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서울 공익활동 박람회’ 현장
의식주로 체감한 공익활동에 2300여 명 몰려
평년보다 일주일가량 이르게 찾아온 장마가 본격화된 지난달 2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삼각지역 8번 출구 앞. 흐린 하늘 아래 시민들의 발걸음이 삼삼오오 회색빛 건물 지하로 향했다. 이곳은 서울시 공익활동지원센터, 550평 남짓한 공간 곳곳이 북적였다. 부스는 모두 27개. 공익단체 17곳이 각자의 방식으로 준비한 작은 세계들이 그 안에서 숨을 쉬고 있었다.
“SNS 보고 일부러 인천에서 왔어요. 평소 공익 활동에 관심이 많아서요. 단순히 보는 게 아니라 직접 체험하니 더 와닿네요.”
60대 시민 A씨는 서울시 공익활동지원센터 내에 설치된 박람회장을 둘러보며 이렇게 말했다. 박람회 표어는 ‘나만의 공익활동 보물찾기 in 삼각지’. 실제 행사장에는 오감으로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촘촘히 배치돼 ‘공익’을 낯설지 않게 풀어냈다. 6월 20일부터 21일까지 이틀간 열린 ‘2025 서울 공익활동 박람회’ 현장에는 시민 2300여 명이 몰렸다.

◇ “이 옷은요…엄마한테 받은 건데요”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마주친 건 ‘다시입다연구소’의 물물교환 부스였다. 이름도 눈에 띄었다. ‘21% 파티’. 사람들은 옷을 조심스레 꺼내고, 누군가는 손에 들고 이리저리 살폈다. 사놓고 입지 않은 옷의 비율 21%. 그 옷들을 다른 이와 1:1로 바꾸는 자리였다. 1인당 최대 3개의 옷이나 패션잡화를 가져오면 동일 수량만큼 원하는 물품으로 교환할 수 있다.
옷에는 태그가 달려 있었다. 가격표 대신 사연이 적혀 있었다. 누가, 왜 샀는지, 몇 번 입었는지, 왜 안 입게 되었는지, 그리고 다음 주인을 위한 덕담까지. 태그 하나하나에 사연을 읽는 재미가 있었다. 30대 여성 참가자 A씨는 “그냥 물건을 교환하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의 경험까지 전해 받는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 접시 대신 잎사귀…“올해는 더 자연스럽네요”
조금 안쪽으로 들어가니, 알록 달록한 음식이 눈길을 끌었다. 농부시장 ‘마르쉐’와 농사공동체 ‘팀화요’가 운영하는 푸드존에서는 비건 주먹밥, 토종완두콩 크림슈 등 제철 재료로 만든 음식이 잎사귀 위에 담겨 나왔다. 플라스틱도, 종이도 없었다. 식사가 끝난 뒤엔 퇴비함이 기다리고 있었다. “접시로 사용된 잎들은 봉금의 뜰 흙으로 돌아갑니다”는 문구가 눈에 띄었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찾았다는 20대 참가자 B씨는 “작년엔 ‘뻥튀기 접시’였는데, 올해는 진짜 잎으로 바뀌었다”며 “두고 먹기에도 좋고, 흙으로 돌아간다는 점에서 더 좋은 것 같다”고 말했다.
마실 것도 공익이었다. ‘알맹상점’이 운영하는 ‘일회용 없다방’에서는 허브차, 밀크티, 바닐라라떼 등 비건 음료 4종을 제공했다. 조건은 하나. 개인 컵을 지참할 것. 현장엔 다회용 컵을 빌릴 수 있는 대여 서비스도 제공됐다.
◇ ‘껍데기’ 없는 소비, 직접 해보니
행사장 한켠, 가장 긴 대기줄이 생긴 곳은 ‘알맹상점’의 ‘리필 스테이션’이었다. 이곳은 빈 용기에 샴푸나 세제 같은 제품을 직접 덜어가는 공간이다. 이름처럼 포장은 없고, ‘알맹이’만 담을 수 있는 구조다.
빈 용기를 가져온 시민에게는 라벨 스티커 4장이, 준비하지 못한 이들에겐 2장이 제공됐다. 미지참자를 위해 기증받은 폐용기과 PCR 재생 용기도 준비돼 있었다. 20분을 기다려 기자가 받은 스티커에는 사용기한과 내용물을 적는 칸이 있었다.
샴푸를 덜고 라벨을 붙이니, 한때 버려질 뻔했던 병이 깔끔한 새 제품으로 변했다. 시민들은 샴푸, 바디워시, 로션, 세럼 등 10여 가지 품목을 살피며 직접 병에 담았다. 리필 존은 말 그대로, 소비의 방식이 달라지는 순간을 체험하는 공간이었다.
◇ “공익활동, 특별한 일이 아니네요”
체험형 중심으로 구성된 이번 박람회는 ‘공익’이라는 단어에 익숙하지 않던 시민들도 부담 없이 참여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30대 참가자 C씨는 “공익단체라고 하면 딱딱하고 고리타분한 이미지가 있었는데, 오늘 보니 시민 일상과 맞닿은 방식으로 바뀌고 있다는 걸 느꼈다”고 말했다.
박승배 서울시공익활동지원센터장은 “공익활동에 대한 새로운 상상력을 시민과 함께 나누기 위해 이 박람회를 기획했다”며 “앞으로도 시민 체험 중심의 공익 플랫폼을 지속적으로 확장하겠다”고 말했다.
두 손에 옷을 들고, 잎사귀를 퇴비함에 넣고, 비워진 용기를 채운 시민들은 하나같이 말했다.
“공익, 그리 먼 얘기 아니네요.”
김규리 더나은미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