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신이 이 세상을 떠날 때, 어린아이 생명을 구해주세요(When you leave this world, Save the Children).”
영국 세이브더칠드런이 2013년 유산기부 캠페인을 하면서, 기부자와 대중에게 유산기부 가치와 철학, 세이브더칠드런의 미션을 대중에게 각인시켜 줄 메시지를 개발한 사례를 소개하고자 한다. 직원과 외부 전문가들이 오랫동안 머리를 맞대고 나온 메시지다. 간결하면서도 임팩트가 있다. 유산기부에 대한 가치와 철학, 삶과 죽음, 생명의 소중함과 돌봄, 어려운 이웃에 대한 관심과 공동체 의식 등이 이 한 문장에 담겨 있다. 106년의 역사를 지닌 세이브더칠드런의 핵심가치와 이념이 이 한 문장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 유산기부, 액수와 방법 제한 없어
최근 1인 가구 비율이 36.1%, 804만 가구가 넘는다는 기사가 보도된 바 있다. 이 가운데 70세 이상이 20%를 차지한다. 저출산으로 비혼, 무자녀 부부도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다시 말해, 비혼·무자녀 부부가 점점 늘어난다는 것이며, 재산을 물려줄 직계 자녀가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런 인구 구조적 변화와 시민의식 향상으로 유산기부자들이 하나둘씩 나오는 것은 반가운 현상이지만, 한국은 여전히 유산기부 문화 측면에서 후진국이다. 전체 기부금은 2023년 기준 개인·법인 기부금 총액이 16조 원이며 이 중에서 유산기부 비중은 약 1%이다. 이 비율이 각각 8%와 30%인 미국과 영국은 유산기부 문화 선진국으로 꼽힌다. 미국과 영국이 유산기부 선진국이 된 배경에는 부자들의 적극적인 동참과 정부의 제도적 뒷받침이 있었다.
2010년 6월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와 워런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창업자 등 미국의 억만장자 40명이 유산기부 문화 확산을 위해 ‘기부 서약(The giving pledge) 운동’을 시작했다. 재산의 절반을 사회에 기부하자는 취지였다. 마이클 블룸버그 전 뉴욕시장은 “내 가족이 행복하려면 세상이 좋아져야 한다. 세상이 좋아지기를 바라면서 유산을 기부하게 됐다”고 취지를 설명했다.
영국에서는 민간과 정부의 손발이 잘 맞는다. 2011년 11월 금융 컨설팅업체 핀스버리 창업자 롤랜드 러드는 영국인 10%가 자발적으로 유산의 10% 기부를 서약하는 유산기부 캠페인 ‘레거시(Legacy) 10’을 제창했다. 영국에서 32만 5000파운드(한화 약 5억원) 이상을 상속할 경우 세율이 40%이지만, 정부는 유산의 10% 이상을 기부할 경우 상속세를 36%로 낮춰준다. 영국은 9월 13일을 ‘국제 유산기부의 날’로 지정해 기부를 장려하고 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많은 사람이 아직도 유산기부에 대해 모든 재산을 기부해야 하는 것으로 오해하고 부담스러워하는 경우가 많다. 사실 유산기부는 액수와 방법에 아무런 제한이 없다. 생전에 재산의 일부라도 능력껏 기부하면 된다.
◇ “영국처럼 상속세 감면 시, 유산기부하겠다” 53.3% 응답
지난 11월 한국갤럽 조사에 의하면, ‘우리나라 국민의 유산기부 인식조사’ 결과, 영국처럼 개인 재산의 10%를 기부하면 상속세 10%를 경감해주는 유산기부법이 도입된다면 53.3%가 유산기부 의향이 있다고 응답했으며, 소득 계층에 상관없이 전 계층에서 50% 이상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국내 실제 유산기부는 전체 기부금의 1%도 되지 않는다. 이처럼 높은 유산기부 의향(53.3%)과 실제 유산기부율(1%) 차이를 만든 요인으로 전문가들은 현행법과 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유산의 사회 환원 수요가 실제 기부로 이어질 수 있도록 국가적 차원에서 법적 근거 마련 및 제도적 뒷받침을 하기 위해 유산기부 활성화를 위한 법 개정이 필요하다.
유산기부 활성화를 위해서는 세법 개정이 필요하다. 소액 기부가 아닌 유산기부는 착한 마음과 선한 행위에만 호소해서는 한계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유산기부 활성화는 영국 등의 사례에서 보듯 상속세 감면과 같은 세제 혜택을 통해 유산기부를 유도해야 성공할 수 있다. 2024년 공익법인에 기부한 증여·상속세는 전체 세수의 1%에 불과하기 때문에 상속·증여세가 일부 줄더라도 유산기부를 통한 공익재산이 커지는 것은 사회 전체적으로 이익이다. 유산기부는 국가가 세금으로 모두 감당할 수 없는 복지 사각지대를 메워줄 수 있기에 장려해야 한다.
선진국은 상속세 감면을 통해 개인의 유산기부를 유도한다. 영국의 성공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유산기부는 취약계층을 위한 복지서비스, 환경, 문화예술, 교육, 국제구호 등 공익사업에 쓰이고 있다. 내년 1월에 더불어민주당의 정태호 의원과 국민의힘 박수영 의원이 일명 ‘유산기부법’이라고 불리는 ’상속세 및 증여세법 일부 개정안‘을 대표발의 한다고 한다.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지난 10년 동안 국회에서 논의되었던 유산기부법이 통과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정태영 세이브더칠드런 총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