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의 미래] 불행은 원하는 것과 필요한 것 사이에…

‘아이패드 병’이란 게 있습니다. 아이패드를 매우 사고 싶어 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애플펜슬로 사각사각 필기도 하고 그림도 그리는 모습을 상상하는 것이 주요 증상입니다. 아이패드병의 치료법은 오직 하나, 아이패드를 구매하는 것입니다. 저는 아이패드병이 심각해서 두 대나 갖고서야 완치되었습니다. 유튜브와 OTT를 볼 때 주로 사용합니다. 봉준호 감독이 어느 인터뷰에서 ‘어디든 갈 수 있는 일주일이 주어진다면 어디로 가겠느냐’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아이패드 하나 들고 구석진 카페에 가겠다고 합니다. 대부분의 시나리오가 그렇게 탄생했다는군요. 저에게 아이패드는 원하는 것이었고 봉준호 감독에겐 필요한 것이었습니다. 원하는 것을 필요한 것으로 합리화할 때 불행이 시작됩니다. ◇ 관광객과 생활인구 인구감소 지역은 많은 관광객을 유치하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계절마다 지역 자원을 활용해 독특한 컨셉트의 축제를 엽니다. 둘레길을 개발하고 랜드마크도 건축합니다. 이런 관광객을 포함해 지역을 방문하거나 체류하는 사람, 거주하는 사람을 모두 포함해 생활인구라고 부릅니다. 지자체는 생활인구가 필요합니다. 올해부터 지방교부세 산정 기준이 될 예정이기 때문입니다. 생활인구가 늘어나면 그만큼 중앙정부로부터 많은 예산을 지원받을 수 있습니다. 그 돈으로 출산과 육아도 지원하고 청년 창업도 지원하며 더 큰 축제도 열 수 있습니다. 그러니 생활인구를 가장 빨리 늘릴 수 있는 관광객 유치는 지역에서 매우 중요한 사안입니다. 관광객 유치가 곧 인구 증가로 이어질 것이라는 합리화는 경계해야 합니다. 전북 임실은 ‘임실N치즈축제’와 ‘임실산타축제’로 많은 관광객을 유치하고 있습니다. 생활인구는 2018년 498만 명에서 2023년 853만 명으로 71% 증가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구는 10% 줄었고 지방소멸위험지수는 그때나 지금이나

[지역의 미래] 오래 사는 게 미안한 사회

동네 빵집을 다녀오는 길이었습니다. 여든 살쯤으로 보이는 어르신이 길바닥 한가운데 무릎을 꿇고 계셨습니다. 한 손에 지팡이를 짚고 힘겹게 일어서려는 듯했습니다. 어르신 뒤로 택배차가 오고 있어서 얼른 다가가 부축해 드렸습니다. 다친 곳은 없는지 확인하고 돌아서려는데 혼잣말처럼 인사를 건네시더군요. “미안해요. 내가 빨리 죽어야 하는데… 자식들한테 짐만 되고…” 저희 어머니도 자주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우리 사회는 어쩌다 오래 사는 게 미안한 일이 되었을까요. ◇ 생명 연장의 꿈 지난 12월 23일 대한민국은 초고령 사회가 되었습니다. 뭔가 무시무시한 사회가 된 것 같지만 65세 이상 인구가 20%를 넘었다는 통계에 불과합니다. 사회의 고령화를 구분하는 기준은 1956년 UN에서 시작되었습니다. 한 국가의 고령자 비율이 사회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 보고서에서 처음 ‘고령화 사회’가 언급되었습니다. 1956년의 기대수명은 50.6세였으니 65세만 넘어도 고령자에 속했죠. 그래서 65세를 넘은 ‘노인’이 인구의 7%만 넘어도 ‘고령화 사회’라고 규정했습니다. 고령 사회(14%)나 초고령 사회는 그 후에 생겼습니다. 인간의 수명이 점점 더 늘어났기 때문입니다. 1956년에 태어난 사람은 올해 69세가 되었습니다. 당시의 기대수명보다 18년을 더 살고 있는 셈이지요. 그러니 초고령 사회는 누군가의 잘못이 아니라 의료기술이 생명연장의 꿈을 실현시킨 결과입니다. 다만 너무 빨리 성과를 이루었을 뿐입니다. ◇ 가장 빨리 늙는 국가 사회의 고령화가 여러 문제를 야기하는 것은 맞습니다. 우선, 일하는 사람보다 연금 받는 사람이 상대적으로 많아집니다. 세금 내는 사람보다 세금 혜택을 받는 사람이 늘어나니까 국가나 지자체는 심각한 재정 압박을 받습니다. 기업은

[지역의 미래] 담당 공무원이 또 바뀌었다고요?

정부나 지자체 공무원들과 일해본 사람이라면 한 번쯤 겪었을 일이다. 이제 말 좀 통하나 싶으면 담당 공무원이 바뀌어서 새로 호흡을 맞추는 시간을 가져야 하는 것. 말이 잘 통하면 다행인데 가끔 자신의 고집을 앞세우는 공무원을 만나면 정말 난감하다. 갑자기 사업의 방향이 바뀌고 그동안 쌓은 경험자산이 한순간에 쓸모 없어지기도 한다. 순환근무를 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부정부패 방지다. 한 부서에서 오래 일하면 유착이 생기기도 하고 제도의 맹점을 이용하기도 쉬워진다. 반대로 통합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장점도 있다. 한 가지 업무만 하던 사람보다는 여러 업무를 해본 사람의 시야가 넓을 수 있다. 현대 사회의 문제는 복합적으로 얽혀있는 경우가 많아서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관점과 변수를 고려해야 한다. 행정은 더욱 그렇다. 이럴 때 여러 업무를 두루 거친 사람이 조금 더 나은 해법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지방 인구 감소는 출산, 육아, 교육, 일자리, 주거, 교통, 여가 등 모든 문제가 얽혀 있다. 모든 분야를 근무했던 사람이 이 업무를 맡는다고 해서 모범 답안이 나올 수 있는 건 아니지만, 한 가지 업무만 했던 사람보다는 좀 더 넓은 시야로 정책을 만들 수 있다. 그러나 모든 부서를 두루 거친 사람도 없을뿐더러, 있다 해도 순환보직으로 몇 년 후면 떠나야 한다. 순환보직이 아니라도 문제다. 어떤 사람도 매번 성공할 수는 없다. 메이저리그의 3번 타자도 열 번 중에 여서 일곱 번은 출루하지 못한다. 근본적인 문제는 순환보직이 아니라 경험자산이 사람에게

[지역의 미래] 태양과 바람의 ‘기후 리더십’

118년 만에 가장 긴 열대야를 지나더니 가을을 건너뛰고 겨울이 온 듯하다. 기후학자들은 올해가 가장 시원한 여름이었을 것이라고 한다. 폭염이 사람만 괴롭힌 것은 아니었다. 충남 서산에서는 축구장 900개 면적의 바지락이, 경남 통영에서는 굴 양식의 35%가 폐사했다. 부산 앞바다의 자연산 미역은 자취를 감추었고 의성, 충주, 보은, 예산의 사과는 화상을 입어 품위가 떨어졌다고 한다. 그럼에도 정부의 대책은 대증 처방에 머무르고 있다. 피해 농가에 특별위로금을 지급하고 외국 농산물을 들여와 밥상 물가를 안정시키겠다고 한다. 감사원의 ‘기후위기 적응 및 대응실태’ 보고서를 찾아봤다. 대부분의 지자체가 형식적인 대책만 갖고 있을 뿐, 기후변화 예측과 연계된 체계적이고 실효적인 계획을 찾기 힘들었다. 기업과 마찬가지로 지자체도 기후경영이 필요한 시점이다. ◇ 태양과 바람의 도시 1970년, 독일 주정부가 전력난 극복을 위해 프라이부르크시 외곽에 원전 건설을 발표했다. 주민과 시민단체는 격렬히 반대하며 태양광을 대안으로 제시했고 9년 후 프라이부르크에는 최초의 태양전지 패널이 설치됐다. 아이러니하게도 같은 해 미국에서 일어난 심각한 원전 사고는 전 세계에 원자력의 위험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40여 년이 흐른 지금, 프라이부르크는 ‘태양의 도시’로 불린다. 도시 곳곳의 주택, 건물, 상점, 공공시설에는 틈틈이 태양광 패널을 설치했는데, 총면적이 축구장 21개의 크기인 15만 m2에 달한다. 모든 신축 건물은 패시브하우스(에너지 낭비를 최소화한 건축물)설계만 허용된다. 고성능 단열재와 창호, 열 회수 환기 시스템, 태양열에너지를 활용하지 않으면 건물을 지을 수 없다. 프라이부르크는 태양에너지 관련 직업과 사업체가 독일의 다른 도시에 비해 4배가 많다고 한다.

[지역의 미래] 지역을 살리는 브랜드는 어떻게 탄생하는가

지난해 순천만 정원박람회를 찾은 사람은 980만 명이었다. 이로 인한 생산유발효과는 1조 5900억 원이 넘고 2만 5000여 명의 일자리 창출 효과도 있다고 한다. 순천의 인구도 정원을 조성한 2013년부터 최근까지 꾸준히 증가해 왔다. 지난 6월 한국고용정보원이 발간한 ‘지역산업과 고용’ 여름호에 따르면 전라남도 지자제 22개 중 순천시와 광양시만 지방소멸 위험지역에서 제외됐다. 감귤도 지역을 대표하는 브랜드이다. 지난해 제주 감귤의 조수입(경영비를 포함한 수입)은 1조 3000억원으로 역대 최고치를 경신하며 약 3만 호의 농가에 소득을 제공했다. 안동 간고등어, 보성 녹차, 담양 대나무숲, 양양 서핑도 지역을 대표하는 브랜드다. 이런 브랜드를 모든 지자체는 갖고 싶어 하지만 모든 지역 브랜드가 지역을 살리는 브랜드가 되는 건 아니다. ◇ 고유자원의 희소성 순천시는 유네스코 생물권 보전지역,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 타이틀을 모두 보유하고 있다. 지자체의 생태보전 스펙으로는 역대급이다. 기후변화로 감귤 재배지역이 북상 중이지만, 제주의 자연과 감귤을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연평균 기온 13.4℃, 연평균 강수량이 1400mm인 보성은 바다와 강이 인접해 있어 안개일수가 많아 차(茶)나무 생육에 최적의 입지다. 이러한 고유자원의 희소성이 지역을 살리는 브랜드의 첫째 조건이다. 고유자원이라도 희소가치가 없으면 브랜드가 힘을 갖지 못한다. 희소성은 시장의 수요는 크지만 공급이 충분하지 못할 때 발생한다.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봉안한 적멸보궁은 5개 지역밖에 없지만, 적멸보궁 때문에 해당 지역을 찾는 사람은 많지 않다. 반면 유네스코 3관왕의 생태환경, 달콤새콤한 과일을 원하는 사람은 많지만 이는 순천과 제주의 고유자원이기에 지역을 살리는 브랜드가 될

[지역의 미래] 출산보다 출가에 집중할 이유

저출산, 고령화, 지방소멸은 사이좋게 붙어 다닌다. 세 단어를 조합하면, 아이들은 보이지 않고 노인들만 남아 있으니 지방은 곧 소멸할 거라는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지난해 합계출산율은 0.72명이다. 이중 서울은 0.55명으로 전국에서 가장 낮고 행안부에서 인구감소 지역으로 지정한 79곳(89개 중 대도시와 부산, 대구, 경기, 인천 등 수도권 제외)의 평균은 0.96명이다. 현재 인구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대체출산율 2.1명보다는 모두 낮지만 저출산 때문에 지방이 소멸하는 것은 아니다. 지방의 인구가 적어서 출생아 수가 적을 뿐이지 출산율로 따지면 서울이 가장 위험한 인구감소 지역이다. 아이를 낳지 않아도 서울 인구가 급감하지 않는 이유는 지방에서 나고 자란 청소년들이 서울로 떠나기 때문이다. ◇ 4명 중 1명은 둥지를 떠난다 지방에는 대학 입시를 도와줄 유명 학원이나 일타강사가 없다. 부족한 학습 환경을 보완하기 위해 대부분의 지자체는 수십억 원의 장학기금을 조성하고 어떤 지자체는 유명 입시 학원과 계약을 맺어 중고생들의 입시를 돕기도 한다. 이렇게 공부한 청소년은 스무 살에 서울로 떠나 대학에 다니고 취업해서 결혼하며 자리를 잡는다. 어느 지역의 15~19세 인구를 5년 후 20~24세 인구와 비교해 감소한 비율을 ‘출가율’이라고 한다면, 79개 인구감소 지역의 22년 평균 출가율은 23%이다. (참고로 서울은 17년 15~19세 49만 6000명에서 22년 20~24세 61만 3000명으로 24% 증가했다.) 7개 도별로 가장 높은 출가율을 나타낸 곳은 강원 태백시, 충북 단양군, 충남 서천군, 전북 고창군, 전남 보성군, 경북 영양군, 경남 고성군으로 이들의 평균 출가율은 43.8%에 달한다. 출가율은 지역 자본의 유출로

제262호 창간 14주년 특집

지속가능한 공익 생태계와 함께 걸어온 1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