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성과에 인센티브’…SK SPC 모델, 세계 사회혁신가를 불러모았다

SK 사회적가치연구원 슈왑재단 총회 연계 세미나 현장
보이지 않는 가치를 수치로 환산…‘성과기반보상’ 실험에 관심 집중

“사회적기업이 만든 변화에 현금 보상이 가능하다고요?”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열린 한 세미나에, 인도, 미국, 브라질, 방글라데시 등 전 세계 70여 명의 사회혁신가들이 모여들었다. 한국에서 시작된 ‘사회성과인센티브(Social Progress Credits·이하 SPC)’ 실험이 그 이유였다.

SK그룹 산하 비영리재단 사회적가치연구원(이하 CSES)은 지난 21일 세계경제포럼(WEF) 산하 슈왑재단과 서울 한국고등교육재단에서 ‘사회혁신 기업을 위한 성과기반보상’ 세미나를 열었다. 사회적기업이 창출한 ‘보이지 않는 사회적 성과’를 측정해 인센티브로 보상하는 SPC 모델을 소개하고, 글로벌 사회혁신가들과 소통하는 자리였다.

21일 WEF 산하 슈왑재단과 SK그룹 사회적가치연구원이 함께 주최한 세미나에 참여한 사회혁신가들이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SK 사회적가치연구원

SPC는 사회적기업이 만들어낸 비재무적 성과를 수치화해 금전으로 보상하는 모델이다. SK그룹이 2015년 처음 도입했고, 지금까지 약 500개 기업이 참여했다. 측정된 사회성과는 5000억원 규모, 이 가운데 700억원이 현금 보상으로 지급됐다.

SPC는 단순히 보상에 머무르지 않고, 성과에 기반한 재투자가 사회적 임팩트를 확장하는 구조를 목표로 한다. 현재는 서울시 등 6개 지방정부가 운영에 참여하고 있으며, 제주도는 이를 조례로 제도화한 전국 최초 사례로 꼽힌다. 국회 및 중앙정부 차원의 논의도 점차 본격화되는 분위기다.

◇ “성과를 어떻게 측정하나요?”…질문 쏟아진 임팩트 실험 현장

현장에서는 SPC 소개 세션 도중 10건이 넘는 질문이 이어졌다. 가장 뜨거운 이슈는 ‘성과 측정의 기준’이었다. 참가자들은 “성과를 어떤 수식으로 환산하느냐”, “예방 중심의 교육·보건 사업도 수치화할 수 있나”, “탄소 크레딧처럼 사회적 가치도 국제 표준화가 가능한가” 등을 물었다.

이에 대해 임가영 CSES 선임연구원은 “기업별로 1년간 공동으로 측정 지표를 설계하고, 수식도 맞춤형으로 구성한다”며 “시장에 비교군이 없을 경우 수식 자체를 새로 개발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SPC는 단순한 보상 제도가 아니라, 사회적 가치를 정량화하고 해석하는 ‘공동 실험의 장’이다”고 강조했다.

이어 “SPC 기반 모델을 통해 SK 계열사 약 200곳의 사회성과도 함께 측정하고 있다”며 “이는 글로벌 지속가능성 공시 흐름과 맞물려 있으며, 장기적으로는 사회적 가치를 재무제표 안에 포함시키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21일 WEF 산하 슈왑재단과 SK그룹 사회적가치연구원이 함께 주최한 ‘사회혁신 기업을 위한 성과기반보상’ 세미나에서 임가영 사회적가치연구원 선임연구원이 SPC를 소개하고 있다. /SK 사회적가치연구원

정부 보조와 중복되는 성과는 제외된다. “해당 사회적기업이 없었다면 발생하지 않았을 결과만을 성과로 측정한다”는 기준을 설명하며, 예를 들어 취약계층 고용 등 정부 지원과 중복된 항목은 인센티브 지급에서 제외된다고 덧붙였다.

제도화를 추진하며 겪은 시행착오들도 공유됐다. 임 연구원은 “이미 민간투자를 받고 있는 단체에 또 보상을 주는 건 불공정하다는 반발이 있었다”며 “그래서 지금은 일부 예산을 선지급하고 나머지는 성과에 따라 집행하는 ‘혼합형 구조’를 운영 중”이라고 말했다. 특히 조례 제정을 통해 모델을 제도화한 제주도 사례는 민간 실험이 공공정책으로 확장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평가된다.

◇ “투자자 설득 못했는데, 수치가 해냈다”…SPC 참여 기업들의 성장기

세미나에는 닷, 수퍼빈, 스타스테크, 시지온, 에코라이프패키징, 점프, 투아트, 티에이비 등 SPC 참여기업 8곳도 나와 직접 성장 경험을 소개했다. 시각장애인용 촉각 디스플레이 기술을 개발한 ‘닷’의 최아름 부장은 “과거엔 시각장애인이 제품을 사용하는 사진은 있었지만, 왜 투자받아야 하는지를 설명할 통계는 없었다”며 “사회적가치연구원과 함께 채용 및 제품 효과를 측정했고, 이 데이터를 바탕으로 2020~2021년 시리즈 B 투자를 받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글로벌 사회혁신가들이 세미나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SPC 참여기업인 슈퍼빈 부스에 방문해 슈퍼빈과 폐플라스틱 무인회수기에 대해 설명을 듣고 있다. /SK 사회적가치연구원

소셜 댓글 관리 서비스를 운영하는 시지온은 SPC 참여를 계기로 사업 모델에 전환점을 맞았다. 김범진 대표는 “일반 뉴스 사이트 대비 악성 댓글 감소 수치를 SPC를 통해 확인하며, 그 자체도 사회적 가치가 될 수 있다는 점을 배웠다”며 “이후엔 좋은 댓글을 유도하고 이에 보상을 주는 구조로 서비스를 확장하게 됐다”고 말했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시각보조 AI를 개발하는 투아트는 SPC 인센티브를 신제품 개발 자금으로 활용하고 있다. 현재 사용자 맞춤형 소프트웨어를 탑재한 웨어러블 카메라 ‘설리번 아이즈’ 출시를 앞두고 있다. 대학생 멘토와 소외지역 청소년을 연결하는 교육 플랫폼 ‘점프’는 SPC 참여 기업 중 교육 부문 1위, 전체 3위에 오르며 주목받았다. “비영리 조직도 사회적기업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인식 확산에 힘을 보탰다는 평가다.

프랑수아 보니치 슈왑재단 사무총장은 “이번 세미나는 글로벌 사회적기업 생태계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을지, 어떻게 임팩트를 측정하고 평가할 수 있을지를 모색하는 시간이었다”며 “한국 기업들의 창의적 실험이 시스템 변화의 마중물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채예빈 더나은미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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