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계약에 학대한 부모 동의 받으라고?”…아동 법률조력 로드맵 나왔다

‘아동·청소년 인권옹호 생태계 조성을 위한 정책토론회’ 개최
아동 전문 공익변호사 전국 10여 명 불과 
복권기금 등 공적 예산 활용, 필수적 국선대리인 제도입 등 4대 개선안 제시

부당한 권리 침해를 당해도 사법 절차에서 소외되는 아동·청소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법률 조력 생태계’ 구축 방안이 공개됐다.

12일 오전 국회의원회관에서는 ‘아동·청소년 인권옹호 생태계 조성을 위한 정책토론회’가 열렸다. 토론회는 국회의원 김남희·박은정·백선희·최기상·최보윤 의원이 공동 주최하고 대한변호사협회와 공익법단체 두루 등이 참여해 마련됐다.

◇ 공익변호사 0.5%…아동 분야는 10명 

이날 발제를 맡은 조소연 사회복지연구소 마실 대표는 ‘아동·청소년 법률 조력 생태계 로드맵’을 발표했다. 연구는 2025년 공익법단체 두루의 지원을 받아 사회복지연구소 마실, 성공회대 사회과학연구소, 사단법인 온율 연구진이 공동 수행했다.

조 대표는 “헌법과 유엔 아동권리협약은 아동의 법률 조력 권리를 규정하고 있다”며 “그러나 현실에서는 형사나 소년 사건 중심으로만 작동한다”고 말했다. 민사·가사·행정 영역은 여전히 제도 공백이라는 설명이다. 대한민국 헌법(제12조 제4항)은 ‘누구든지 체포 또는 구속 시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명시한다. 유엔아동권리협약(제40조 제2항) 역시 ‘변론의 준비 및 제출 시 적절한 법률적 지원을 받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연구에 따르면, 전체 변호사 약 3만 명 가운데 공익 인권 활동 변호사는 약 150명이다. 전체의 0.5% 수준이다. 이 중 아동·청소년 분야 활동 변호사는 10여 명에 불과하다. 피해자 국선변호사는 대한법률구조공단 계약직 전담 인력 45명이 전부다. 전국 약 600명의 비전담 변호사가 매년 3만 건 이상의 사건을 처리한다. 서울가정법원의 2025년 국선보조인은 55명이다. 사건당 보수는 약 20만 원이다.

조 대표는 “아동·청소년 지원 기관에도 전담 변호사가 거의 없다”며 “있더라도 기관 운영 자문 역할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연구진은 현장 의견도 조사했다. 아동·청소년 지원기관과 인권단체 실무자 11명을 대상으로 초점집단면접(FGI)를 진행했다. 인터뷰는 2025년 10월 27일과 31일 두 차례 비대면으로 실시됐다. 그 결과, 법률 지원이 시급한 영역으로는 성착취, 아동학대, 이주배경, 성폭력, 가족관계 행정, 아동사법·형사피의 분야가 꼽혔다.

현장에서는 법률 지원을 받기 이전에 제도 접근 자체가 막히는 사례도 많았다. 탈가정 청소년은 쉼터 입소가 절실함에도 실종아동법 규정과 보호체계가 충돌해 입소가 제한된다. 또한 미성년자가 독립적인 주거 계약을 하려면 학대나 갈등을 겪는 부모(법정대리인)의 동의를 받아야 하는 모순이 발생한다. 조 대표는 “주거 계약이 불가능하면 전입신고를 할 수 없고, 전입신고가 되지 않으면 지자체 지원 역시 받을 수 없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이 밖에도 학대 피해 아동의 보호자가 치료를 거부할 경우 이를 강제할 법적 권한이 없거나, 자립 지원 사업 신청 과정에서 민감한 정신과 이력 등이 청소년의 충분한 이해 없이 수집되는 문제도 도마 위에 올랐다.

◇ “민간 선의 넘어 공공 시스템 필요”

조 대표는 이번 연구에서 ‘법률 조력’을 단순한 소송 지원이 아니라 권리 옹호 전반의 과정으로 정의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법률 조력은 상담 단계에서 권리 침해를 발견하고 복지·행정 서비스와 연결하며 사법 절차를 지원하고 이후 권리 회복까지 돕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연구진은 이를 위해 ‘아동·청소년 법률 생태계’ 구축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아동 당사자, 변호사, 사법기관, 정부, 시민사회가 협력하는 구조다.

해외에서는 이미 국가가 법률 지원을 담당하는 구조가 마련돼 있다. 미국 연방정부(OJJDP)는 청소년의 국선 변호 질 향상을 위해 2018년 한 해 170만 달러(약 25억 원)을 지원했다. 펜실베이니아주는 연방 기금(Title IV-E)을 통해 법률대리 행정비용의 50%를 환급하며 소득 심사 없이 변호인을 선임하도록 하고 있다. 

독일은 가정법원 사건에서 비용 부담 없이 아동을 위한 독립적 ‘절차보조인’을 선임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일본은 2016년 법 개정으로 행정기관인 아동상담소에 변호사 배치를 법제화했다. 2024년 기준 일본 전국 234개 아동상담소 중 상근 변호사가 배치된 곳은 16곳, 비상근 변호사를 활용하는 곳은 119곳으로 총 169명의 변호사가 현장에서 초기 단계부터 법률 조력을 수행하고 있다. 

연구진은 이를 바탕으로 국내 제도 개선 방향을 제시했다. 조 대표는 법률 조력을 선별적 복지가 아닌 아동의 ‘기본권’으로 보장하는 것이 가장 시급하다고 제언했다. 당사자의 신청을 기다릴 것이 아니라 민·형사 및 가사소송 전반에서 필수적 국선대리인 및 절차보조인 제도를 도입해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또 민간 기금이나 일시적 후원에 의존하는 구조를 넘어 안정적인 공공 재원을 확보해야 한다. 복권기금(연 3조2000억 원 규모), 범죄피해자보호기금(연 1000억 원 이상), 사법서비스진흥기금 활용이 대안으로 제시됐다.

범정부 협력 체계도 구축해야 한다. 조 대표는 법무부·보건복지부·교육부 등 다부처 간 분절된 서비스를 하나로 잇는 통합 협의체 및 전담 위원회를 신설해 체계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끝으로, 법률 조력의 전문성 강화를 꼽았다. 이주배경·장애·시설 보호 등 복합적 상황을 이해할 전문 교육과 인증 제도가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발표를 마무리하며 조 대표는 “그동안 취약계층 아동에 대한 법률 지원은 민간 변호사나 활동가의 헌신에 과도하게 의존해 왔다”며 “개인의 선의는 지속 가능성을 담보하기 어렵고 전문적 대응에 한계가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이제는 아동 전담 국선변호인 제도 확대와 공공 변호사 배치 등 공적 시스템으로 법률 조력을 편입시켜야 하며, 아동의 법률적 권리 옹호는 더 이상 사적 영역이 아닌 국가의 공적 책무로 격상되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조유현 더나은미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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