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태호가 웹툰으로 다시 꺼낸 ‘유일한’

[인터뷰] 윤태호 작가
신작 ‘NEW 일한’ 통해 유일한 박사의 기업가·독립운동가 면모 재조명
“불확실성의 시대, 흔들리지 않는 자기 경영의 나침반을 제안하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헌법 제1조 2항의 이 문장은 어디에서 시작됐을까. 그 기원은 100여 년 전인 191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한인자유대회’에서 당시 24세 청년 유일한(유한양행 설립자)이 작성하고 낭독한 결의문에는 “정부의 정당한 권력은 국민의 동의로부터 유래한다”는 정신이 담겨 있었다.

유한양행 창립 100주년을 맞아 지난 3월, ‘미생’ ‘이끼’의 윤태호 작가는 웹툰 ‘NEW 일한’을 통해 유일한 박사를 다시 불러냈다. 지난 15일 서울 동작구 유한양행 본사에서 만난 윤 작가는 유일한 박사에 대해 “모든 삶이 드라마 소재가 될 정도로 극적인 인물”이라고 표현했다. 

‘NEW 일한’은 드라마 제작 발표회(PT) 형식을 빌려 이야기를 전개한다. 작품 속에서는 1인 기획사 대표들과 작가가 팀을 꾸려 ‘드라마화할 위인’을 두고 경쟁하며 유일한을 제안한다.

윤 작가는 이 같은 형식에 대해 “유일한 박사는 자서전 하나 남기지 않고 자신을 드러내지 않은 분이었다”며 “전지적 시점으로 그의 생각을 단정 짓기보다, 나처럼 잘 모르지만 알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시선으로 유일한을 찾아가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 성웅 이순신 대신 ‘근대의 유일한’을 택한 이유 

“먼 과거의 위인(이순신)은 함께 웃을 수 있어. 근데 유일한은 근대야. 이 어린아이가 미국에서 삶을 헤쳐나갈 때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는 무얼 하셨을까 계속 신경 쓰여. (…) 나와 내 가족의 삶이 바로 대입되고 원치 않는 거울을 마주 보게 되는 상황 말이야.” -웹툰 ‘NEW 일한’ 中

작품 속 1인 기획사 김선호 대표는 ‘이순신 거북선 프로젝트’에 맞서 유일한 박사를 아이템으로 제안받고 내적 갈등을 겪는다. 가까운 역사는 개인의 삶과 직접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거를 비판적이고 냉소적으로 바라보는 시대일수록 ‘뻗으면 닿을 듯 가깝고, 그가 세운 회사와 학교가 당장 목격 가능한’ 살아있는 멘토가 필요했다는 것이 윤 작가의 기획 의도였다. 

◇ 웹툰이 포착한 유일한의 선택…‘공익을 설계한 기업가’ 

웹툰은 유일한의 삶을 단순한 성공담이 아니라 ‘선택의 연속’으로 그린다. ‘왜 통조림 회사를 하다가 제약회사였는가’, ‘왜 신문에 염료 광고를 실었나’ 같은 질문을 던지며, 결과가 아닌 과정으로 인물을 해석한다. 

웹툰에 따르면, 미시간대 재학 시절 중국인 노동자를 겨냥해 통조림 사업 ‘라초이’를 공동 창업해 자본을 축적한 유 박사는, 1926년 이를 정리하고 조선으로 돌아와 유한양행을 세운다. “건강한 국민이 있어야 교육도, 독립도 가능하다”는 판단이었다.  

1928년 동아일보에 실린 유한양행 최초의 신문 광고는 약이 아닌 ‘염료’였다. 동포들의 때에 절어 있는 흰옷을 보고, 위생 관리의 어려움을 덜어주고자 수입한 염료의 사용법을 알리려는 계몽적 목적이었다. 1933년에는 비싼 의약품을 살 수 없는 서민을 위해 자체 개발한 가정상비약 ‘안티푸라민(염증에 반대한다는 뜻)’을 내놓았다.

윤 작가는 “글을 모르는 서민들도 쉽게 약을 찾을 수 있게 캔 뚜껑에 간호사 캐릭터를 넣었고, 신문 광고에는 ‘진료는 의사에게’라는 문구도 사용했다”며 “단순한 판매를 넘어 공중보건 체계를 고민한 시선이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접근은 경영 전반으로 이어진다. 웹툰에는 1960년대 정권의 전방위적 세무조사 속에서도 단 1원의 회계 부정 없이 완벽한 장부로 동탑산업훈장을 받는 장면과, 가족 대신 사원 출신에게 경영을 맡기며 국내 최초로 전문경영인 제도를 도입하는 과정도 그려졌다. 이는 ‘기업은 사회의 것’이라는 철학의 실천이었다.

◇ “이 땅에 울타리를 치지 마라”…단호했던 유언

“손녀 유일링에게 대학 학자금 1만 달러를 준다. 딸 유재라에게 유한공고 안의 내 묘소와 주변 땅 5000평을 물려주니, 유한동산으로 꾸며 학생들이 마음대로 놀게 하라. 유한양행 주식 14만 여주는 전부 유한재단에 기증한다. 아들 유일선은 대학까지 졸업시켰으니 자립해서 살아라.” -유일한 박사의 유언장 中

작품 후반부에는 유일한 박사의 유언장 내용이 비중 있게 담겼다. 그는 자녀들에게는 자립을 요구하며 최소한의 유산만 남기고, 모든 개인 주식(당시 총 주식의 40%)을 공익재단에 기부했다. 현재 유한양행 지분 중 23% 이상은 유한재단과 유한학원이 보유하고 있다. 유일한이 기부한 주식을 바탕으로 경영권 안정을 꾀하는 동시에, 배당 수익을 장학과 사회공헌 재원으로 돌리는 선순환 구조를 확립한 것이다.

윤 작가는 “유일한 박사는 국민이 약을 사면 그 이익이 재단(유한재단·유한학원)을 통해 다시 학생과 사회로 돌아가는 구조를 만들었다”며 “경영권 안정과 사회 공헌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완벽한 설계를 100년 전에 이미 한 것”이라고 밝혔다.

인터뷰를 마치며 윤 작가는 오늘의 시대에 던지는 메시지를 분명히 했다. 

“요즘 불확실성의 시대라고들 하지만, 일제강점기와 전쟁을 겪은 그 시대보다 더 불안했다고 할 수 있을까요? 이제는 유일한 박사처럼 삶의 주도권을 쥐고 스스로를 단단하게 경영하는 태도를 가져야 할 때입니다.” 

한편, ‘NEW 일한’ 웹툰은 18일 기준 조회수 2만7000회와 평점 9.8을 기록 중이다. 독자들은 “유언 문구에 소름이 돋았다”, “오너 없는 진짜 전문경영인 체제를 만든, 다시 없는 인물”,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진정한 기업가” 등의 반응을 보이고 있다.

조유현 더나은미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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