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아이소리 페스티벌’ 현장
직무 체험부터 취업 상담까지…발달장애 청소년들이 만난 직업의 세계
“지금 손에 들고 있는 두꺼운 옷은 언제 입어야 할까요?” “추울 때요.”
“추운 계절은 가을과 겨울 중 어느 쪽일까요?” “겨울이요.”
지난 5월 30일 인천 영종도 파라다이스시티에서 열린 ‘아이소리 페스티벌’ 현장. 발달장애 청소년들이 굿윌스토어 직무 체험 부스에서 실제 매장 업무를 익히고 있었다. 발달장애인을 매장 운영 매니저로 고용하고 있는 굿윌스토어는 이날 기증 물품 접수부터 의류 분류, 진열, 판매까지 실제 매장에서 이뤄지는 업무 과정을 체험 프로그램으로 구성했다. 청소년들은 옷의 계절과 종류를 구분하고, 물품을 정리해 매대에 올려보며 매장 운영 과정을 단계별로 체험했다.
아이소리 페스티벌은 파라다이스복지재단이 주최하는 장애·비장애 아동을 위한 문화예술 체험 축제로, 올해로 16회를 맞았다.
재단은 그동안 문화예술 체험 중심으로 운영해온 페스티벌을 올해부터 발달장애 청소년들이 다양한 직무를 경험하며 진로를 탐색하는 장으로 확장했다. 방향 전환의 배경에는 발달장애 청소년과 가족들의 수요가 있었다. 기존 발달장애인 직업 체험이 제과·제빵이나 바리스타 직군에 집중되면서, 다른 분야에 관심이 있는 청소년들은 자신의 적성을 탐색할 기회가 상대적으로 부족하다는 문제의식에서다. 김민재 파라다이스복지재단 매니저는 “진로 탐색의 기회는 누구에게나 넓고 공평하게 열려 있어야 한다”며 “청소년들이 자신의 적성과 성격에 맞는 직무가 무엇인지 직접 경험해보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번 행사에는 발달장애 청소년 90명과 가족들이 참여했으며, 6개 기업이 직무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 실제 업무 현장을 옮겨놓은 축제
컨벤션센터 곳곳에 마련된 미팅룸에서 다양한 직무 체험이 진행됐다. AI 데이터 전문기업 에이아이웍스가 마련한 공간에서는 AI 데이터 라벨링 교육이 한창이었다.
“여러분, 인공지능이 뭔지 아나요?” “생성형 AI인데 학습을 해요.” 강사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AI는 데이터를 공부하면서 똑똑해져요. 이제 여러분이 인공지능이 공부할 교과서를 만들어줄 겁니다.”
학생들의 노트북 화면에는 뷔페 음식 사진이 띄워져 있었다. 학생들은 사진 속 접시 위 음식을 고기, 해산물, 채소, 과일 등으로 분류해 입력했다. AI 데이터 라벨링은 인공지능이 이미지를 학습할 수 있도록 사진 속 대상에 이름표를 붙이고 분류하는 작업이다. 이날 학생들은 음식물쓰레기 감축 솔루션에 활용되는 실제 데이터 라벨링 업무의 일부를 체험했다.

키뮤스튜디오 부스에서는 발달장애인 디자이너들의 작품을 감상한 뒤, 직접 그림을 그려보는 시간이 마련됐다. 학생들은 작품을 따라 그리거나 색칠하며 디자인 과정을 체험했고, 원하는 그림을 자유롭게 그리기도 했다.
한 학생의 펜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았다. 그는 일본어가 적힌 감자칩 봉지 도안을 보더니 순식간에 그림을 완성했고, 그 위에 ‘포카칩’이라는 글자를 써넣었다. 곁에서 지켜보던 봉사자의 피드백도 구체적이었다. “음식들이 공중에 떠 있는 것처럼 보이네. 뒤에 테이블을 하나 그려주면 더 자연스러울 것 같아.”
이 밖에도 학생들은 하트하트아트앤컬처 부스에서 악기를 연주해보고, 피치마켓 부스에서는 자신의 성격과 적성에 맞는 직업을 탐색했다. 파라다이스시티 봉사동아리 ‘가온길’이 운영한 체험 프로그램에서는 테이블 세팅과 케이크 꾸미기를 경험하며 서비스 직무를 접했다.
◇ 진로의 가능성을 발견하다
학생들이 직무 체험에 참여하는 동안 보호자들은 참여 기업이 운영하는 상담 부스를 찾았다. 굿윌스토어 상담 부스에서는 현실적인 질문이 오갔다. “집에서 먼 매장은 어떻게 출퇴근하나요?” “채용은 언제 가장 많이 하나요?” 공옥환 굿윌스토어 기획팀장은 “자격증이 필요한지 묻는 질문이 가장 많이 나온다”고 말했다.

중학교 2학년 자녀와 함께 행사에 참석했다는 정재림 씨는 이날 새벽 5시 경남 거제도에서 출발해 인천까지 올라왔다고 했다. 정 씨는 “서둘러 출발한 보람이 있었다”며 환하게 웃었다. 최근 자녀가 컴퓨터 관련 자격증을 취득했다는 그는 “AI 데이터 라벨링 상담을 받아보니 자격증 취득 경험도 진로와 연결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발달장애 청소년에게도 생각보다 다양한 진로가 열려 있다는 것을 느꼈다”고 덧붙였다.
중학교 2학년 아들을 둔 김소연 씨도 비슷한 고민을 안고 있었다. 김 씨는 “작년에 아이가 갑자기 애니메이션 작가가 되고 싶다며 관련 고등학교 진학 방법까지 직접 찾아왔다”며 “아이가 하고 싶은 일을 그렇게 분명하게 이야기한 건 처음이라 놀랐다”고 말했다. 그는 “상담을 받으며 그림 분야로 진로를 이어가기 위해 어떤 선택지가 있는지 알 수 있어 도움이 컸다”며 “내년에도 행사가 열린다면 주변 발달장애 자녀 부모들에게 꼭 추천하고 싶다”고 했다.
◇ “바리스타 말고도 꿈꿀 수 있는 일이 많았으면”
직무 체험이 끝난 뒤 열린 토크콘서트에서는 실제 취업과 사회생활에 필요한 역량에 대한 조언도 이어졌다. 임정택 히즈빈스 대표는 발달장애 청소년의 취업에 필요한 역량으로 직무 능력보다 직업 예절을 꼽았다. 그는 “늦잠을 자고 싶어도 출근해야 하고, 출근하지 못하는 상황이면 연락해야 한다”며 “실수를 했을 때도 퇴사를 생각하기보다 소통하며 해결하는 태도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영아 다다르다 대표도 “인사하기, 감사 표현하기, 사과하기 같은 기본적인 태도를 집에서부터 연습해 보면 도움이 된다”고 조언했다.
최윤정 파라다이스복지재단 이사장은 “올해는 아이들이 다양한 일의 세계를 직접 만나보고 마음속에 자신의 꿈을 그려볼 수 있는 장으로 마련했다”며 “앞으로도 친구들이 저마다의 속도와 빛깔로 당당하게 세상에 나아갈 수 있도록 함께하겠다”고 전했다.
◇ 두 개의 축제, 흐려진 장애의 경계
올해 아이소리 페스티벌은 처음으로 파라다이스문화재단이 주최하는 ‘아시안 팝 페스티벌’과 연계해 진행됐다. 아이소리 페스티벌이 열린 컨벤션센터 안에도 공연장이 마련돼 있었고, 건물을 나서 5분 남짓 걸어가자 아시안 팝 페스티벌이 열리는 잔디광장이 나타났다. 무대 앞에서는 관객들이 음악에 몸을 맡기고 있었다.
신지나 파라다이스복지재단 팀장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함께 축제를 즐길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었다”며 “가족들이 진로 탐색과 문화 경험을 함께 누릴 수 있도록 기획했다”고 설명했다.

올해 행사에서는 발달장애인과 가족들이 보다 편안하게 축제를 즐길 수 있도록 접근성 지원도 강화했다. 주최 측은 공간별 소음, 밀집도, 조명 자극 정도를 표시한 ‘감각지도’를 제작해 참가자들이 자신에게 맞는 공간을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주요 동선에는 이동과 관람을 돕는 ‘접근성 매니저’도 배치했다.
저녁이 되자 두 축제의 경계는 더욱 옅어졌다. 아이소리 페스티벌의 공식 일정이 끝난 오후 8시30분 무렵, 참가자 가족들은 김창완밴드 공연이 열리는 야외 무대로 발걸음을 옮겼다.
무대 앞에서는 관객들이 기차놀이를 하며 뛰어다녔고, 그 뒤편에서는 한 발달장애 청소년이 부모의 어깨에 기대 공연을 바라보고 있었다.
채예빈 더나은미래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