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9월 13일(금)

미션은, 식판에 김치 국물 안 묻히기… ‘존엄한 한끼’ 배식 참여해보니[더나미GO]

코로나19 팬데믹은 자원봉사 현장에도 직격탄을 날렸습니다. 2022년 전국 사회복지시설에서 자원봉사 활동을 한 사람은 53만여 명으로, 코로나19 유행 이전(2019년 125만 6421명)에 견줘 절반에도 못 미쳤습니다. 감염병 유행과 사회적 거리두기로 크게 위축된 자원봉사, 더나은미래는 ‘더나미GO’ 코너에서 기자가 직접 ‘봉사자’로 참여해 다시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나눔의 현장을 전합니다. /편집자 주

지난달 19일 아침 6시, 비몽사몽으로 도착한 서울역 인근 무료급식소 ‘아침애(愛)만나’에는 이미 대여섯 명의 봉사자들이 모여 식사 준비로 분주했다. 한쪽에선 조리사들이 음식 준비에 한창이었고, 다른 쪽에선 쓰레받기로 쓸고 닦으며 청소에 열심이었다. “몇 시에 나오셨어요?” 한 봉사자에 물었더니 4시에 도착했다고. 피곤할 법도 한데, 한 명도 빠짐없이 얼굴에 미소가 가득했다. 덕분에 무겁던 눈꺼풀이 조금씩 가벼워져갔다.  

서울역 12번 출구 인근에 위치한 무료급식소 ‘아침애만나’. /이랜드복지재단

서울역 12번 출구 인근에 위치한 아침애만나는 이랜드복지재단이 장소와 재정을 지원하고, 운영은 마가의다락방교회·방주교회·필그림교회·필그림선교교회·길튼교회·하늘소망교회의 연합체인 ‘마가공동체’가 맡는다. 지난달 10일 시범운영을 시작한 이후로 매일 평균 150명 정도의 노숙인, 쪽방촌 주민 등이 찾아오고 있다.

이날 약 20명의 봉사자들이 모이자, 배식과 서빙, 안내 등으로 담당이 나누어졌다. 기자도 앞치마와 위생모, 마스크를 착용한 채 배식조로 합류했다. 조리팀이 준비해둔 음식을 배식하기 쉽게 배치하면서 봉사자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이날 봉사자들은 대부분 인천방주교회 성도들이었다. 교회 광고를 보고 봉사를 신청했다는 정혜정(47)씨는 “미용실 원장인데, 오늘 봉사 참여하려고 미용실 문을 닫았다”고 말했다. “지난주 금요일에 처음 오고 오늘 또 왔어요. 지하철 첫 차 타고 와야 해서 피곤한데도 너무 행복하더라고요. 오늘은 우리 딸도 데려왔죠.”

정씨 옆에서 식기 정리에 열심이던 딸 송믿음(13)양은 “엄마랑 방학하면 오기로 약속했어서 방학 시작 첫날에 오게 됐다”며 “다음에도 올 것”이라고 했다.  

출근 전에 들렀다는 봉사자도 있었다. 박재우(50)씨는 봉사 끝나면 혜화로 출근해야 한다며 “방문하는 어르신들이 어디서도 느껴본 적 없는 따뜻함을 경험할 수 있게 노력해야겠다는 마음이 든다”고 했다.

기자(맨 왼쪽)가 무료급식소 ‘아침애만나’에 일일 봉사자로 참여해 배식하는 모습. /이랜드복지재단

이야기꽃을 피우며 배식 준비를 마치자 어느덧 7시. 봉사자들이 3층에서 대기하던 어르신들을 1, 2층으로 차례로 안내했고, 본격적인 배식이 시작됐다. 이날의 식단은 쌀밥과 된장국, 김치, 잡채, 참외였다. 새하얀 식판에 밥과 국·반찬을 옮겨 담으려니 김치 국물을 다른 반찬 칸에 흘리지 않는 게 관건이었다. 식판에 조금이라도 반찬을 묻히는 순간엔 옆에서 어김없이 휴지를 든 손이 다가왔다. “깨끗하고 먹음직스럽게 담아야 해요.” 쉬지 않고 집게로 반찬을 나르다 보니, 순식간에 손가락이 뻐근했다.

주방조가 식판에 밥과 국·반찬을 옮겨 담으면, 서빙조가 자리로 직접 날랐다. 어르신들이 반찬 ‘리필’을 요청해도 봉사자들이 직접 가져다줬다.

무료급식소 ‘아침애만나’에서 봉사자가 어르신에 직접 식판을 가져다주는 모습. /이랜드복지재단

“10점 만점에 10점!” 식판을 싹싹 비운 어르신들이 엄지를 추켜세우며 연신 감사 인사를 건넸다. 아침애만나가 문을 연 첫날부터 매일 왔다는 조성현(가명·70)씨는 눈물을 글썽이며 감사를 표했다. “저녁에 약을 11개를 먹어야 해서 자고 일어나면 속이 쓰려요. 아침애만나 덕분에 아침을 챙겨 먹을 수 있게 돼서 다행이죠.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감사해요.”

인근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직장인도 찾아와 한 끼를 해결하고 갔다. 김현우(가명·51)씨는 “아는 사람이 소개해 줘서 오게 됐는데, 봉사자들 너무 친절하고, 음식은 웬만한 식당보다 맛있어서 매일 올 것 같다”고 말하며 자리를 떴다.  

기자가 식사를 마치고 나가는 어르신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어르신은 “10점 만점에 10점”을 외치며 엄지를 추켜세웠다. /이랜드복지재단

이렇게 150명 정도가 식사를 마치니 시곗바늘이 금세 8시 30분을 가리켰다. 봉사자들에게도 꿀맛 같은 아침식사 시간이 찾아왔다. 식사하며 이랜드 측으로부터 어르신들에 감동받았던 이야기도 전해 들을 수 있었다. “어느 날엔 한 어르신이 감사하다며 주머니에서 꼬깃꼬깃한 1000원짜리 4장을 꺼내 주고 가셨어요. 또 다른 날에는 5만원을 건넨 선생님도 있으셨죠.”

마가공동체를 이끄는 구재영 하늘소망교회 목사는 어르신들의 감사 인사 한 마디와 행복해하는 표정이 이 일을 기쁨으로 할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라고 말했다. “어르신들이 아침애만나에 오는 것만으로 너무 행복하다고 하시는데, 덕분에 저희도 기쁨이 넘칩니다. 무료급식소가 참 많지만, 이곳에 오시는 분들은 특별한 따뜻함과 환대를 경험하시고, 삶에 대한 희망을 얻어 가시길 기대합니다.”

봉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식사를 마치고 행복해하던 어르신들의 표정이 아른거렸다. 존중과 환대로 ‘존엄한 한 끼’를 대접하면서 역으로 기자가 ‘힐링’한 시간이었다.

한편, 아침애만나는 매주 월~토요일 오전 7시부터 8시 30분까지 식사를 제공한다. 봉사와 기부로 동참을 원할 경우, 이랜드재단 자선플랫폼 에브리즈 내 ‘진행중 모금함’을 통해 신청할 수 있다.

조유현 더나은미래 기자 oil_lin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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