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가게·모리함, 17일까지 ‘기억가게’ 전시 개최
오래 사용·기록의 가치 조명
서울 중구 모리함 전시관 2층. 벽면에는 낡은 책부터 그물 주머니까지 손때 묻은 물건들이 표구 형식으로 걸려 있다. 평범해 보이는 이 물건들에는 누군가와의 시간과 관계, 기억이 담겨 있었다.
이 전시는 아름다운가게와 모리함이 공동 주관·주최하는 ‘기억가게’다. 아름다운가게가 25년간 기부와 나눔으로 전해받은 물건들 속 이야기를 다시 꺼내보자는 취지에서 기획됐다. 대학 입학 선물로 받은 재킷, 누군가와 나눴던 따뜻한 차 한 잔처럼 단순한 사물이 아닌, 한 사람이 살아온 시간의 조각들을 전시라는 방식으로 조명한다. 소비가 일상이 된 시대일수록 오래 곁에 남아 있는 것들의 가치를 되새겨보자는 의미도 담았다.

2025년 첫선을 보인 데 이어 올해도 10인의 특별한 ‘물건 이야기’를 담았다. 참여자는 ▲김영진(한복 디자이너) ▲김중혁(작가) ▲류지현(특수학교 교사) ▲박정순(트레일러너) ▲박진원(국제 변호사) ▲엄유진(일러스트레이터·펀자이씨툰 작가) ▲요조(뮤지션) ▲이순덕(제주 해녀) ▲정도선(책방 소리소문 대표) ▲정재승(뇌과학자) 등이다.
올해 전시는 ‘당신 곁에 그 물건이 남아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요?’라는 질문을 중심으로 구성됐다. 고쳐 쓰고 아껴 쓰며 물건과 함께 시간을 견뎌온 ‘사용(Use)’의 태도와, 소중한 기억을 잊지 않기 위해 기록으로 남기는 ‘기록(Write)’의 태도를 함께 조명한다.
전시를 총괄 기획한 이혜라 아름다운가게 홍보팀장은 “아름다운가게에는 매일 수많은 물건이 들어오지만, 사람들은 물건 자체보다 그 안에 담긴 기억 때문에 쉽게 놓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이번 전시는 단순히 오래된 물건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물건을 통해 사람의 시간을 들여다보는 전시”라고 설명했다. 이어 “소비가 일상이 된 시대일수록 변하지 않는 것들이 더 빛난다”며 “아름다운가게가 오랫동안 지켜온 가치들을 전시라는 방식으로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 69세 트레일러너의 ‘낡은 운동화’에 담긴 기억

전시장 한가운데서 유독 눈길을 끈 건 낡은 신발 한 켤레였다. 닳아버린 앞코에는 호피무늬 천이 덧대어져 있었다. 이는 69세 트레일러너 박정순 씨의 물건이다. 수영과 마라톤을 거쳐 트레일러닝에 뛰어든 그는 지리산 능선 40km 완주는 물론, 서울 울트라 트레일 러닝 100km 여성부에서 4회 연속 우승을 기록했다. ‘포기하지 않는 것’을 삶의 철학으로 삼아온 그의 치열한 훈련과 도전의 시간이 이 신발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지난 7일 전시장을 찾은 박정순 씨는 전시된 물품을 바라보며, 53세에 처음 트레일러닝을 시작해 입상한 뒤 한 신발 브랜드로부터 선물받았던 첫 운동화라고 회상했다. “러닝을 하다가 캄캄한 밤 길을 잃고 소리를 질러 사람을 찾던 순간, 고라니와 뱀을 마주쳤던 기억, 진흙탕에 빠지고 눈물을 흘리면서도 성취감을 느꼈던 순간들이 이 신발에 고스란히 담겨 있어요. 그래서 10년도 더 된 운동화지만 못 버리고 한 번씩 꺼내 신었죠.”
그는 소비에 익숙해진 요즘 세대에게도 메시지를 전했다. 박 씨는 “꼭 새 것을 사야지 잘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걸 느꼈으면 좋겠다”며 “물건을 오래 아껴 쓰고 재사용하는 문화가 더 많아졌으면 한다”고 했다.
전시장 한쪽에는 관람객들이 전시를 보며 떠오른 누군가에게 편지를 남길 수 있는 공간도 마련됐다. 관람객들은 부모님, 친구, 연인 등을 떠올리며 손편지를 써 내려갔다. 전시를 기념할 수 있는 굿즈도 준비됐다. 자투리 가죽을 활용해 만든 수첩을 제작·판매해 자원순환의 가치를 담았으며, 판매 수익금 전액은 소외이웃을 위해 사용될 예정이다.

장윤경 아름다운가게 상임이사는 “이번 전시를 통해 관람객들이 자신 곁의 물건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소비 중심의 삶에서 가치 중심의 삶으로 시선을 옮기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한편, 전시는 5월 7일부터 17일까지 서울 중구 모리함 전시관에서 열린다. 관람 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이며, 무료로 운영된다.
조유현 더나은미래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