기부 대상으로 포함시켜야 한다”며 “영국처럼 상속재산의 10% 이상을 공익단체에 기부하면 상속세율을 낮춰주는 방식(레거시 10 캠페인)도 참고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한 “유류분 반환청구권은 최소한의 생계유지에 필요한 경우로 제한해야 유산기부가 보다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 기부를 넘어 사회문제 해결로…‘사회성과 세액공제’ 실험도
기부에 대한 세제 혜택을 확대하는 것이 단순한 기부금 증가에 그치지 않고, 사회문제 해결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제안도 있다. 조희진 사회적가치연구원 팀장은 ‘기업이 창출한 사회적 가치에 거래 가능한 세액공제권을 부여하자’는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이는 SK그룹이 실험 중인 ‘사회성과인센티브(SPC)’ 모델을 기반으로 한다. 현재는 사회성과를 측정해 현금 보상을 제공하는 단계지만, 향후 이를 탄소배출권처럼 거래 가능한 세액공제권으로 전환하는 방안이 추진 중이다. 미국은 2022년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통해 친환경 프로젝트에서 발생한 세액공제를 제3자에게 양도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조 팀장은 “사회문제는 복잡해지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정부 지출은 지난 10년간 80% 이상 증가했지만, 유엔 지속가능개발목표(SDGs) 달성률은 50%에 미치지 못한다”며 “세제 개편을 통한 민간 자원의 유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사회적 가치가 세액공제로 거래되면 이를 판매하려는 기업은 더 적극적으로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게 되고, 구매하는 기업은 세제 혜택을 얻는 상생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아이디어다.
홍병진 한국조세재정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사회적 가치를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가 핵심”이라며 “SDGs나 탄소감축 같은 국제 기준부터 외부효과까지 적용 범위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세액공제를 부여하면 국가 재정에는 어떤 영향이 생기는지도 종합적으로 분석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날 컨퍼런스를 개최한 온율의 윤세리 공동이사장은 “공익단체는 제도적 보호 밖에 있는 사람들을 위한 마지막 안전망이자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혁신적인 실험장”이라며 “여전히 활동 지속과 확장에 법적·제도적 장벽이 많다”고 지적했다. 이어 “공익법제는 장벽이 아닌 단체들이 안정적이고 효율적으로 활동하도록 지원하는 토대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채예빈 더나은미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