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립된 임팩트로는 한계”…기업 사회공헌, ‘연결’이 생존 전략 됐다

쏠림·사각지대 키운 정보 불균형, “푸시에서 풀 전략으로”
유일한 아카데미 등 다기관 협업 확산…조율·소통이 성패 가른다

“지금은 경제·환경·지정학적 갈등이 촘촘하게 맞물리며 시스템 전반이 흔들리는 ‘복합위기 시대’입니다. 단기적·가시적 대응만으로는 변화를 만들기 어렵고, 개별 조직의 고립된 임팩트로는 사회문제의 규모를 따라갈 수 없습니다. 이제 필요한 것은 내부 최적화가 아니라 외부와의 연결과 협력을 통해 문제를 풀어내는 ‘임팩트 네트워크’입니다.”

지난 11일 서울 중구 페럼타워에서 열린 ‘2025 기업사회공헌 컨퍼런스’에서 이재열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핵심은 정보를 연결하는 네트워크”라고 강조했다. ‘플랫폼 시대의 사회공헌: 데이터와 연결로 임팩트를 디자인하다’를 주제로 열린 이날 행사에는 기업 사회공헌 담당자와 비영리기관 관계자 등 300여 명이 참석했다.

지난 11일 서울 중구 페럼타워에서 열린 ‘2025 기업사회공헌 컨퍼런스’에서 이재열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교수가 발언하고 있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연결의 힘, 협력의 가치’를 주제로 한 이 교수의 기조강연에서는 한국 사회공헌이 빠지기 쉬운 구조적 한계가 먼저 지적됐다. 그는 성과가 개별 사업 단위로 흩어지고, 기관마다 정보와 역량이 달라 협력 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현실을 “고립된 임팩트의 전형”이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단절이 누적되면서 생태계가 한 방향으로 움직이지 못한다는 분석이다.

이 교수는 돌파구로 데이터 기반의 ‘시스템적 연결’을 제시했다. 그는 “플랫폼은 자원을 쌓아두는 창구가 아니라, 각 주체를 연결하고 설명하고 번역하는 생태계의 허브”라며 “누구나 데이터를 활용해 협력할 수 있는 개방형 인프라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모든 주체가 ‘네트워크 위버(weaver)’가 되어 협력 구조를 짜야 한다”고 강조했다.

◇ “사회공헌 지원은 쏠리고, 당사자는 놓친다”

한우재 숭실대 교수가 좌장을 맡은 1부 패널토론에서는 기업·공공·비영리 모두가 체감하는 ‘정보 불균형’이 공통 문제로 지목됐다. 토론자들은 사회공헌 기획부터 수혜·분배 과정 전반에서 정보 단절을 경험한다고 입을 모았다. 나우리 아모레퍼시픽 CSR팀 차장은 “신규 사회공헌 이슈를 발굴하거나 협력 파트너를 찾는 과정이 실무자의 개인 검색 역량·인적 네트워크에 크게 의존한다”며 “신뢰 기반의 파트너 매칭을 지원하는 플랫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계성 한국토지주택공사(LH) 건설임대사업처 차장은 정보 불균형이 지원 대상자에게도 그대로 전이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사회공헌 사업은 조건과 절차를 일일이 확인해야 하는데, 정보를 잘 아는 청년은 수천만 원까지 지원을 받는다”며 “반대로 정보 접근이 어려운 청년은 ‘한 푼도 못 받은 채’ 퇴소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지원의 사각지대가 정보 격차에서 비롯된다는 의미다.

지난 11일 열린 ‘2025 기업사회공헌 컨퍼런스’ 1부 패널토론 현장의 모습.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이원태 함께일하는재단 사무국장은 기업 지원이 특정 대상에 몰리는 현상 역시 같은 문제라고 분석했다. 그는 “기업 CSR이 커질수록 일부 대상에 쏠림 현상이 나타나는데, 본질은 정보 공유와 매칭이 되지 않는 데 있다”며 “기업이 관심 분야를 밀어 넣는 ‘푸시(push)’ 방식에서 벗어나, 현장의 필요가 자원을 끌어오는 ‘풀(pull)’ 구조로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 여러 기관이 모이면 시너지가 커지는 이유…“협업의 핵심은 소통과 조율”

2부에서는 실제로 여러 기관이 협력해 사회공헌 사업을 추진한 사례가 공유됐다. 유한양행은 지난 7월 사회복지공동모금회, 희망친구 기아대책, 진저티프로젝트, 더나은미래와 함께 보건·복지 분야 문제 해결 교육 프로그램 ‘유일한 아카데미’를 진행했다. 기업은 사업 주관과 기부금 지원, 임직원 특강 운영을 맡고, 비영리 기관은 기부금 집행과 참가자 모집을 담당했다. PBL(Project-Based Learning) 전문 기관은 교육 운영을, 미디어는 프로그램 기획 및 홍보 전반과, 각 기관을 잇는 커뮤니케이션 허브로서 협업의 백본(backbone) 역할을 했다.

김은미 유한양행 ESG경영실 부장은 “초기에는 역할 조율과 자원 배분 등에서 시간이 필요했지만, 가치 중심으로 협력하니 각 기관이 가진 자원을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꺼내놓게 됐다”며 “서로 다른 조직이 하나의 목표를 향할 때 시너지가 극대화된다”라고 전했다.

여러 기관이 협력할 때 가장 중요한 요소로는 소통과 조율이 꼽혔다. 신재민 현대자동차그룹 CSR기획팀장은 “기관마다 중시하는 성과 지표가 다르기 때문에, 무엇이 가능하고 무엇이 어려운지 솔직하게 밝히는 ‘진실의 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선석근 신한금융그룹 부부장(신한금융희망재단 총괄팀장)도 “상대 기관의 필요를 정확히 이해해야 협업이 성립한다”며 “전문성과 성과를 꾸준히 공유해야 제대로 된 피드백과 조율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김소영 사회복지공동모금회 나눔문화연구소 연구위원이 사랑의열매가 개발한 사회공헌 통합 플랫폼 ‘사랑의열매 사회공헌 정보플랫폼’을 소개하고 있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이번 컨퍼런스에서는 사랑의열매가 개발한 민간 사회공헌 통합 플랫폼 ‘사랑의열매 사회공헌 정보플랫폼’이 처음 공개됐다. 기업의 사회공헌 현황과 주요 데이터, 국내외 동향·분석 자료를 한곳에 모아 제공하는 플랫폼이다. 국세청 법인 기부금 신고 정보, 금융감독원 전자공시(DART), 공공기관 경영공시(ALIO) 등 공신력 있는 공개 데이터는 물론 사랑의열매의 기부자·배분기관 정보까지 통합했다. 누구나 이용할 수 있으며 11월 한 달간 시범운영을 거쳐 12월 정식 오픈한다.

김소영 사회복지공동모금회 나눔문화연구소 연구위원은 “코로나19 이후 사회공헌의 언어가 회복·격차해소에서 전환·연대·임팩트 중심으로 바뀌었다”며 “흩어진 정보를 연결하고 공신력 있는 데이터를 기반으로 의사결정이 이뤄지는 구조가 사회공헌의 다음 단계”라고 말했다.

김병준 사회복지공동모금회 회장은 “데이터 공개는 투명성과 효율성을 동시에 높여야 한다”며 “사랑의열매는 기업의 사회공헌 파트너이자 문제 해결 허브로서 이번 플랫폼을 통해 사회공헌 흐름을 데이터로 연결하고 투명하게 공유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김규리 더나은미래 기자

관련 기사

Copyrights ⓒ 더나은미래 & futurechosun.com

전체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