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790조 전환금융’ 시동…세계는 이미 탈탄소 산업 경쟁

일본은 국채로 투자 유도, EU는 그린워싱 차단, 싱가포르는 ‘노란불’ 전환금융
각국 산업 구조 맞춘 전환금융 경쟁…글로벌 금융 흐름으로

이재명 정부가 790조 원 규모의 기후금융 확대와 전환금융 도입 계획을 내놓으며 고탄소 산업의 저탄소 전환 지원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일본과 유럽연합(EU), 싱가포르 등 주요국도 각기 다른 방식으로 전환금융 제도를 확대하고 산업 탈탄소 경쟁에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 2월 25일 금융위원회는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제4차 생산적 금융 대전환 회의’에서 2035년까지 총 790조 원 규모의 기후금융을 공급하겠다고 밝혔다. 2035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 달성을 위해 기존 2024~2030년 420조 원 계획보다 기간과 규모를 모두 늘렸다. 정부는 신규 공급 재원의 50% 이상을 지방에, 70% 이상을 중소·중견기업에 나눈다는 방침도 내놨다.

이억원 금융위원장이 지난 2월 25일 오전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제4차 생산적금융 대전환 회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이날 금융위원회는 기후금융 790조 원으로 확대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뉴시스

전환금융은 탄소 배출이 많은 산업이 저탄소 구조로 바뀌는 과정에 필요한 투자를 지원하는 금융이다. 태양광·풍력 같은 ‘순수 녹색’ 사업뿐 아니라 철강·시멘트·화학 등 탄소 다배출 산업의 설비 효율화, 연료 전환, 기술 개발 등을 지원하는 데 초점을 둔다. 정부는 이번 정책을 통해 이들 산업의 전환 투자를 지원하는 ‘한국형 전환금융’ 체계를 마련하겠다는 계획이다. 금융위원회는 이를 위해 2026년 상반기 전환금융 워킹그룹을 가동할 예정이다.

◇ 정부가 마중물 부어 민간 투자 끌어내는 일본식 전환금융

전환금융에 속도를 내는 것은 한국만이 아니다. 유럽연합(EU), 일본, 싱가포르도 각국의 산업 구조와 금융 환경에 맞는 방식으로 전환금융 제도를 설계하고 있다. 같은 전환금융이라도 접근 방식은 다르다. 일본은 국가가 직접 실탄을 공급하고, EU는 엄격한 평가 기준으로 신뢰를 관리한다. 싱가포르는 금융시장을 활용해 이를 현실화하고 아시아로 확장하려는 전략을 내세웠다.

일본은 한국처럼 제조업 비중이 높은 나라다. 이에 정부가 직접 자금을 조달해 기업의 탈탄소 전환을 지원한다. 일본 정부는 2023년 2월 향후 10년간 20조 엔(한화 약 186조 원) 규모의 ‘GX 전환국채’를 발행해 전환 투자를 뒷받침하겠다고 발표했다. 정부 투자를 기반으로 민간 금융과 기업 투자를 끌어내 10년간 총 150조 엔(한화 약 1400조 원) 규모의 민관 합동 투자를 유도하겠다는 구상이다.

일본은 2024년 2월 세계 최초로 기후 전환국채를 발행했으며 두 차례 발행 규모는 총 1조6000억 엔(한화 약 15조 원)에 달한다. 올해 1월에도 재무성이 약 3000억 엔(한화 약 2조8000억 원) 규모의 전환국채 입찰을 실시하는 등 자금 조달을 이어가고 있다.

제도 정비도 빼놓지 않는다. 일본 경제산업성(METI)은 2025년 12월 전환금융 가이드라인을 개정했다. 기업이 과학 기반 감축 경로를 따르고 있는지, 재무 계획과 연결된 전환 전략을 갖추고 있는지 등을 점검하도록 기준을 강화했다. 전환금융에 대한 시장 신뢰를 높여 민간 투자를 끌어내려는 목적이다.

전환금융 도입에 앞서온 EU는 기업의 전환 계획이 실제 자본지출과 지배구조로 이어지는지 점검하도록 하며 그린워싱을 방지하고 있다. /Unsplash

◇ 전환금융 주도하는 유럽 “그린워싱은 안된다”

세계에서 가장 먼저 전환금융을 제도권에 가져온 EU는 ‘전환을 빙자한 그린워싱’을 경계한다. 앞서 EU는 2020년 세계 최초로 녹색분류체계(택소노미)를 도입하면서 전환 활동의 근거를 마련했다. 2023년 6월에는 기업이 과학 기반 감축 경로에 맞춘 전환 계획과 자본지출 계획을 공개하도록 하는 엄격한 전환금융 권고안을 발표하며 기준을 구체화했다.

이 같은 규칙을 뒷받침하는 것은 막대한 투자 규모다. EU 집행위원회는 2021년부터 2030년까지 최소 1조 유로(한화 약 1700조 원) 규모의 투자를 동원하는 ‘유럽 그린딜 투자계획(EGDIP)’을 가동 중이다. 무디스에 따르면 2025년 글로벌 전환채권 발행 시장에서 유럽은 약 47%의 점유율을 차지하며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EU는 이제 선언을 넘어 전환 계획의 신뢰성을 검증하는 단계에 들어섰다. 2025년 1월 EU 지속가능금융 플랫폼(PSF)은 기업의 전환 계획이 실제 자본지출과 지배구조로 이어지는지 평가하는 기준을 제시했다. 금융기관이 전환 계획의 실질적 이행 여부를 점검해야 한다는 방향도 강조했다.

◇ 빨간불·파란불 사이 노란불 만든 싱가포르…한국의 모델은?

현실주의 노선을 택한 싱가포르는 2023년 12월 싱가포르-아시아 택소노미(SAT)에서 완전 친환경(녹색)과 화석연료(적색) 사이에 ‘황색(Amber·전환)’ 범주를 공식화했다. 완전한 녹색에 미치지 못하더라도 감축 경로를 갖춘 활동을 별도의 전환 라벨로 분리해 저탄소로 넘어가는 중간 단계에서도 자금 조달이 가능하도록 했다. 실제로 2025년 10월 YTL 싱가포르의 발전사 YTL 파워세라야는 600MW급 수소 대응 발전소 건설을 추진하며 5억 싱가포르 달러(한화 약 5700억 원) 규모의 전환 대출을 조달했다. 이 거래는 SAT에 부합하는 첫 전환금융 사례로 소개됐다.

싱가포르는 ‘황색(Amber) 전환’ 택소노미를 도입해 저탄소 전환 단계의 자금 조달을 허용하고 있다. 싱가포르 발전회사 YTL 파워세라야는 600MW 수소 대응 발전소 건설을 위해 5억 싱가포르 달러 규모 전환 대출을 조달했다. /PowerSeraya

싱가포르는 전환금융을 아시아 에너지 전환을 연결하는 금융 허브 전략으로 키우고 있다. 싱가포르 통화청(MAS)은 2023년 전환금융 협력 플랫폼인 ‘FAST(Financing Asia’s Transition Partnership)’를 출범하고 동남아 노후 석탄발전소 조기 폐쇄와 재생에너지 전환 프로젝트에 혼합금융을 공급하는 구조를 추진한다. 이와 함께 석탄발전 조기 폐쇄로 발생하는 탄소 감축분을 ‘전환 크레딧’ 형태로 활용하는 금융 모델도 검토 중이다.

전환금융은 이제 특정 국가의 정책을 넘어 세계적인 흐름으로 자리 잡는 추세다. 국제 금융 싱크탱크 OMFIF는 2026년 전망 보고서에서 “전환금융은 단순한 개념을 넘어 실제 자본을 이동시키는 새로운 금융 영역으로 자리 잡고 있다”고 평가했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은 전환금융 확대의 핵심 시장으로 꼽힌다. 국제자본시장협회(ICMA)가 2025년 전환채권 가이드라인을 발표하면서 탄소 다배출 산업의 탈탄소 투자에 자금을 공급하는 ‘전환채권’ 시장도 별도의 투자 영역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처럼 전환금융은 각국의 산업 구조와 정책 환경에 따라 서로 다른 방식을 가진다. 한국 또한 제조업 중심의 경제 구조를 살려 ‘한국형 전환금융 모델’을 어떻게 완성해 나갈지 주목된다.

채예빈 더나은미래 기자

전환금융(Transition Finance)

전환금융은 탄소 배출이 많은 산업이 저탄소 구조로 바뀌는 과정에 필요한 투자를 지원하는 금융을 말한다. 철강·시멘트·화학 등 탄소 다배출 산업이 주요 대상이다. 낡은 설비의 효율을 높이거나 수소·전기 기반 공정으로 전환하는 것, 석탄발전소를 조기 폐쇄하고 재생에너지로 전환하는 것, 탄소 감축 기술을 개발하는 것 등이 대표적인 지원 분야다.

태양광·풍력처럼 이미 친환경적인 사업에 투자하는 녹색금융(Green Finance)과 달리, 탄소 배출 산업에도 자금을 공급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탄소 배출 산업을 배제하기보다 배출을 줄이는 전환 과정에 필요한 설비 투자와 비용을 지원하는 금융이라는 개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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