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OB·테마섹·제라야·NDB, 임팩트 관리 통해 ‘투자자→동반자’로 진화
숫자보다 현장의 변화, 이해관계자 간 신뢰를 새 기준으로 세우다
싱가포르의 UOB벤처매니지먼트(UOB Venture Management·이하 UOBVM) 임직원들은 투자처뿐만 아니라 대출을 받은 사람들까지 ‘직접’ 찾아간다. 포용금융(금융 접근성이 낮은 사람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활동)을 위한 투자를 진행할 때, 현장에서 계획과 실행이 일치하는지를 확인하고 대출자가 어떤 변화를 경험하는지를 직접 듣기 위해서다.
예컨대 인도네시아의 핀테크 기업 ‘아마르타(Amartha)’에 투자한 뒤에는 본사뿐 아니라 지사 곳곳을 돌며 여성 사업가들을 만났다. 대출자의 절반 이상이 초등학교 학력 이하의 여성임을 확인한 UOBVM은 현장 관찰을 바탕으로 ‘금융 문해력(Financial Literacy)’ 교육을 투자 서약서에 새롭게 추가했다. 단순한 자금 지원이 아니라, 현장의 맥락을 이해하고 지속가능한 변화를 설계하기 위해서다.
1992년 설립된 UOBVM은 UOB(United Overseas Bank) 그룹의 사모투자 및 벤처캐피털 운용사로, 약 20억 싱가포르 달러(한화 약 2조2000억원) 규모의 자산을 관리하고 있다. 이들의 임팩트 관리(Impact Management)는 ▲사전 검토 ▲임팩트 실사 ▲서약서 작성 ▲사후 모니터링의 네 단계로 구성된다. 실사 이후에는 IRIS에서 발췌한 표준 지표와 기업 맞춤형(customized) 지표를 함께 활용해 핵심 지표(metrics)를 설정한다. 현장 점검 결과는 투자 계약 시 작성하는 ‘임팩트 서약서(Impact Commitment Letter)’에 반영되며, 인력 교육이나 피투자기업 역량 강화를 주요 항목으로 포함한다. 투자 이후(Post-investment) 단계에서는 정량적·정성적 데이터를 꾸준히 추적하며, 단순한 평가를 넘어 “투자자가 기업에 어떤 가치를 더할 수 있는가”를 함께 고민한다.
UOBVM은 아마르타의 대출자 300만 명을 대상으로 마이크로보험(Micro-Insurance)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현지 보험 전문가와 데이터 기관을 연결해 새로운 상품을 기획했다. 클라리사 로(Clarissa Loh) UOBVM 전무이사는 “임팩트 관리는 단순한 데이터 수집이 아니라, 기업과 투자자 간의 공통 언어를 만드는 과정”이라며 “투자자는 ‘내 돈이 어디에 쓰였는가’, ‘누가 어떤 변화를 경험했는가’를 투명하게 알고 싶어 한다. 임팩트 관리는 그에 대한 답변의 언어이자 책임성의 도구”라고 말했다.
◇ 아시아 각국, ‘임팩트 관리’로 투자 철학을 세우다
지난달 10일 홍콩에서 열린 ‘AVPN 글로벌 콘퍼런스 2025’ 둘째 날, 아시아 최초의 대규모 ‘임팩트 인베스팅 데이(Impact Investing Day)’가 열렸다. 임팩트 측정부터 관리까지 전 과정을 다루는 세션들이 이어졌으며, ‘임팩트 투자를 위한 임팩트 측정 및 관리의 기초(Foundations of Impact Measurement and Management for Impact Investing)’ 세션에서는 각국 투자자들이 실제 경험을 공유했다.
싱가포르의 테마섹 인터내셔널(Temasek International)은 임팩트를 ‘논리–실무–측정’의 세 단계로 관리한다. ‘논리 단계’에서는 창업자와 경영진의 의도성(Intentionality)을 평가한다. ‘왜 이 문제를 풀려 하는가’, ‘수혜자에게 구체적으로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가’에 집중한다. ‘실무 단계’에서는 투명성과 거버넌스를 중시해 핵심 임팩트 지표(Key Impact Indicators)를 설정하고, 투자자와 피투자기업이 동일한 데이터와 실행 현황을 공유하도록 한다.
마지막 ‘측정 단계’에서는 사회·환경적 성과뿐 아니라 투자금 회수 이후에도 임팩트가 지속될 수 있는 구조를 설계한다. 엘리자 푸(Eliza Foo) 디렉터는 “우리는 단순한 투자자가 아니라, 지속가능한 생태계를 만드는 조성자(Ecosystem Contributor)가 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 “임팩트 관리, 투자자 요청 아닌 공통 언어”
말레이시아의 제라야 캐피털(Xeraya Capital)은 임팩트 관리의 핵심 원칙으로 ‘추가성(Additionality)’과 ‘중요성(Materiality)’을 꼽는다. 헬스케어·기후기술 분야의 초기~중기 기업에 투자하는 만큼 단기 지표만으로 성과를 평가하기 어렵다. 제라야는 투자로 인해 만들어진 결과가 얼마나 ‘추가적’이며, 그 영향이 사회적으로 얼마나 ‘의미 있는가’를 중심으로 포트폴리오를 관리한다. 투자 종료 이후(Post-exit)에도 현지 연구팀과 협력해 기술이 실제로 사람들의 삶을 개선하고 있는지를 지속적으로 추적한다.
노라즐리 모하맛 노(Norazli Mohamad Nor) 제라야 캐피털 벤처파트너는 “처음 임팩트 관리를 도입한 이유는 솔직히 투자자 요청(Investor Mandate) 때문이었다”며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이것이 모두를 위한 ‘공통 언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했다. 이어 “임팩트 관리는 우리가 어디에 서 있는지를 알려주고, 무엇을 더 잘할 수 있을지를 배우게 하는 전략적 의사결정 기준”이라고 말했다.
중국 상하이에 본사를 둔 신개발은행(New Development Bank·이하 NDB)은 다자개발은행(MDB)으로서 모든 투자를 ‘개발효과(Development Impact)’ 중심으로 관리한다. 전력·교통·보건 등 인프라 투자 시 수익성뿐 아니라 사회와 환경에 미치는 긍정·부정적 영향 모두를 평가해 ‘순(純) 임팩트(Net Impact)’를 계산한다. 각 프로젝트에는 환경·사회 관리시스템(ESMS)을 의무화하고, 실사 결과에 따라 시정조치계획(Action Plan)을 마련한다.
로만 노보질로프(Roman Novozhilov) NDB ESG 총괄은 “우리가 측정하는 임팩트는 단순히 수혜자에게 닿는 효과에 그치지 않는다”며 “기업의 행동 변화(corporate behavior change) 자체가 지속 가능한 임팩트의 일부”라고 말했다. 그는 “임팩트 관리는 보고서를 위한 형식이 아니라 목적에 맞는 실용적 접근(fit-for-purpose practicality)”이라며 “진정한 임팩트는 수치보다 현장의 변화에서 출발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세션 좌장을 맡은 일본 임팩트프론티어스(Impact Frontiers)의 나오 스도(Nao Sudo)는 “임팩트 관리는 긍정적 영향을 극대화하고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한 체계적 접근법”이라며 “이는 단순한 체크리스트가 아니라 투자자와 피투자자가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공유 언어’”라고 말했다. 그는 “투자자의 의도(intentionality)와 피투자자의 실행(execution)이 일치할 때 비로소 임팩트의 의미가 완성된다”고 덧붙였다.
홍콩=김규리 더나은미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