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판로·투자 한자리에…사회적경제, 성장의 조건을 다시 묻다

사회적경제, 시장에서 도약하는 법 <1>
판로 확대와 투자 연계가 여는 새로운 성장의 길

“마트에서 만 원짜리 농산물을 사면, 농부에게 돌아가는 돈은 절반뿐입니다.”

해남고구마생산자협회에서 13년간 일해 온 박진우 파머스넷 대표는 농산물 가격 구조를 이렇게 설명했다. 그는 “수많은 농가가 중도매 중심의 오프라인 공판장에서 ‘헐값 낙찰’ 피해를 호소해 왔다”며 “그중에는 제 아버지도 있었다”고 말했다. 결국 그가 택한 해법은 농산물 가격을 생산자가 직접 제시하는 ‘역경매 온라인 공판장’이었다.

오프라인 공판장에서 중도매인이 가격을 결정하는 구조와 달리, 온라인 공판장에서는 생산자가 산지에서 곧바로 배송까지 맡는다. 신선도와 가격 경쟁력이 동시에 확보되는 이유다. 현재 파머스넷에는 46개 농가가 입점해 있고, 지난해 월평균 주문량은 약 2만 건에 이른다. 박 대표는 이를 “농민과 소비자가 지속가능하게 만나는 공정거래 플랫폼”이라고 소개했다.

지난달 28일 열린 ‘2025년 사회적경제 도약패키지’ 성과공유회에서 파머스넷이 주목받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날 행사장에서는 사회적경제조직들의 사업 발표와 더불어, 정책 강연·투자 상담·판로 전략 등이 이어졌다. 기업 발표가 끝나자 정책 실무 강연이 진행됐고, 외부 상담 부스에서는 각 기업이 투자자·판로 전문가와 일대일 상담을 진행했다. ‘정책-판로-투자’가 한 자리에서 연결된 드문 장면이었다.

◇ 경기도가 그리는 사회혁신 생태계의 기반

‘사회적경제 도약패키지’는 업력 3년을 초과해 도약 단계에 있는 사회적경제조직을 대상으로, 사업 고도화와 글로벌 진출을 지원하는 경기도사회적경제원의 대표 프로그램이다. 우수 창업 기업을 선발하고 경기도 소셜밸리 기반을 구축하는 데 목적이 있다.

지난달 28일 열린 ‘2025년 사회적경제 도약패키지’ 성과공유회에서 남양호 경기도사회적경제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MYSC

올해는 글로벌, 사회문제해결, 기술고도화 세 분야에서 총 40개 기업이 선정됐다. 이 중 글로벌(5곳)·사회문제해결(20곳) 분야는 사회혁신 전문 액셀러레이터 MYSC와 협업해 운영됐다. 선정 기업은 평균 2000만 원의 사업화 자금과 맞춤형 전략 설계, 컨설팅, 투자 연결, 국내외 판로 개척 지원을 받았다.

지난 7개월간 진행된 프로그램의 최종 무대에서 ▲AI 기반 식자재 재고관리 ‘니즈’ ▲업사이클링 소재 제작 ‘엘씨벤쳐스’ ▲아동·청소년 맞춤 간편식 ‘마을도시락’ ▲디지털 정신건강 솔루션 ‘비웨이브’ ▲영유아 발달 플랫폼 ‘자라나다’ ▲VR 교육훈련 콘텐츠 ‘컨텐츠다’ 등이 성과를 발표했다. 기업들은 지난 7월 투자 유치 발표(이하 IR)와 임팩트 워크숍, 11월 2차 IR 등을 거치며 사업 모델과 전략을 고도화했다. 유병화 마을도시락 대표는 “프로그램을 통해 IR 자료를 처음 만들어보고, 직접 피드백을 받아보는 경험이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최지수 엘씨벤쳐스 대표가 지난달 28일 열린 ‘2025년 사회적경제 도약패키지’ 성과공유회에서 발표하는 모습. /MYSC

◇ 공공조달부터 유통까지, ‘판로 확대’에 주목하다

올해 성과공유회는 투자 연계뿐 아니라 ‘판로 확대’에도 중점을 뒀다. 특히 공공조달 시장이 사회적경제조직의 핵심 판로로 떠오르면서 실무 강의가 큰 관심을 끌었다.

강승규 한국조달연구원 부장은 “2024년 기준 225조 원 규모의 공공조달 시장은 사회적경제기업에 매우 중요한 판로”라며 “최저가 중심에서 혁신·사회적가치 등을 반영한 정책 목적 구매가 확대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혁신제품 지정제도는 “초기 매출 확보와 공공 테스트베드 역할을 하며, 3년간 수의계약이 가능해 공공기관의 적극 구매를 유도한다”고 강조했다.

지난달 28일 열린 ‘2025년 사회적경제 도약패키지’ 성과공유회 상담 세션 현장의 모습. /MYSC

이어지는 상담 세션에서는 500글로벌, 가이아벤처파트너스, 우리기술투자 등 투자사와 알리바바, 한국조달연구원 등 유통·조달 전문가들이 기업별 성장 전략을 논의했다. 한 유통업체 관계자는 “개인 규모로 운영되는 브랜드는 시장 반응이 좋아도 물리적 확장 한계로 대형 쇼핑몰 입점이 어렵다”며 “이 때문에 직접 입점보다 B2B 공급을 선호하는 기업도 많아, 소개서를 받으면 관련 업체와 연결해 볼 계획”이라고 말했다.

권혁준 MYSC 팀장은 “현장에서 보면 많은 팀이 투자 유치에만 집중하지만, 실제로 사회적경제조직이 가장 크게 고민하는 지점은 판로”라고 말했다. 그는 “이 때문에 이번 프로그램에서는 투자사 미팅과 더불어 온·오프라인 유통 전문가 상담을 동시에 배치했다”며 “특히 소비재 기업의 경우 판로 확보가 절실해 알리바바 등 해외 유통사와 한국조달연구원 등 다양한 채널을 연계했다”고 설명했다.

남양호 경기도사회적경제원장은 “여러분이 만든 사회적가치가 시장에서 인정받는 과정이 이제 시작됐다”며 “투자자와 유통사와의 논의가 새로운 판로와 투자를 여는 출발점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수원=김규리 더나은미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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