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말이 되면 지난 한 해를 습관적으로 돌아보게 되는데, 올해는 유독 내년 그리고 다음의 10년이 부쩍 궁금해졌다. 인공지능을 통한 생산성과 산업, 그리고 개개인의 삶의 변화가 워낙 강렬해서일까? 한편으로는 풍요와 낙관적인 전망이 들면서도 우리가 직면한 현실을 동시에 생각해 보며, 앞으로의 미래를 설명하는 가장 선명한 문장이 ‘두 도시 이야기’의 한 문장이 아닐까 떠올랐다. ‘최고의 시대이자 동시에 최악의 시대’.
이러한 시대에 앞으로 나와 임팩트 생태계가 더욱 추구해야 할 가치가 무엇일지에 대한 실마리를 ‘존 칼훈의 랫 시티(Rat City)’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인구소멸에 대한 실험 보고서’라는 섬뜩한 부제가 붙은 이 책은 인구 과밀이 사회 구조와 개인의 행동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살펴보고자 했던 연구를 소개한다. 실험 쥐를 대상으로 먹이, 공간, 안전, 온도까지 모든 조건이 완벽하게 통제된 환경에서 진행된 ‘유토피아’ 실험집단은 시간이 흐르며 급격히 붕괴했다.
최초 걱정했던 인구 과밀이 문제가 아니었다. 풍요가 부족한 것도 아니었다. 폭력과 고립이 늘어나고 번식이 멈췄다. 실험 쥐가 소멸한 진짜 이유는 명확했다. 바로 ‘사회적 역할과 상호작용’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실험 쥐들은 성체가 된 이후에도 구애나 교미를 시도하지 않았고, 먹고 자는 것 외에는 자신을 단장하는 데 시간을 보냈다고 기록돼 있다.
이 실험은 ‘두 도시’ 모두에 속한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문제는 자원의 결핍만이 아니라 구조의 붕괴에서도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인구감소’가 한국이 직면한 가장 큰 미래의 구조적 위기라고 이야기된다. 하지만 우리가 진짜 두려워해야 할 것은 인구의 숫자가 아니라, 서로의 연결이 약해지고 기대되는 역할이 사라지며 양질의 상호작용 관계가 감소하는 것 자체가 아닐까. 즉, 인구감소는 원인이 아니라 사회적 역할과 상호작용이 약해지면서 드러나는 현상일 수 있다.
진짜 위기는 인구의 위기가 아니라, 관계의 위기다. 인공지능 도입으로 조직이 기존의 인원마저 축소하고 신규 채용도 중단하면 비용은 아낄 수 있지만, 상호작용의 기회와 관계 역시 감소한다. 나는 향후 10년, 임팩트 생태계에 가장 중요한 질문은 상호작용을 늘리고 관계와 연결을 어떻게 강화할 것인가에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잘 아는 게임이론인 ‘죄수의 딜레마’ 실험은 ‘어떻게’에 대해 우리에게 명확한 조언을 제공한다. 게임이 한 번뿐이라면 배신이 가장 유리한 선택이지만, 우리의 게임은 한 번에 그치지 않고 매번 반복되는 게임이다. 이럴 때 장기적으로 살아남는 가장 강력한 전략은 언제나 ‘팃포탯(tit-for-tat)’이라고 세계적인 게임이론가인 로버트 액셀로드는 ‘협력의 진화’에서 설명한다. 상대방을 믿고 먼저 협력의 손길을 내밀 때 상대방도 그렇게 행동할 확률이 높아진다. 실험 쥐들은 상호작용을 포기하며 미래의 문을 닫았지만, 우리는 먼저 손을 내미는 행동을 통해 다른 미래로 가는 문을 열 수 있다.
여기서 사회혁신 생태계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불편한 협력’의 관계까지도 확대되어야 한다. 이는 종종 이해관계가 다른 주체들이 같은 테이블에 앉는, 불편하지만 피할 수 없는 협력을 의미한다. 앞서 ‘랫 시티’의 붕괴 원인 중 하나를 상기해 보자. 그들은 자신이 속한 커뮤니티가 아니면 배척했고, 다른 실험 쥐 커뮤니티의 일은 철저히 외면했다. 그 결과가 무엇이었는지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서로에게 불편하고 친숙하지 않은 곳끼리 협력하고, 영리와 비영리가 경계를 넘으며, 공공부문과 시민사회가 서로의 역할을 결합할 때 우리는 ‘두 도시’ 중에 어떤 한 도시에 더 힘을 실어줄 수 있게 된다. 내가 성공하기 위해 상대방이 먼저 성공하도록 돕는 선택, 그 역설적인 태도가 결국 생태계를 지속 가능하게 하고, ‘랫 시티’의 결말이 우리의 결말이 되지 않도록 만든다.
2025년의 끝에서, 임팩트 생태계의 모든 플레이어에게 이 질문을 남기고 싶다. 풍요는 그 자체로 우리를 구원하지 못한다. 우리의 최선은 사회적 역할과 상호작용을 더 깊게 만드는 것에 이바지하는가? 임팩트투자는 미래의 갈등 비용을 낮추는 데 기여하고 있는가? 결국 미래가 스스로를 구할 수 있도록 시간을 벌어주고 있는가? 나는 임팩트투자야말로 미래의 갈등 비용을 낮추고 우리 다음 세대가 자신을 구원할 시간을 벌어주는 가장 실용적인 도구이자, 지금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최고의 전략 중 하나라고 믿는다.
김정태 엠와이소셜컴퍼니 대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