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산 기부하면 상속세 깎아준다…여야 ‘한국형 레거시 10’ 법안 발의

상속 재산 10% 이상 기부 시 상속세 10% 공제
정태호·박수영 등 여야 의원 20명 공동 발의

유산기부를 장려하기 위해 세금 혜택을 주는 법안이 국회에 제출됐다. 정태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서울 관악구 을)과 박수영 국민의힘 의원(부산 남구)은 지난 12일 이러한 내용이 담긴 ‘상속세 및 증여세법 일부개정법률안’을 공동 발의했다.

(왼쪽부터) 정태호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박수영 국민의힘 의원은 상속 재산 일부를 공익 목적으로 기부할 때 세액 공제를 적용하는 ‘상속세 및 증여세법 일부개정법률안’을 12일에 공동 발의했다. 사진은 두 의원이 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대미투자특별법 처리를 위한 특별위원회에서 대화를 나누는 모습. /뉴시스

개정안은 상속 재산 중 일부를 공익법인 등에 기부할 경우 상속세를 깎아주는 내용을 담고 있다. 기부한 금액이 전체 상속 재산의 10%를 넘으면, 계산된 상속세의 10%를 세금에서 직접 빼주는 방식이다.

현행 제도는 공익법인 등에 기부한 재산을 상속세 과세 대상에서 제외하는 ‘과세가액 불산입’ 방식이다. 개정안은 여기에 더해 계산된 상속세 자체도 일부 공제해 주는 혜택을 담았다.

◇ 영국은 세제 인센티브로 유산기부 2.7배 확대

법안을 발의한 의원들은 국내 기부 참여가 낮은 현실에 주목했다. 국내 기부 참여는 최근 들어 감소세를 보인다. 통계청에 따르면 만 13세 이상 국민의 기부 참여율은 2011년 36.4%에서 2021년 21.6%로 낮아졌다. 국제 비교에서도 한국의 기부 참여 순위는 하락했다. CAF 세계기부지수에서 한국은 2011년 57위에서 2022년 88위로 떨어졌다. 조사 대상은 144개국이다.

특히 유산기부는 아직 초기 단계다. 국세청 자료에 따르면 개인의 상속·증여 재산 가운데 공익법인에 출연되는 비중은 1% 안팎에 그친다. 유산기부 의향은 전반적으로 감소 추세다. 2015년 34.5%였던 기부 의향은 2025년 22.2%까지 낮아졌다.

다만 세제 혜택이 도입될 경우 기부 의향은 크게 높아질 수 있다는 조사 결과가 있다. 지난해 12월 한국자선단체협의회가 한국갤럽에 의뢰해 실시한 ‘유산기부 인식 조사’에 따르면 아무런 조건이 없을 때의 기부 의향은 29%였지만, 상속세 감면을 포함한 관련 제도가 도입될 때 53.3%가 ‘기부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이번 법안은 이른바 ‘한국형 레거시 10’으로 불린다. 그 기초가 된 것은 영국의 유산기부 장려 제도인 ‘레거시 10(Legacy 10)’이다. 영국은 상속 재산의 10% 이상을 자선단체에 기부하면 나머지 재산에 적용되는 상속세율을 기존 40%에서 36%로 낮춰주는 제도를 2012년부터 시행하고 있다.

‘레거시 10’ 도입 이후 영국의 유산기부 총액은 2012년 약 4조1000억 원(23억2000만 유로)에서 2024년 약 7조9000억 원(45억 유로)으로 두 배 가까이 늘었다. 정부가 추산한 세수 감소 규모의 약 2.7배에 해당하는 민간 기부 증가 효과가 나타났다. 세수 감소분의 약 2.3배 규모다.

한국에서도 세수 감소보다 기부 확대 효과가 더 클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박훈 서울시립대 교수는 한국형 레거시 10 제도 도입 시 상속세 세수는 연간 약 1253억~6263억 원 줄어들지만, 유산기부액은 연간 약 2900억~1조4500억 원 증가할 것으로 추산했다. 세수 감소분의 약 2.3배 규모다.

◇ 여야 20명 공동발의, 공익 재원 확충·상속세 부담 완화

정태호 의원은 유산기부를 주요 국가들이 공익 재원을 확충하는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고령화·저출산·양극화 등 구조적 변화로 복지 수요는 빠르게 늘고 있지만 국가 재정만으로 이를 감당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정 의원은 “상속 재산을 사회적으로 환원하기로 선택한 국민에게 국가가 분명하고 예측할 수 있는 보상 신호를 주는 것이 성숙한 기부 문화의 출발점”이라고 말했다.

박수영 의원은 한국의 높은 상속세율이 고액 자산의 해외 유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언급했다. 그는 앞서 “이 제도는 단순한 세제 감면을 넘어 유휴 자산을 사회공헌으로 환원하는 새로운 안전망이 될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러면서 한국형 ‘레거시 10’ 제도가 지속 가능한 ‘사회적 상속’의 기반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국회에서는 이미 여러 차례 유산기부 활성화를 위한 입법 시도가 있었다. 2019년 제20대 국회에서는 추미애 의원이 관련 법안을 발의했고, 2021년에는 김병욱 의원이 상속세 감면을 골자로 한 개정안을 제출했다. 다만 당시 법안들은 조세 형평성과 세수 감소 가능성 등을 둘러싼 논쟁 속에 상임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왼쪽부터) 정태호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박수영 국민의힘 의원은 법안 발의에 앞서 1월 2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유산기부 활성화를 위한 한국의 레거시 10(Legacy 10) 제도 도입에 관한 정책 토론회’를 열고 유산기부 관련 논의를 이끌었다. /뉴시스

정태호 의원과 박수영 의원은 이번 법안 발의에 앞서 지난 1월 ‘유산기부 활성화를 위한 한국의 레거시 10(Legacy 10) 제도 도입에 관한 정책 토론회’를 열고 관련 논의를 공론화했다. 이 자리에서는 상속세 형평성 문제와 공익법인 투명성 확보 방안 등도 함께 논의됐다.

개정안에는 제도의 악용을 막기 위한 장치도 담겼다.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과 특수관계에 있는 공익법인은 세제 혜택 대상에서 제외된다. 공익법인 출연의 투명성과 실질성을 확보하기 위한 세부 요건과 절차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했다.

한편, 이번 개정안에는 여야 의원 20명이 공동 발의자로 참여했다. 정태호 의원과 박수영 의원은 국회 재정경제기획위원회 여야 간사로, 고령화와 복지 수요 증가에 대응해 민간의 공익 참여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는 데 공감대를 형성해 왔다.

더불어민주당에서는 강준현·김주영·박상혁·박홍배·안도걸·이수진·이연희·이용선·이학영·정일영·정준호·정태호 의원이, 국민의힘에서는 강승규·김재섭·박성훈·박수영·박충권·윤영석·이인선·조지연 의원이 이름을 올렸다.

채예빈 더나은미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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