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팩트비즈니스 인사이트] 성공하는 실패의 딜레마, ‘프로젝트 파이낸싱’으로 푼다

박윤세 임팩트스퀘어 매니저

임팩트 생태계에는 수많은 좋은 조직과 모델이 존재한다. 혁신적인 실험이 이어지고 있고, 의미 있는 성과들도 적지 않다. 하지만 이들의 노력은 좀처럼 사회 시스템의 변화로 연결되지 않는다. 마치 ‘성공하는 실패’가 반복되는 듯한 양상이다.

이 같은 간극은 여러 요인에서 비롯된다. 대표적인 것이 단기 성과 증명의 함정이다. 대부분의 투자나 보조금은 3년 이내에 눈에 보이는 성과를 요구한다. 이에 따라 임팩트 조직들은 장기적 변화보다는 측정 가능한 단기 지표에 집중하게 된다. 확장성의 딜레마도 문제다. 뛰어난 모델조차 규모를 키우는 과정에서 효과가 희석되거나 비용이 급증하며, 결국 ‘복제’는 되지만 ‘시스템 변화’는 일어나지 않는다.

그 결과, 개별 조직이 고군분투해도 그 노력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선순환 구조는 좀처럼 만들어지지 않는다. 지금까지 우리는 주로 “어떤 조직이 가장 혁신적인가?”, “누가 더 좋은 모델을 갖고 있는가?”에 집중해왔다. 그러나 이제는 질문을 바꿔야 한다. “이 문제를 구조적으로 어떻게 끝낼 것인가?”

그 대답 중 하나가 프로젝트 파이낸싱(Project Financing, 이하 PF)이다.

◇ 전환의 키워드, PF

PF의 핵심은 개별 조직의 수익성이나 신뢰도가 아니라, ‘프로젝트 자체의 목적과 수행 방식, 그리고 미래 수익 가능성’을 기반으로 자금을 조달한다는 점이다. 세계은행은 PF의 세 가지 특징을 제시한다.

첫째, ‘비소구 구조(Limited or No Recourse)’다. 프로젝트가 실패하더라도 대출기관은 프로젝트 자체의 자산과 현금흐름에만 상환 청구권을 갖는다. 이는 조직의 부담을 줄이고, 프로젝트의 타당성에 집중하게 만든다. 둘째, ‘계약 기반 구조(Contractual Arrangements)’다.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각 주체의 역할과 책임, 리스크 분담을 사전 계약을 통해 명확히 규정한다. 모호함에서 오는 갈등과 비효율을 방지한다. 셋째, ‘리스크 분산 구조(Risk Allocation)’다. 금융기관, 사업자, 운영사 등이 각자의 역할에 따라 위험을 나눠 부담함으로써, 특정 주체가 모든 위험을 떠안지 않도록 설계된다.

이러한 구조는 임팩트 생태계에 놀라울 만큼 잘 들어맞는다. 특히 두 가지 점에서 그렇다. 첫째, PF는 대규모 자금과 장기적 관점이 필요한 문제에 최적화되어 있다. PF는 개발도상국의 인프라 사업이나 기후·사회 이슈처럼 대규모 자금과 장기적 관점이 요구되는 문제를 다룰 때 특히 효과적이다. 복잡성과 불확실성이 높은 과제일수록, 계약 기반과 리스크 분산 구조의 강점이 더욱 부각된다.

둘째, PF는 조직의 업력이나 신용도보다 프로젝트 자체의 실현 가능성에 주목한다. 임팩트 조직들은 대개 업력이 짧고, 초기 단계의 혁신적인 스타트업이 많다. 이들은 전통적인 투자 기준에서는 자금 조달이 어려울 수 있지만, PF는 프로젝트 자체의 실행 가능성과 수익성만으로도 자금 유치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유리한 대안이 된다.

◇ PF, 어떻게 임팩트가 되는가

PF가 너무 거창하고 낯설게 느껴진다면, 조금 더 익숙한 개념에서 출발해보자. 바로 사회성과연계채권(Social Impact Bond, 이하 SIB)이다. SIB는 성과 기반으로 자금을 조달하고 성과가 입증됐을 때만 정부가 보상하는 구조다. 다시 말해, 성과 기반 계약(PbR: Payment by Results)을 중심으로 공공 비용 절감을 수익으로 전환하는 구조이며, 사회성과가 곧 투자 회수의 기준이 된다.

예를 들어, 홈리스 대상 주거복지 프로그램이 응급실 방문과 범죄율을 낮추면, 절감된 의료·치안 예산이 프로젝트의 간접 수익으로 환산된다. SIB는 직접 매출이 아닌 ‘사회적 비용 절감’을 수익 구조로 전환한다는 점에서 PF의 논리와 맞닿아 있다.

물론 SIB는 PF와 완전히 동일하지는 않다. 그러나 임팩트 PF를 상상하는 데 있어 SIB는 가장 구체적인 출발점이다. 실제로 영국의 HMP 피터버러 프로젝트나 Essex 카운티의 위기 아동 조기개입 모델은 PF 구조가 사회성과와 재정 효율성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실험이었다.

중요한 것은 ‘누가 자금을 댔는가’가 아니라, ‘그 자금이 어떻게 문제의 구조를 바꾸는 방식으로 설계되었는가’다. PF는 다양한 주체가 각자의 역할과 이익을 가지면서도 하나의 사회적 목표를 향해 함께 움직이는 복합적인 협력 구조다. 그리고 그것은 ‘무엇을 얼마나 했는가’보다, ‘실제로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가’를 중심에 놓는 방식이다. 임팩트 프로젝트 파이낸싱은 더 나은 성과와 더 큰 임팩트를 가능하게 하는 구조다. 이제 우리는 이 구조를 하나의 자금 조달 방식이 아닌, 임팩트 생태계의 새로운 인프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 PF는 결코 혼자 작동하지 않는다

PF는 결코 혼자 작동하지 않는다. 협력 구조가 함께 움직여야 한다. 처음엔 필자 역시 PF와 콜렉티브 임팩트(Collective Impact), 혼합금융(Blended Finance)이 서로 어떻게 다른지 명확히 구분되지 않았다.

하지만 질문을 바꾸면서 퍼즐이 맞춰졌다. “어떻게 자금을 구조화할 것인가?”는 PF의 질문이다. “어떻게 함께 일할 것인가?”는 콜렉티브 임팩트가 던지는 질문이고, “서로 다른 자본을 어떻게 연결할 것인가?”는 혼합금융의 질문이다. 결국 이들은 각각 자금의 흐름, 협력의 방식, 자본의 다양성을 설명하는 하나의 통합 구조를 이룬다. 이들은 각기 다른 해법이 아니라, 하나의 구조를 완성하는 세 가지 축이었다.

PF가 구조 설계의 뼈대라면, 콜렉티브 임팩트는 그 구조를 움직이는 사람들의 협력 환경이며, 혼합금융은 다양한 성격의 자본이 흐르게 만드는 촉매다. PF 구조 내에서 리스크를 분산하고 성과 기반 인센티브를 설계해 참여자들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등 대규모 사회 문제 해결을 위한 안정적인 자금 확보와 효율적인 분배를 가능하게 한다. 쉽게 말하면, PF는 문제 해결을 위한 ‘설계도’라면, 콜렉티브 임팩트는 도면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들과의 신뢰, 혼합금융은 그것을 실현시키는 자본의 흐름인 것이다. 결국 이 세 가지가 유기적으로 맞물릴 때, 우리는 비로소 ‘작동하는 구조’를 설계할 수 있다.

◇ 이제는 ‘구조’로 문제를 끝내야 한다

국내 현실은 여전히 PF 도입에 인색하다. 정부는 보조금 지급자 역할에 머무르고, 투자자는 회수 구조가 불명확한 프로젝트를 외면한다. 스타트업은 보조금과 시드 투자에 익숙할 뿐, 장기 프로젝트에 도전할 여력이 없다.

학계 일각에서는 PF 구조가 ‘전략적 모호성(strategic ambiguity)’을 내포하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한다(Tan, Smith, & Warner, 2019). 복잡한 계약 구조가 책임 회피나 성과 희석의 도구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다. 하지만 중요한 건 복잡성이 아니라 설계 방식이다.

지난 5월 서울 성수동 KT&G 상상플래닛에서 열린 ‘플래닛 써밋: 임팩트 PF’ 포럼에서 발표한 도현명 임팩트스퀘어 대표는 “복잡하다고 해서 반드시 비효율적인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투명한 설계와 지속적인 학습 메커니즘이 함께 작동하면, 복잡한 구조는 오히려 견고한 인프라가 된다”고 덧붙였다. PF는 리스크를 피하는 구조가 아니라, 리스크를 설계하고 조정하는 구조다.

10년 전 임팩트 생태계에 필요했던 것은 좋은 조직들이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좋은 구조’다. PF는 단순한 금융 기법이 아니다. 그것은 문제 해결을 위한 구조, 지속 가능한 변화의 인프라다. 앞으로는 ‘누가’ 해결하는가보다 ‘어떻게’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체할 것인가에 집중해야 한다. 자금 지원을 넘어 구조 설계로, 일회성 투자를 넘어 지속가능한 시스템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를 위해 각 주체의 역할도 달라져야 한다. 투자자는 단순 자금 제공자에서 구조 설계 파트너로, 스타트업은 모든 것을 혼자 해결하려는 부담에서 벗어나 전문성에 집중하는 실행 주체로, NPO는 자금 조달의 부담을 넘어 민관과 플레이어를 엮어내는 최전선의 활동가로, 지자체는 보조금 집행자가 아닌 인프라 조성자이자 파트너로, 중간지원조직은 단순한 연결자가 아닌 복합 구조를 설계하고 조정하는 전략가로 전환해야 한다.

문제를 끝내기 위해, 우리는 이제 ‘어떻게’를 바꿔야 한다. 임팩트를 설계하고, 실험하고, 변화를 만들어가는 여정을 함께할 파트너를 기다린다.

박윤세 임팩트스퀘어 매니저

필진 소개

임팩트스퀘어 ‘Team IBR’은 자체 발간 미디어 ‘Impact Business Review’를 기획·발행하고 있습니다. Team IBR은 커뮤니케이션, 액셀러레이팅, 로컬 등 임팩트스퀘어 각 사업 부문에 소속된 구성원들이 필진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임팩트비즈니스 인사이트] 시리즈에서는 국내외 임팩트 비즈니스의 혁신적인 사례를 심층적으로 탐구하고,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다양한 접근 방식을 독자들에게 제시할 것입니다. 이 시리즈를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임팩트 비즈니스를 소비’하고, 장기적으로 산업·생태계의 관점이 확장되는 마중물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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