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보 노디스크·맥쿼리·마스터카드, 사회적 가치 내재화 전략 공유
존슨앤드존슨·씨티재단, 신뢰 기반 협력으로 임팩트 확장
기업이 전통적인 기부 방식을 넘어 지속 가능한 사회적 임팩트를 창출할 수 있을까. 지난달 11일 홍콩에서 열린 ‘AVPN 글로벌 콘퍼런스 2025’ 마지막 날 세션에서는 이에 대한 해답이 제시됐다.
연사들은 한목소리로 말했다. “협력과 신뢰가 지속 가능한 임팩트의 핵심이다.” 이날 진행된 두 세션 ‘혁신적인 기업 파트너십의 힘(The Power of Innovative Corporate Partnerships: Driving Health Impact)’과 ‘목적에서 실천으로(From Purpose to Practice: Corporates as Catalysts for Good)’에서는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어떻게 조직의 제도와 생태계 안에 내재화할 수 있을지를 놓고 논의가 이어졌다.

◇ 사회적 책임, 조직의 중심으로…‘가치를 설계하는 기업들’
덴마크의 노보 노디스크 재단(Novo Nordisk Foundation)은 공공성을 기업의 지배구조 속에 심은 대표 사례로 꼽힌다. 제약회사 노보 노디스크의 최대 주주이자 지배주주로서, 재단은 ‘엔터프라이즈 재단(enterprise foundation)’ 모델로 운영한다. 기업의 배당금을 사회에 재투자해 경제활동과 공익활동이 하나의 가치 체계 안에서 작동하도록 설계한 구조다.
다니엘 케머(Danielle Kemmer) 시니어 네트워크 리드는 “문제 해결 과정에서 특정 파트너에 머무르지 않고, 커뮤니티 리더, 기업, 학계, 정부 등 다양한 주체를 연결해 함께 문제를 정의하고 해법을 설계한다”며 “이런 방식으로 만들어진 해법이야말로 현지에 뿌리내릴 수 있는 지속 가능한 변화”라고 말했다. 그는 “지금은 어떤 조직도 혼자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시대”라며 “협력의 출발점은 자신이 생태계 안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를 인식하는 데 있다”고 덧붙였다.
호주의 맥쿼리 그룹 재단(Macquarie Group Foundation)은 ‘사회와의 연결’을 기업의 핵심 가치로 명시했다. 35년 동안 기부와 직원 참여를 중심으로 활동해 온 재단은 2018년 그룹의 ‘목적 선언문’을 작성하는 과정에서 기업 의사결정의 테이블에 직접 참여했다. 이 과정에서 모 기업이 보유한 자금을 임팩트 투자 목적으로 운용할 수 있도록 협의를 이끌어내며, 2000만 달러 규모의 임팩트 투자 예산을 확보했다.

리사 조지(Lisa George) 맥쿼리 그룹 재단 글로벌 총괄은 “임팩트는 일부 전문가의 일이 아니라, 모든 구성원이 공통의 목표를 공유하며 협력해야 지속된다”며 “직원들이 각 사업부 안에서 사회적 가치를 실현할 수 있도록 ‘공유가치(Shared Value)’ 아이디어를 발굴·지원하는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라고 말했다. 이어 “구성원들의 선의가 조직의 문화와 시스템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들도록 설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글로벌 금융 인프라 기업 마스터카드(Mastercard)는 사회공헌을 기업 전략에 완전히 내재화했다. 수바시니 찬드란(Subhashini Chandran) 마스터카드 인클루시브 그로스 센터 APEMEA(아시아·태평양·중동·아프리카) 사회임팩트 수석부사장은 “마스터카드는 창립 초기부터 ‘좋은 일을 하며 성장하는 기업(doing well by doing good)’이라는 철학을 실천해왔다”며 “인클루시브 그로스 센터는 기업의 본업과 분리된 사회공헌 부서가 아니라, 마스터카드 내부에 완전히 통합돼 지난 11년간 포용적 성장을 위한 ‘양심(conscience)’의 역할을 해왔다”고 말했다.
그는 “비즈니스 전략과 사회적 목적이 교차하는 영역에서 실행한다”며 “아시아개발은행(ADB)과 협력해 4년간 10억 달러 규모의 자금을 중소기업에 연결하는 ‘디리스킹(De-risking)’ 모델을 설계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전 세계 파트너와 정부, 기업을 잇는 ‘네트워크의 네트워크’로서 포용적 성장을 촉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 협력과 신뢰로 확장되는 사회적 가치의 생태계
기업 사회공헌의 무게 중심이 ‘혼자’에서 ‘함께’로 옮겨가고 있다. 그렇다면 협력이 실제로 작동하기 위해 필요한 조건은 무엇일까. 존슨앤드존슨은 그 해답을 ‘신뢰’에서 찾는다. 이 회사는 자금을 주는 대신, 파트너가 스스로 성장할 수 있는 생태계를 함께 만든다. 대표 사례가 ‘너스 해크 포 헬스(Nurse Hack 4 Health)’다. 간호사들이 현장의 문제를 직접 정의하고, 해결책을 제안하면 이를 실제 프로젝트로 발전시킬 수 있도록 지원한다.
웬이 탄(Wen Yi Tan) 존슨앤드존슨 아시아태평양 사회임팩트·파트너십 디렉터는 “진정한 협력은 솔직한 대화에서 시작된다”며 “우리는 가르치는 쪽이 아니라, 함께 배우는 동반자가 되려 한다”고 말했다. 그는 “파트너를 다른 기관이나 펀더와 연결해 새로운 기회를 만드는 것이 신뢰의 구체적 형태”라고 설명했다. 이어 “어떤 곳은 적극적으로 협력을 요청하지만, 어떤 곳은 부담을 느끼기도 한다”며 “이런 차이를 존중하고 유연하게 대응하는 것이 진짜 협력”이라고 덧붙였다.
이러한 협력의 방식은 의료 교육 비영리단체 프로젝트 에코(Project ECHO)와의 파트너십에서도 드러난다. 프로젝트 에코는 원격 협업 플랫폼을 활용해 농촌과 취약 지역의 1차 의료 종사자를 전문가 네트워크와 연결한다. 현장 의료진이 실시간으로 학습하고 토론하는 ‘가상 학습 공동체(Virtual Community of Practice)’를 통해 지식의 선순환을 만드는 구조다. 현재 70개국에서 70개 이상의 질병 영역을 다루며, 1500개 이상 기관이 참여하고 있다.

신시아 매키니(Cynthia Mckinney) 프로젝트 에코 전략 파트너십 디렉터는 “지식을 중앙에서 주입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과 함께 만드는 것이 핵심”이라며 “팬데믹 시기에는 이런 네트워크가 위기 대응의 핵심 통로가 됐다”고 말했다. 당시 존슨앤드존슨 재단과 인도 공공보건국이 함께 2200명의 보건 인력을 대상으로 코로나19 대응 교육을 진행했고, 이후 15개 주 5000명 규모로 확장됐다.
20년 전부터 기업과 비영리의 협력을 이끌어온 그는 “초기 파트너십은 대부분 거래적이었지만, 지금의 기업들은 ‘시스템 변화’를 원한다”고 말했다. 단순한 기부를 넘어 지속 가능한 구조적 변화를 남기려는 시도로 협력이 진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가끔은 가치 불일치로 협력을 중단한 적도 있다”며 “목표가 달라서가 아니라 ‘가치’가 다를 때 협력은 지속될 수 없으며, 결국 모든 네트워크는 ‘사람 중심’의 신뢰로 작동한다”고 했다.
이런 흐름은 씨티재단(Citi Foundation)에서도 확인된다. 브랜디 맥헤일(Brandee McHale) 씨티그룹 커뮤니티투자·개발 부문 총괄 겸 씨티재단 대표는 “지금은 경제 불확실성과 기술 격변, ‘목적의 정치화’가 겹친 시대”라며 “기업이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를 다시 묻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단순한 기부가 아니라, 고객·직원·지역사회와 함께 설계해야 지속된다”며 “규제와 인센티브, 고객과의 협업이 목적과 이익의 접점을 만들어낸다”고 말했다. 이어 “결국 이런 협력을 설계하고 연결하는 내부의 ‘번역자’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올해 콘퍼런스에는 50개국에서 1550명 이상의 대표단이 참석했으며, 300여 명의 연사가 110개 세션에서 발표를 진행했다. ‘AVPN 글로벌 콘퍼런스 2026’은 내년 8월 25일부터 27일까지 인도 뉴델리 바라트 만다팜(Bharat Mandapam)에서 열린다.
홍콩=김규리 더나은미래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