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개월밖에 분석할 시간이 없어 그 부분까지는 살피기 어려웠습니다.” 한 증권사 담당자가 상장 주관사 선정 평가회의에서 이렇게 답했다. 이 회사가 인증 사회적기업이라는 점을 상장 전략에서 어떻게 분석했는지 묻자 돌아온 답이었다.
즉답을 피하면서도 무난하게 넘어갈 수 있는 말이었지만, 내겐 실망스러운 답변이었다. 그날 참석한 것은 한 인증 사회적기업의 상장 주관사 선정 평가회의였다. 100페이지에 가까운 제안서를 바탕으로 상장 시점, 비교기업군, 투자자 설득 포인트, 평가 가치 논리가 설명됐다. 하지만 정작 ‘사회적기업’이라는 단어는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았다. ‘사회적 가치’라는 표현도 찾을 수 없었다.
발표가 끝나고 질의응답이 시작되자 잠시 망설였다. 상장의 본질적 질문들이 오가는 자리에서 ‘사회적기업’ 운운하는 것이 괜히 한가한 질문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때 옆자리에서 나를 평가 회의에 초대한 사회적기업 대표가 채근했다. “대표님, 사회적기업 관련해서도 질문해 보세요.”
그날의 장면은 지금 한국 자본시장이 사회적기업을 대하는 방식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사회적기업이 상장을 준비할 만큼 성장했는데도, 시장은 여전히 그 기업을 이해하는 언어를 충분히 갖추지 못한 채 익숙한 재무 프레임으로만 해석하려 한다. 사회적기업이라는 정체성은 가치평가와 상장 내러티브의 중심에 들어오지도 못하고, 회사의 일반 연혁 소개에서도 슬그머니 자취를 감췄다.
◇ 사회적기업의 ‘사회적’은 어떻게 해석되고 있나?
공교롭게도 일주일 전, 고용노동부 정책 담당자들과 인증 사회적기업 대표들이 만나는 자리에 투자사 자격으로 참석했다. 대표들이 전한 목소리는 비장했고 무거웠다. 정부가 만든 사회적기업 인증 제도가 넓게는 자본시장에서, 좁게는 같은 정부 체계 안의 거래소 주변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것 같다는 문제제기였다. 어떤 대표는 잠재 투자자로부터 “상장에 도움이 안 되니 인증을 반납하는 것이 낫지 않겠느냐”는 말까지 들었다고 했다. 사회적기업 인증이 기업가치 산정에서 플러스가 아니라 마이너스로 읽힌다는 뜻이었다.
흥미로운 점은 한국 자본시장이 결코 비재무 정보에 무관심한 공간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시장은 이미 코스피 200 기후변화지수, KRX ESG Leaders 150 같은 지수를 만들고, 기업별 ESG 등급을 여러 평가기관 기준으로 보여주며, ESG 채권 플랫폼까지 운영하고 있다. 책임투자 자금도 빠르게 늘고 있다.
그런데 정작 ‘사회적기업’이라는 제도적 정체성은 왜 이 언어 속에 자연스럽게 편입되지 못하고 있는 걸까? 환경과 지배구조는 투자 언어로 번역되는데, 사회적기업의 ‘사회적’은 여전히 특수사례나 불확실성으로 남아 있다.
◇ 사회적기업이 자본시장을 만날 때
정부가 공인한 제도가 특정 맥락에서는 오히려 불리한 신호로 해석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고용노동부 담당자들 역시 곤혹스러워했다. 사회적기업 인증 제도가 처음 도입될 때, 훗날 인증 사회적기업이 자본시장 상장을 준비하게 되리라 상상한 사람은 많지 않았을 것이다.
당시 정책은 사회적 목적을 가진 기업을 식별하고 육성하며 지원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중요한 진전이었다. 그러나 현재 생태계는 그보다 멀리 왔다. 사회적기업은 창업을 넘어 스케일업을 이야기하게 되었고, 임팩트투자와 민간 자본을 만나기 시작했으며, 이제는 상장이라는 공개시장의 문턱까지 바라보는 기업들도 등장했다.
한때는 거칠고도 낮은 확률의 영역처럼 보였던 일이, 사회적기업가들의 도전과 생태계의 성장 속에서 현실 시나리오가 되었다. 우리는 이제 실제로 ‘사회적기업이 자본시장을 만날 때’라는 장면 앞에 서 있다. 바로 그 지점에서 묻게 된다. 정책 주무 부처인 고용노동부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이 질문은 비난을 위한 것이 아니다. 정책의 성공을 위해 꼭 필요한 질문이다. 사회적기업 정책이 진정으로 성공했다면 더 많은 조직을 인증하는 데서 그쳐서는 안 된다. 그 기업들이 창업 초기의 지원 단계를 넘어 성장하고, 민간투자를 유치하고, 더 큰 자본과 만나며, 때에 따라서는 상장이라는 공개시장의 검증대에 오를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순간 시장이 그들의 정체성을 낯설어하지 않아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지금의 제도는 인증과 지원 단계까지는 비교적 촘촘하지만, 인증 이후의 성장과 자본조달, 자본시장과의 접점에 대해서는 놀랄 만큼 침묵한다. 사회적기업을 ‘지원이 필요한 정책 대상’으로 바라보는 언어는 풍부하지만, ‘시장 안에서 새롭게 해석되고 평가받아야 할 경제주체’로 바라보는 언어는 아직 빈약하다. 그 공백은 곧장 시장의 오해로 이어질 수 있다.
고용 성과나 사회적 비용 절감 등 사회적기업이 만드는 긍정적 외부효과가 기업의 범주를 넘어 사회에 이바지하는 바가 많다면 우리는 상장의 방식에도 기술특례상장과 같이 ‘사회적 특례 상장’을 고려해 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사회적기업이라는 이유만으로 프리미엄을 달라는 것이 아니다. 반대로 그 정체성이 가치평가에서 삭제되어도 된다는 뜻은 더더욱 아니다. 필요한 것은 정부가 인정한 ‘사회적’이라는 관점이 자본시장에서도 제대로 평가받는 공정한 해석의 틀이다.
◇ 고용노동부와 생태계에 바란다
그렇다면 고용노동부를 비롯한 정책당국은 무엇을 해야 할까. 첫째, 사회적기업 정책의 시야를 인증 이후까지 넓혀야 한다. 스케일업과 투자, 프리IPO, 상장 이후까지 이어지는 성장 경로를 정책적으로 조망해야 한다. 둘째, 사회적기업의 가치가 시장에서 번역될 수 있는 중간언어를 만들어야 한다. 사회성과 사업성이 어떻게 결합해 장기 기업가치로 이어지는지, 투자자와 주관사, 거래소가 이해할 수 있는 프레임과 사례가 필요하다. 셋째, 고용노동부가 직접 거래소와 주관사, 기관투자자들과의 대화도 시작해야 한다. 사회적기업을 예외적인 특수 사례가 아니라 새로운 형태의 기업군으로 이해하도록 돕는 학습과 축적이 필요하다.
생태계 이해관계자들의 역할도 중요하다. 투자자는 창업가에게 인증을 포기하라고 조언하기 전에, 왜 시장이 그것을 불편하게 읽는지 함께 분석하고 다른 언어로 번역할 책임이 있다. 중간지원조직은 인증 제도를 지키는 데만 머물 것이 아니라, 그 제도가 성장 단계에서 어떻게 작동해야 하는지 질문해야 한다. 상장을 준비하는 창업자 역시 ‘사회적’을 감추는 방식이 아니라, 그것이 어떻게 사업 모델과 경쟁력으로 연결되는지 더 정교하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사회적기업 인증을 자진 포기할지 고민하는 창업자가 등장했다는 사실은 개인의 선택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제도와 시장 사이에 아직 메워지지 않은 틈이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 틈을 메우는 일은 특정 기업 하나의 몫이 아니라, 정책과 시장, 생태계가 함께 감당해야 할 과제다.
사회적기업을 키워냈다면, 이제는 시장에서 제대로 읽히게 해야 한다. 사회적기업이 상장을 준비하는데도 아무도 사회적기업을 말하지 않는다면, 그 침묵은 중립이 아니다. 그것은 시장이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는 신호이며, 동시에 정책이 끝까지 다리를 놓지 못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제는 사회적기업을 보호와 지원의 대상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자본시장 안에서 새롭게 해석되고 평가받아야 할 경제주체로 바라봐야 한다. 사회적기업 정책의 다음 단계는 인증 숫자를 늘리는 것이 아니라, 그 기업들이 시장에서 불이익 없이 자신들의 정체성과 경쟁력을 함께 설명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있어야 한다. 그래서 다시 묻는다. 사회적기업이 자본시장을 만날 때, 고용노동부는 어디에 있어야 하는가.
김정태 엠와이소셜컴퍼니 대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