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익 목적 투자 법제화 논의 본격화
공익법인·지자체 “제도적 장벽 여전”…실행사례도 공유
“전통적인 지원 방식만으로는 복잡해진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어렵습니다. 매년 바뀌는 사회공헌 예산에만 의존할 수도 없구요. 수익을 재투자하는 방식의 임팩트 투자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입니다.” (C 사회복지법인 관계자)
최근 사회문제 해결의 방식으로 ‘임팩트 투자’를 모색하는 공익법인이 늘고 있다. 기부나 보조금이 아닌 투자 방식으로 자산을 운용하려는 흐름이 형성되고 있지만, 현행 제도는 이를 뒷받침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세제상 불이익, 투자 목적사업 인정의 불확실성, 인건비 규제 등 구조적 장벽이 여전히 높다는 것이다.

지난 17일 서울 성수에서 열린 ‘2025 임팩트투자 생태계 간담회’에서는 공익법인의 투자 실행 현실과 제도 개선을 주제로 논의가 이어졌다. 행사는 엠와이소셜컴퍼니(이하 MYSC)와 AVPN이 공동 주최하고, 9개 공익법인과 전주시·영암군 등 7개 지자체가 참여했다.
◇ “공익법인 자산 200조…투자는 단 2%”
이희숙 재단법인 동천 변호사는 첫 발제에서 “국내 공익법인의 자산은 약 200조 원에 달하지만, 임팩트 투자로 활용되는 자산은 전체의 2%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그는 “공익법인이 사회적기업 등에 투자할 경우, 세법상 수익사업으로 간주돼 증여세 부담 우려가 있다”며 “법적 근거 없는 투자 실행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지적했다.
현재 공익법인의 임팩트 투자를 가로막는 제도는 크게 세 가지다. ▲10% 이내로 제한된 주식 보유 비율 ▲사회적기업 투자 시 ‘목적사업’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불확실성 ▲투자 실행을 위한 전문 인력 확보가 어려운 보수 상한 제도다.
이 같은 제약을 해소하기 위해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공익 목적 투자’를 세제상 목적사업으로 인정하는 상속세 및 증여세법 개정안을 발의한 상태다. 해당 개정안에는 지분 투자, 대출, 간접 투자 허용과 주식 보유 제한 예외 조항도 포함됐다. 이는 국내에서도 공익법인의 자산을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금융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법적 기반을 마련하려는 시도다. 미국은 공익법인의 투자 활동을 ‘PRI(Program-Related Investment)’로 정의해 공익성을 인정하며, 영국은 자선법(Charity Act)에 사회투자 조항을 명시하고 있다.
◇ “투자 회수로 다시 사회문제 해결”…현장선 실행 모델 등장
공익법인의 실제 투자 실행 사례도 현장에서 소개됐다. 사단법인 피피엘(더좋은세상)은 사회성과보상사업(SIB) 방식으로 아동·청년 문제에 대응하고 있다. SIB는 민간 자본으로 먼저 사회문제 해결에 투자한 뒤, 성과 달성 시 정부 등이 투자금을 회수해 주는 구조다.
2017년에는 서울시, MYSC와 함께 ‘경계선 지능 아동 교육 SIB’를 추진했다. 총 10억 원 규모의 펀드를 조성해, IQ 71~84 수준의 그룹홈 거주 아동 100명을 대상으로 3년간 정서 치유와 인지 자극 프로그램을 운영한 프로젝트다. 투자 원금은 100% 회수됐고, 성균관대 연구 결과에 따르면 약 60억 원에 달하는 사회적 가치가 창출된 것으로 평가됐다.
또 다른 사례는 ‘청년 자살예방 SIB(사회성과보상사업)’이다. 20~30대 직장인들이 활동하는 익명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자살 암시 글을 자연어처리 기술로 분석해 위험 신호를 조기에 포착하고, 개입으로 연결하는 방식이다. 성과보상자는 민간기관인 팬임팩트코리아이며, 연 8억5000만 원 규모의 사업비는 민간 투자자를 통해 조달된다.
한편 이날 간담회에서는 경남청년임팩트 투자펀드, 강원피크닉투자조합 등 지자체가 임팩트 펀드에 출자한 사례도 소개됐다. 이 펀드는 지자체와 지역 공공기관, 민간 대기업이 공동 출자자로 참여해 해당 지역의 소셜벤처에 투자하는 구조다. 투자금은 단순 자금 지원에 그치지 않고, 지역 특화 성장지원 프로그램과 연계해 운용됐다.
지자체 관계자들은 “기존의 보조금 사업은 해마다 종료되지만, 임팩트 펀드는 회수된 자금이 재투자로 이어질 수 있어 구조적으로 지속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다만 “투자할 만한 기업이 지역 내에 얼마나 있는지, 행정 예산을 투입했을 때 손실이 발생하면 감사 책임은 어떻게 감당할지, 사회적 가치 측정 기준은 어떻게 설정할지 등은 여전히 풀어야 할 과제”라고 지적했다.
김정태 MYSC 대표는 “공익법인과 지자체, 국제 공공기구가 함께 참여하는 ‘혼합금융(Blended Finance)’ 구조가 국내에서도 확산되고 있다”며 “사회문제를 해결하려면 공익법인 등 다양한 조직이 단순 지원을 넘어 투자 주체로 참여하는 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전했다.
김규리 더나은미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