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읽고 점수 낸다”…美 재단들, ‘보조금 실사’ 자동화 실험 중 [글로벌 이슈]

맥거번 재단, AI 기반 재무 분석 도구 ‘그랜트 가디언’ 무료 배포
130개 재단 도입…행정 부담 줄고, 심사 편향성 개선

미국 비영리 생태계에 인공지능(AI)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지원 단체의 재무 상태를 평가하고 요약 보고서를 자동 생성해주는 AI 기반 실사 도구가 보조금 심사에 도입되면서, 재단의 행정 효율성과 평가 투명성이 동시에 높아졌다는 평가도 나온다.

그 중심에는 패트릭 J. 맥거번 재단(Patrick J. McGovern Foundation)이 개발한 AI 실사 도구 ‘그랜트 가디언(Grant Guardian)’이 있다. 이 재단은 지난 1월 해당 도구를 무료로 공개했으며, 현재까지 미국 내 130개 이상 재단이 이를 도입해 사용 중이다. 맥거번 재단은 AI와 데이터를 활용해 디지털 형평성, 기후 대응, 의료 접근성 등 사회문제 해결을 추구하는 공익 재단이다.

패트릭 J. 맥거번 재단은 올해 1월 AI 기반 재무 실사 도구 그랜트 가디언을 무료로 공개했으며 현재 130곳이 넘는 재단이 해당 도구를 사용하고 있다. /Freepik

그랜트 가디언은 세금신고서(IRS Form 990)나 감사보고서 등 비영리단체의 기존 재무 문서를 업로드하면, AI가 주요 데이터를 추출해 요약 보고서와 점수표를 생성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평가 기준은 각 재단이 자율적으로 설정할 수 있다. 예컨대 ‘연속 적자 여부’를 중점적으로 보고 싶다면 해당 항목에 가중치를 부여하면 된다. 기반 모델은 앤트로픽(Anthropic)의 최신 대형언어모델(LLM)인 Claude 3.5다.

기존에는 단체들이 별도로 재무표를 정리해 제출하고, 재단 직원이 이를 일일이 검토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이 도구는 기존 문서를 그대로 활용할 수 있도록 설계돼 지원 단체의 행정 부담도 줄였다.

빌라스 다르 맥거번 재단 대표는 비영리 전문매체 크로니클 오브 필란트로피와의 인터뷰에서 “재단은 종종 지원 대상의 재정 건전성을 철저히 평가할 시간과 자원이 부족하다”며 “재무 실사의 반복적이고 단순한 작업을 덜어내고, 프로그램 담당자들이 전략적이고 고차원의 시각에서 전체 과정을 효율화할 수 있도록 돕고자 한다”고 밝혔다.

◇ “보고서 6건, 하루면 끝”…AI가 바꾼 심사의 풍경

실제 도입 재단들은 업무 속도가 비약적으로 향상됐다고 평가한다. 시범 도입 기관 중 하나인 깃랩(GitLab) 재단의 보조금 관리자 제시카 반 그라우는 “예전에는 상급자의 확인을 거치며 며칠씩 걸리던 재무분석이, 지금은 하루에 5~6건의 보고서를 처리할 수 있다”고 밝혔다.

맥거번 재단의 AI 재무 실사 도구 그랜트 가디언은 세금 신고서 등 재무 보고서에서 주요 데이터를 추출해 요약 보고서를 생성한다. /패트릭 J. 맥거번 재단 유튜브 갈무리

그랜트 가디언의 언어 모델을 개발한 앤트로픽는 “재무 실사 과정은 필수지만, 업계 전반에 걸쳐 표준화되어 있지 않아 수작업과 오류가 빈번했다”며 “재무 전문 인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복잡한 문서를 해석해야 하는 구조가 기부자와 지원자 모두에게 부담을 줬다”고 개발된 배경을 짚었다.

필라델피아와 뉴저지 남부 지역 유나이티드 웨이의 IT 관리자 사브라 윌리엄스는 “AI가 모든 단체에 동일한 기준을 적용해 심사의 일관성과 신뢰도가 높아졌다”고 말했다. 지원 심사 기준을 모든 단체에 동일하게 적용하면서 사용자 편향에서 비롯되는 오류가 줄어들고 있다는 설명이다.

◇ “AI는 편의성을 높이는 도구, 결정은 사람이 내린다”

빌라스 다르 맥거번 재단 대표는 “AI는 어디까지나 전략적 판단을 위한 보조 도구이지, 사람의 결정을 대체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깃랩 재단은 AI가 생성한 보고서에 부정 항목이 있더라도 자동 탈락시키지 않고, 프로그램 담당자 판단과 지원 단체의 설명을 함께 반영하는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다. 또한 AI 사용 사실을 지원자용 핸드북에 명시하고 있다.

빌라스 다르 맥거번 재단 대표는 AI가 업무 효율성을 높이는 도구이며 이를 인력 감축의 수단으로 오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짚었다. /Freepik

데이터 보안 우려도 계속해서 풀어나가야 할 숙제다. 맥거번 재단은 업계 표준에 따라 AI 모델 기반 플랫폼을 설계하고, 문서 업로드부터 저장까지 전 과정 암호화 및 다중 인증 체계를 적용했다. 유나이티드 웨이의 피드백을 반영해 보고서 보관 기능과 데이터 삭제 기능도 추가했다.

그랜트 가디언은 비영리 단체의 재무 실사에 특화된 도구지만, 맥거번 재단은 이를 시작점으로 삼아 다양한 영역으로 AI 평가 기술의 확장 가능성을 보고 있다. 예컨대 사업 성과, 지역 사회 임팩트 같은 항목에서도 자동화 분석이 가능하도록 기술을 고도화할 계획이다.

빌라스 다르 대표는 “AI는 단순히 비용을 줄이는 수단이 아니라, 기존 인력의 역량을 확장하는 방식으로 쓰여야 한다”며 “사람이 더 나은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정보를 정리하고 흐름을 단순화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말했다.

채예빈 더나은미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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