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크런치베이스와 휴먼X가 공동 발표한 ‘2025 AI 투자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 AI 관련 기업이 유치한 투자액은 2110억 달러(약 306조 원)로, 전년 대비 85% 급증했다. AI는 이제 투자의 대상을 넘어, 투자 현장 안으로 빠르게 들어오고 있다.
그런데 임팩트 투자는 조금 다른 질문을 마주한다. 일반 벤처 투자가 재무적 수익성을 중심에 놓는다면, 임팩트 투자는 사회적 가치와 재무적 지속가능성을 동시에 판단해야 한다. 창업자가 어떤 문제를 왜 풀려 하는지, 그 팀이 지역사회와 어떤 관계를 맺어왔는지, 수치로 표현되지 않는 정성적 맥락을 읽는 것이 심사의 핵심이다. AI를 단순한 자동화 도구나 효율화 수단으로만 바라보는 논의가 임팩트 투자 현장에서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렇다면 임팩트 투자에서 AI는 어떻게 쓰여야 할까. MYSC 투자기획팀 인턴으로 3개월을 보내며, 나는 그 질문의 답이 기술이 아니라 데이터와 맥락에 있다는 것을 현장에서 직접 확인했다. 이 글은 창업 실패를 경험한 사람이 투자자 시선을 처음으로 얹어보며 깨달은 것들, 그리고 그 과정에서 AI와 임팩트 투자의 관계를 다시 생각하게 된 기록이다.
◇ 창업자에서 투자자 시선으로
나는 한 번 투자를 받아본 적이 있는 사람이다. 1인 여행자 플랫폼 ‘모잉’을 창업해 시드 투자 유치와 법인 설립까지 경험했다. 그리고 1년도 채 되지 않아 법인을 해체했다. 팀원들과 비전이 갈렸고, ‘무엇을 팔 것인가(What)’에 매몰된 나머지 ‘왜 이 일을 하는가(Why)’를 잃어버린 탓이었다.
실패 이후에는 세대 간 교류 플랫폼 ‘연슐랭 가이드’로 아이디어를 발전시켜 다수의 수상과 함께 일본 오사카 연수로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나는 한 가지 사실을 반복해서 확인했다. 좋은 아이디어와 진정성 있는 미션만으로는 지속가능한 임팩트를 만들 수 없다는 것, 그리고 그 간극을 메우는 것이 바로 ‘투자와 전략’이라는 사실이었다. 일본 연수에서는 공공 지원 시스템과 민간 자본이 어떻게 연결될 때 사회문제 해결이 실제로 가능해지는지를 몸으로 배웠고, 그 경험이 임팩트 투자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MYSC의 첫 IR 미팅 자리에서 나는 내가 선 자리가 바뀌었음을 곧바로 실감했다. 창업자가 자신의 비전을 설명하고 비즈니스 모델을 숫자로 꺼내놓는 그 순간들이, 단순한 사업 지표가 아니라 그 수치 뒤에 숨겨진 창업자의 진짜 생각과 태도, 즉 정성적 맥락으로 읽히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창업자였을 때 나는 투자자가 “왜 지금 이 시장인가요?”라고 물으면 시장 규모나 성장률 같은 표준화된 수치를 증명해야 하는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반대편에 앉아보니 그 질문의 본질은 다른 데 있었다. 이 팀이 왜 이 시점에 이 문제를 해결하려 하는지, 그리고 이 시기를 주도적으로 돌파해 나갈 판단력을 갖추고 있는지를 확인하려는 물음이었다. 여러 미팅을 거치며 확인하게 된 것도 마찬가지였다. 창업자의 답변 속도, 숫자를 꺼낼 때의 망설임, 팀원을 언급하는 방식까지, 같은 IR 자료라도 그것이 만들어지기까지의 경로를 읽어야 임팩트의 실질이 보였다. 결국 심사역은 지표라는 표면 너머에 있는 정성적 실체를 읽어낼 수 있어야 한다.
◇ AI와 임팩트 투자심사
그렇다면 인간의 정성적 판단 영역으로 여겨지던 이 ‘맥락’을 AI는 어떻게 다룰 수 있을까. 이는 MYSC 김정태 대표가 벤처스퀘어 행사에서 강연한 ‘AI는 어떻게 일하고, 어떻게 판단하는가’에서 보다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강연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기술 자체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AI의 수준은 기술이 아니라, 어떤 목적을 갖고 어떤 데이터를 쌓으며 어떻게 관리하느냐가 결정한다는 명제였다. 일반적인 GPT나 Gemini로 투자심사를 수행하면 결국 다른 투자사들과 동일한 판단을 하게 된다. 유튜브나 에어비앤비처럼 초기에 가능성을 알아보기 어려운 팀을 똑같이 놓치게 된다는 뜻이다.
핵심은 IR 보고서 같은 정형 데이터만으로는 차별화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MYSC가 구성원 칼럼 90편, 창업자 미팅 녹취 전문, 현장 노트 같은 비정형 데이터를 AI 심사역 ‘메리(merry)’에 쌓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데이터 → 관계 → 맥락 → 궤적 → 판단으로 이어지는 프레임이다. 메리에 무엇을 넣느냐가 메리의 판단 수준을 결정하고, 그 판단이 MYSC만의 투자 관점을 형성한다.
강연을 들으며, 투자기획팀 인턴으로서 매일 수행하는 일의 무게를 다시금 실감했다. 내가 기록하는 IR 미팅 회의록, 녹취 요약본, 포트폴리오 사후관리 문서들이 결국 메리가 학습할 맥락의 원재료가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단순한 행정 업무처럼 보이는 일들이 사실은 조직의 판단력을 쌓는 과정이었다.
실제로 MYSC는 15년간 300개 이상의 기업에 투자하며 축적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인간 심사역과 AI 심사역의 판단 실험을 진행해왔다. 두 판단이 일치하지 않는 지점에서 처음에는 시스템 오류를 의심했다. 그러나 반복 분석 끝에 내린 결론은 달랐다. ‘AI는 판단의 주체가 아니라, 판단을 더 깊게 만드는 질문 장치에 가깝다.’ AI와 인간의 판단이 완전히 같다면 AI는 불필요하다. 오히려 서로 다른 판단이 나오는 지점에서 질문이 시작된다. 왜 인간은 이 팀을 높게 평가했는가, 왜 AI는 낮게 보았는가. 그 간극을 해석하는 과정이 심사의 밀도를 높인다.
이 논리는 임팩트 투자의 본질과 맞닿아 있다. 임팩트 투자에서 가장 까다로운 판단은 대체로 숫자가 모호한 영역, 즉 창업자의 동기나 팀의 관계망 같은 정성적 맥락 안에서 이루어진다. 인간과 AI의 판단이 엇갈리는 지점을 질문으로 삼아 그 간극을 해석해야 한다는 명제가 임팩트 투자에서 특히 무게를 갖는 이유다.
다만 이 지점에서 한 가지 본질적인 구분이 필요하다. AI는 구조화된 정보를 처리하고 패턴을 찾는 데 탁월하다. 그러나 IR 미팅에서 창업자의 대답이 미세하게 흔들리는 순간, 이 팀이 어떤 긴장 속에서 사업을 붙들고 있는지를 감지하는 일은 여전히 사람의 몫이다. 메리가 지향하는 것은 심사역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심사역의 사각지대를 데이터로 보완하는 파트너가 되는 것이다. AI가 좋은 판단을 내리려면, 좋은 맥락을 지속적으로 쌓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 임팩트 생태계에서 AI 시대의 심사역에게 필요한 것
투자자의 시선을 직접 경험한 3개월 동안 나는 두 가지 깨달음을 얻었다.
먼저, 임팩트 투자에서 좋은 판단은 숫자가 아니라 맥락을 읽는 능력에서 시작된다. 창업자의 언어 너머에 있는 의사결정의 근거, 팀의 긴장, 비전과 실행 사이의 솔직한 거리를 감지하는 것이 심사의 핵심이다.
다음으로, AI는 그 판단을 대신하지 않는다. AI가 실질적인 투자 파트너가 되려면, 조직이 오랜 시간 쌓아온 비정형 맥락, 즉 현장의 감각과 창업자와의 대화, 실패한 투자에서 얻은 교훈이 데이터로 내재화되어야 한다.
메리가 지향하는 방향은 결국 MYSC가 15년간 임팩트 생태계에서 축적해온 관점과 맥락을 AI에 담아, 조직의 집단 지성이 시간이 갈수록 더 깊어지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따라서 임팩트 투자 생태계에서 AI 도입을 논의할 때, 질문의 방향이 중요하다. ‘어떤 도구를 쓸 것인가’가 아니라 ‘어떤 맥락을 쌓을 것인가’로. 그리고 그 맥락을 쌓는 주체는 결국, 현장에서 창업자와 마주 앉는 사람이다. 창업자였던 내가 투자자 시선을 경험하며 배운 가장 중요한 것은, 좋은 투자 판단과 좋은 AI는 오랜 시간 현장을 쌓아온 사람의 맥락이 있을 때 비로소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장다윤 MYSC 투자기획팀 연구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