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2년 5월, 더나은미래에 막내 기자로 입사한 저는 취재 현장마다 신문을 들고 다니며 “공익 분야 전문 기자입니다”라고 스스로를 소개했습니다. 당시만 해도 ‘공익 저널리즘’이라는 용어조차 낯설었던 때였습니다. 개척자로서 사명감 하나로, 동료들과 손품 발품 팔며 신문을 만들었습니다.
100대 기업 CEO 대상 CSR 설문조사, 30대 기업 사회공헌 기획, 100대 공익법인 이사회 대해부…독창적인 기획을 위해 직접 뛰고, 때로는 공익 프로젝트를 직접 운영하기도 했습니다. “미디어는 5년만 버티면 안 망한다”는 말을 반신반의했는데, 올해 더나은미래가 창간 15주년을 맞았습니다.
2018년 5월, 편집장 직무대행으로 8주년 특집을 준비했던 시절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무거운 책임감 속에서도 ‘더나은미래는 누구의 것도 아닌, 우리 사회가 함께 키운 공공재다’라는 믿음 하나로 자리를 지켰습니다.
지금은 편집국장이라는 직책을 맡아, 다시 질문합니다. 우리는 어떤 미디어가 되어야 하는가. 사실을 보도하는 것으로 충분한가. 좋은 사례를 소개하는 것만으로 만족해야 하는가. 아니면 더 깊고 본질적인 역할을 고민해야 하는가. 지난 1년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시간이었습니다.
‘선의’는 출발점입니다. 그러나 복잡한 사회문제를 해결하기엔 그 자체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선의가 실질적 행동으로 이어지고, 긍정적 변화를 만들어 낼 때 비로소 ‘선한 영향력’이 됩니다. 하지만 구조가 잘못돼 있으면 선의가 상처를 입기 쉽습니다. 좋은 마음으로 시작한 기부도 흐름이 왜곡되면 무력감과 회의로 되돌아옵니다.
기부와 선의의 행동이 진정한 변화를 만들려면, 어디에 자원을 배분할지, 누구에게 먼저 자리를 내줄지 고민해야 합니다. 이제는 선의에만 기대는 것이 아니라, 정당하고 효과적인 개입을 설계하는 ‘올바른 영향력’을 고민할 때입니다.
최근 저는 ‘환대’라는 단어에 주목했습니다. 환대란 ‘타자에게 자리를 내어주는 일’이라고 합니다. 한 사람을 위해 자리를 마련하려면, 누군가는 물러서야 합니다. 누구에게 먼저 자리를 내어줄 것인지도 고민해야 합니다. 누군가의 양보가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전제가 있습니다. 그 자리에 앉은 이는 불편함이 아닌, 따뜻함을 느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공공성과 재분배, 그리고 공익 미디어의 역할을 여기서 발견했습니다.
올해 더나은미래가 가장 먼저 주목한 환대의 대상은 ‘미등록 이주아동’이었습니다. 국내 아동 중 가장 기본권 침해가 심각하지만, 정책은 물론 민간 기부의 손길도 닿기 어려운 대상입니다. 아름다운재단과 함께 미등록 이주아동 이슈를 탐사보도하며, 10년 넘게 반복된 그들의 현실과 대안을 깊게 다루었습니다.
현장 전문가들의 목소리를 듣다보니, 현장의 필요를 명료하게 발견하게 됐고, 새로운 사회공헌 프로그램까지 기획하게 됐습니다. 저널리즘이 직접 변화를 만드는 ‘저널 액티비즘’의 첫 번째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더나은미래는 앞으로도 ‘환대’라는 가치를 더욱 값지게 만들어가겠습니다. 도움이 필요한 당사자는 물론, 기부자와 공익 생태계 종사자, 그리고 선의를 품은 이들이 상처받지 않도록 돕겠습니다. 성과를 과시하거나 문제를 드러내는 데 그치지 않겠습니다. 자원이 진정으로 필요한 곳에 닿을 수 있도록, 변화의 흐름을 이끄는 미디어로서 책임을 다하겠습니다.
‘변화가 시작되는 곳(Where Change Begins)’이라는 우리의 새로운 슬로건이 현실이 될 수 있도록, 공익 생태계 여러분의 지속적인 관심과 응원을 부탁드립니다.
지금까지 늘 함께해 주신 독자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더나은미래 구성원들과 함께 더욱 정직하고 단단한 시선으로 사회를 바라보겠습니다.
김경하 더나은미래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