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상보다 20분 이상 더 걸렸다. 구글 지도가 안내한 시간은 이미 한참 넘긴 상태. 약속한 미팅 시간에도 늦었고, 차는 좀처럼 움직일 기미가 없었다. 초조함을 삼키며 차창 밖을 내다보던 순간, 대로변 한복판에 멈춰선 소 한 마리와 눈이 마주쳤다. 차들은 그 소를 피해 조심스레 움직였고, 같은 시야 안에는 테슬라 전기차와 수십 명이 탄 릭샤도 보였다. 그렇게 필자에게 인도의 첫인상은 ‘예상 밖의 것들이 공존하는 풍경’으로 남았다.
그리고 이 인상은 곧 ‘혼합금융(Blended Finance)’이라는 개념과 겹쳐졌다. 벵갈루루에서 만난 초기 투자사와 비영리 기관들이 수행하는 프로젝트 역시, 이질적인 요소들이 뒤섞여 하나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이었다.
◇ 벵갈루루에서 겪은 ‘혼합금융’의 현장
‘혼합금융’은 말 그대로 여러 재원을 혼합해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다. 글로벌 조직 ‘컨버전스(Convergence)’는 이를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민간 투자를 유도하고자 공공이나 자선 재원을 촉매자본으로 활용하는 것”이라 정의한다. 이 과정에는 민간 투자자, 공공기관, 재단, 수혜 기업 등 적어도 세 주체 이상이 개입한다.
인도 벵갈루루에서 방문한 ‘카본 마스터스(Carbon Masters)’는 음식물 쓰레기를 발효시켜 바이오가스를 생산하는 기업이다. 한국의 과거 LPG처럼 가스를 통에 주입해 현지 식당 30여 곳에 납품하고 있었다. 갑작스럽게 공장까지 둘러보게 된 뒤, 인큐베이터 ‘빌그로(Villgro)’와 대출 지원 기관 ‘유누스 소셜 비즈니스(Yunus Social Business)’ 관계자를 연이어 만났는데, 공통적으로 이 기업을 언급했다.
한 기업의 이름이 이토록 반복해서 언급되는 건 우연이 아니다. 18억 명 이상이 거주하는 인도처럼 인구 밀도가 높은 국가에선 폐기물 처리가 중대한 사회문제이기에, 이를 비즈니스로 해결하려는 팀이 임팩트 투자자나 벤처 자선기관(Venture Philanthropy) 등 다양한 지원의 대상이 되는 건 당연해 보인다. 그러나 단순히 그뿐일까? 목적도, 방식도 다른 기관들이 왜 하나의 기업에 집중해 자금을 지원하고, 성장까지 돕는 것일까?
◇ 촉매 자본의 힘, 연쇄 반응을 일으키다
국제금융공사(IFC)나 OECD는 혼합금융에서 촉매 자본을 “기존에 투자되지 않았을 부가적인 자본을 움직이게 만드는 역할”이라고 설명한다. 화학 반응이 일어나지 않는 안정 상태에서는 ‘활성화 에너지(activation energy)’가 부족해 변화가 어렵다. 하지만 촉매가 이 역치를 낮추면, 자연적으로는 발생하지 않는 반응이 비로소 일어나게 된다.
다양한 사회환경 문제의 해결 역시 마찬가지다. 복잡하게 얽힌 이해관계와 구조 속에서 실질적인 변화를 일으키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역치가 높다. 이 지점에서 임팩트 투자자와 인도의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촉매자 역할을 하게 된다. 일단 반응이 일어나기 시작하면 관심을 받게 되고, 가능성에 주목하는 일반 금융으로부터 더 큰 변화를 위한 자본을 조달할 수 있게 된다.
그렇게 반응이 추가적인 반응을 일으키며 연쇄 반응이 되고, 전체 시스템을 바꾸고, 새로운 규칙을 만들어낸다. 벵갈루루에서 만난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은 역할이 중첩되거나 혼재되어 보이기도 했지만, 실은 변화를 막는 저항을 줄이기 위해 각자의 방식으로 공존하며 조율하고 있었던 것 아닐까.
2025년 하반기, 인도에서는 본격적인 혼합금융 사업이 시작된다. MYSC는 프랑스 주주와는 서아프리카에서, 일본 파트너와는 서남아시아에서 혼합금융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다. 20세기에 촉매 반응으로 암모니아와 황산 같은 필수 원료를 얻을 수 있게 된 것처럼, 21세기에는 촉매 자본 기반의 혼합금융을 통해 지속가능한 발전을 이끄는 혁신적인 해결책들이 쏟아져 나오기를 기대한다.
박정호 MYSC 부대표 겸 CSO
필자 소개 MYSC에서 임팩트 투자와 글로벌 사업을 맡고 있습니다. 특히 임팩트테크,기술기반의 소셜벤처,에 투자하고 동남아에서 임팩트를 확장하도록 돕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한국국제협력단(KOICA)의 ODA재원을 제공하는 혼합금융을 적극적으로 적용하고, 이해관계자들과 함께 하는 콜렉티브 임팩트 프로젝트를 추진하여 임팩트를 확대하는 일을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