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CSR 대전환 : 자원봉사의 미래를 다시 묻다 <4·끝>
니콜 시릴로(Nichole Cirillo) IAVE 사무총장·윤영미 한국자원봉사문화 사무총장 특별 대담
오는 2026년은 ‘세계자원봉사자의 해(International Year of Volunteers·IYV)’다. 국제자원봉사자의 해 지정은 2001년 이후 두 번째다. 유엔은 지난해 12월 총회에서 2026년을 다시 국제자원봉사자의 해로 채택하며 “각국은 자원봉사의 구조적 가치와 사회적 기여를 재평가하고 필요한 제도와 투자를 재정비하라”고 주문했다.
IAVE(세계자원봉사협의회)는 이를 앞두고 지난 2년간 100여 개국 자원봉사자와 관리자, 기업·정부 관계자 등을 대상으로 76회의 글로벌 대화를 진행하고, 전 세계 1만5000명이 참여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IAVE는 100여 개국 정부·국제기구·NGO·기업이 참여하는 국제 조직으로, 글로벌 자원봉사 생태계의 정책 변화와 역량 강화를 이끌고 있다.
국내에서는 한국자원봉사문화가 글로벌 논의를 주도하며 변화 방향을 모색했다. 내년 창립 30주년을 맞는 한국자원봉사문화는 연구·정책 제안·교육·컨설팅을 수행하는 민간 전문기관으로, 일상 속 자원봉사 문화를 확산하는 데 주력해왔다.
두 기관은 지난 12일 ‘지속가능한 미래를 향한 기업 자원봉사의 세계화와 지역화’를 주제로 ‘2025 글로벌 CSR 포럼(2025 Global CSR Forum)’을 더나은미래와 함께 공동 개최했다. <더나은미래>는 포럼 다음날인 13일, 니콜 시릴로 IAVE 사무총장과 윤영미 한국자원봉사문화 사무총장을 만나 2026년을 앞두고 자원봉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물었다.

―앞으로의 방향을 논하기 전에, 먼저 ‘지금까지의 변화’를 짚어보고 싶다. 자원봉사 분야의 변곡점으로 꼽을 만한 사건이나 흐름이 있다면.
니콜 시릴로(이하 니콜)=2001년 첫 ‘세계자원봉사자의 해’와 2023년 말의 2026년 재지정 결정은 자원봉사 인식을 크게 끌어올린 순간이다. 국제기념일 지정은 해당 의제가 세계적 관심사로 떠오른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전환은 2015년 지속가능발전목표(SDGs) 발표다. 당시 유엔 사무총장이 “자원봉사 없이 SDGs는 성공할 수 없다”고 공언했다. 각국 상황은 다르지만, 자원봉사 관련 법 제정이나 대규모 활동 등 국가 단위 변화 역시 중요한 분기점이 된다. 이 변화들이 결합하며 자원봉사의 위상이 한층 높아졌다.
윤영미(이하 윤)=국내 자원봉사는 새마을운동처럼 국가 주도의 동원형 참여에서 출발했지만, 2002년 월드컵과 태안 기름 유출 사고를 거치며 자발적 시민참여 중심 체계로 전환됐다. 이후 세월호 참사를 지나며 자원봉사는 재난 대응·심리회복·지역 돌봄 등 구체적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방향으로 확장됐다. SDGs 도입은 자원봉사의 관점을 ‘좋은 일 하기’에서 ‘측정 가능한 사회적 가치’ 중심으로 바꾸는 계기가 됐다. 코로나19는 방식 자체를 변화시켰다. 시간 인증 중심 구조에서 벗어나 온라인·비대면·생활권 기반 활동으로 빠르게 확장하며 자원봉사의 무대를 일상으로 넓혔다.
―2001년 이후 25년 만에 다시 찾아온 ‘세계자원봉사자의 해’다. 이 시점에서 자원봉사를 어떻게 재정의해야 한다고 보나.
니콜=이번 설문조사의 핵심 질문은 ‘자원봉사가 제대로 인정·투자·지원받기 위해 무엇이 바뀌어야 하는가’였다. 전 세계 응답자들은 공통으로 ▲인식 부족 ▲투자 부족 ▲지원체계 부족을 문제로 지적했다. 자원봉사는 시민사회의 핵심 요소이며 지역사회 회복력과 SDGs 달성의 주요 수단이다. 앞으로는 자원봉사의 가치를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안정적 투자를 보장하며, 자원봉사자를 보호·지원하는 구조가 마련돼야 한다. 솔직히 말하면 지금 어떤 나라에서도 정부와 기업이 자원봉사를 충분히 지원하고 있지 않다. 자원봉사는 ‘늘 존재하는 무료 자원’이 아니며, 훈련·안전·관리·운영에는 재정 기반이 필수다. 이를 뒷받침할 정책과 제도가 함께 마련돼야 한다.
윤=한국은 그간 자원봉사의 가치를 자발성·무보수성·공익성으로 규정해왔다. 이제는 이를 주도성·협력성·혁신성·지속가능성 같은 ‘임팩트 가치’로 확장해야 한다. 자원봉사를 단순한 선행이 아니라 ‘사회 변화를 만드는 활동’으로 재정의할 때다. 규모 확대도 중요하지만 앞으로 5년·10년 뒤 어떤 문화를 만들 것인지 목표를 먼저 세워야 한다. 그리고 인식–투자–지원체계가 맞물려 작동하는 선순환 구조를 구축해야 한다. 정부·기업·NGO가 각자의 역할을 기반으로 이 구조에서 협력하는 것이 필요하다.
―정부·기업·NGO 등 각 주체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하나.
니콜=정부와 기업이 자원봉사의 사회적 역할을 명확히 인식하는 것이 출발점이다. 해외원조·국제개발 예산이 줄어들며 각국 정부가 압박을 받고 있지만, 자원봉사가 공공서비스를 보완하고 지역사회를 강화하는 데 기여한다는 점은 충분히 연결되고 있지 않다. 기업 역시 자원봉사를 조직 역량을 높이는 실질적 활동으로 바라봐야 한다. 자원봉사 경험이 있는 직원은 퇴사율이 낮고 업무 성장이 빠르지만 기업은 이를 ‘이익’으로 계산하지 않는다. 또 중요한 요소는 자원봉사자에게 돌아가는 혜택이다. 정신건강·사회적 연결감·역량 개발 등 자원봉사가 개인에게 주는 이익은 크지만 사회적 논의는 여전히 부족하다.
윤=정부는 자원봉사를 ‘복지 보조’가 아니라 사회문제 예방을 위한 투자로 바라봐야 한다. 기업이 자원봉사에 참여할 수 있는 환경과 인센티브 설계도 필요하다. NGO는 임팩트를 설계하고 협력 모델을 만들며 이를 확산시키는 전문성이 필요하다. 그러나 자원봉사 코디네이션, 프로그램 기획, 파트너십 구축 등 전문 기술을 개발할 수 있는 R&D 투자 환경은 매우 부족하다. 이 영역 자체의 역량을 키우기 위한 제도적 기반이 시급하다. 지금까지는 행정 중심 체계 강화에 초점이 맞춰졌다면 앞으로는 시민 참여와 자원봉사 문화를 만드는 ‘문화 기반 제도’가 필요하다.

―지난 12일 ‘글로벌CSR포럼’을 개최했다. 포럼이 던지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니콜=전 세계 민간 부문에서 임직원 자원봉사 프로그램이 강력하게 자리 잡고 있다는 점을 확인했다. 미국·유럽 등에서 ESG 반발이 커지는 상황에서도 기업 자원봉사는 중요한 축으로 유지되고 있었다. 또 하나의 메시지는 ‘임팩트 측정’이다.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수준을 넘어, 그것이 만들어내는 변화를 정교하게 측정해야 한다. 이날 발표된 사례들은 단순 활동을 넘어 기업의 CSR 의제를 이끌며 실질적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임직원 자원봉사 프로그램이 더욱 정교해지고 있다는 점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윤=한국에서는 기업 자원봉사의 위상이 아직 강하다고 보 어렵다. 다만 이번 포럼을 통해 기업들이 자원봉사의 가치를 증명하고 다양한 모델을 연구해 현장에 적용하려는 움직임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는 점을 확인했다. 특히 주목할 흐름은 ‘글로벌 이슈의 지역화 전략’이다. 글로벌 의제를 지역 현장에서 풀어내고, 지역 커뮤니티 문제를 기업이 함께 해결하는 방식이 강화되고 있었다. 모두가 같은 메시지를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글로벌 담론이 로컬 현장과 잘 맞물린 사례가 있나.
니콜=IBM과 함께 진행 중인 ‘RRA(Reskilling Revolution Africa)’ 프로그램이 대표적 사례다. 나이지리아·에티오피아·남아공에서 시작해 약 5만 명의 청년이 참여했고, 자원봉사를 통해 취업에 필요한 디지털 역량을 개발하도록 지원했다. 이후 IBM의 무료 기술교육 플랫폼 ‘스킬스빌드(SkillsBuild)’와 연계해 국제 인증을 받을 수 있게 했다. 글로벌 문제인 청년 실업을 로컬 기반으로 해결한 모델이다. 프로그램은 현지 전문가·멘토·기관이 중심이 돼 지역 상황과 청년들의 실제 어려움에 맞춘 방식으로 운영됐다. 글로벌 의제를 지역 현장에서 구현한 ‘글로벌-로컬 연계’의 좋은 예다.

윤=아마존웹서비스(AWS)도 있다. AWS는 “사용한 물보다 더 많은 물을 지역사회에 되돌리겠다”고 선언하고, 올해 이천시에서 국내 첫 ‘수자원 환원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저수지 퇴적물을 제거하고 외래식물을 정비해 실제 수자원 환원 효과를 만들었다. 현대모비스 역시 생물다양성이라는 글로벌 의제를 현장에서 실천한 사례다. 충북 진천 미호강 일대에 생태숲을 조성하며 100억 원을 투자했고, 2022년 진천군에 이를 기부했다. 2012년부터 생태 조사와 정화 활동도 10년 넘게 이어왔다. 두 사례 모두 글로벌 이슈를 ‘기업 시민’ 관점에서 지역 현장에 맞게 해석한 방식이다.

―자원봉사의 ‘더 나은 미래’는 무엇이라고 보나.
니콜=자원봉사는 이미 많은 사람들의 삶 속에 존재한다. 단지 그 가치를 충분히 인지하지 못할 뿐이다. 내가 생각하는 ‘더 나은 미래’는 모든 자원봉사자가 존중받고, 필요한 지원을 제공받으며, 안전하게 활동할 수 있는 환경이다. 자원봉사자는 재난 현장에서 가장 먼저 움직이는 ‘퍼스트 리스폰더(first responder)’와 같다. 그러나 우리는 그 가치를 동등하게 인정하지 않는다. 자원봉사자가 구조대원처럼 존중받는 미래가 오기를 바란다.
윤=한국의 자원봉사 구조는 복지 분야에 지나치게 편중돼 있다. 환경·교육·의료·보건 등 다양한 분야로 균형 있게 확장돼야 한다. 자원봉사가 ‘테라피(therapy)’ 역할을 하는 방향도 중요하다. 청년에게는 성장과 경험을, 어르신에게는 사회적 기여와 건강을, 취약계층에게는 참여와 치유를, 아이들에게는 생활문화의 자연스러운 접점을 제공해야 한다. 자원봉사가 일상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사회가 한국 자원봉사의 이상적인 미래다.
김규리 더나은미래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