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카스텐 슈커(Carsten Schicker) 세계보건정상회의 대표
“이제 ‘기후 위기’가 곧 ‘건강 위기’라는 사실은 명확하다. 세계보건정상회의는 정책을 직접 만들거나 실행하지는 않지만, 적절한 사람들을 연결해 더 나은 해법을 찾는 역할을 한다. 지금처럼 불안한 국제 정세에서는 이런 역할이 더 중요하다.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서로 눈높이를 맞추고 대화할 수 있는 ‘공정한 플랫폼’이 필요하다.”
카스텐 슈커(Carsten Schicker) 세계보건정상회의(World Health Summit·WHS) 대표는 지난달 11일 홍콩에서 열린 ‘AVPN 글로벌 콘퍼런스 2025’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복잡해진 국제 질서 속에서도 여전히 협력의 공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세계보건정상회의는 국제 보건 분야를 대표하는 글로벌 플랫폼이다. 정책, 거버넌스, 시민사회, 학계, 민간 부문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한자리에 모여 해법을 논의한다. WHO, 유럽연합(EU), 세계은행, 각국 보건부와 연구 기관이 참여하며,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논의를 통해 글로벌 보건 의제를 형성한다.
2009년 출범한 WHS는 매년 10월 독일 베를린에서 개최된다. 약 3000명이 현장에, 2만여 명이 온라인으로 참여하는데 기후 변화와 건강, 팬데믹 대응, 백신 접근성, 보건 재정 등 주요 의제가 다뤄진다. 올해 회의는 ‘분열하는 세상에서 건강에 대한 책임(Responsibility for Health in a Fragmenting World)’을 주제로 10월 12일부터 14일까지 베를린에서 열린다.
세계보건정상회의에 2022년 취임한 슈커 대표는 글로벌 헬스 분야 입문 2년 반의 신임 리더다. 민간 부문에서 20년 가까이 전략과 재무를 담당한 경험을 토대로, WHS의 체질 전환을 주도하고 있다.
그는 바우어 미디어 그룹(Bauer Media Group)에서 최고전략책임자(CSO)로 일하며, 140년 된 가족 소유 기업의 구조 혁신을 주도했다. 11개국에서 1만5000명 이상이 일하는 이 그룹을 전통 출판 중심에서 복합 미디어 기업으로 전환시켰다. 이전에는 글로벌 미디어·교육 그룹 베텔스만(Bertelsmann)에서 10년간 주요 전략 직책을 맡았고, 커리어 초반에는 매켄지앤드컴퍼니(McKinsey & Company)에서 컨설턴트로 일했다.
법학과 저널리즘을 전공한 그는 “민간 기업에서의 경험은 의미 있었지만, 언젠가 더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며 ”지금의 일을 통해 그 목적을 찾았다”고 말했다.
<더나은미래>는 지난달 10일 AVPN 현장에서 슈커 대표를 만나, 기후와 건강의 교차점, 그리고 글로벌 보건 거버넌스의 미래를 물었다.
―세계보건정상회의는 기후와 건강의 연관성을 일찍이 강조해 왔다. 그간의 논의가 실제 변화로 이어졌나.
“지난 10년간 세계보건정상회의는 기후와 건강의 연결고리를 주요 의제로 다뤄왔다. 과거에는 주변적 이슈로 여겨졌지만, 이제는 국제 보건 정책의 핵심 과제가 됐다. 우리는 이 전환 과정에 일정 부분 기여했다고 본다. 2023년 ‘기후오버슈트위원회(Climate Overshoot Commission)’가 명확한 권고와 근거를 담은 정책 제안을 발표했다. 물론 아직 충분하진 않지만, 변화의 신호는 보인다.”
―구체적인 변화를 꼽는다면.
“2023년 두바이에서 열린 COP28에서는 사상 처음으로 ‘보건의 날(Health Day)’이 지정됐다. 120여 개국이 서명한 ‘기후와 건강 선언’이 채택된 것도 상징적이다. 여러 나라가 이미 ‘기후·건강 적응계획’을 마련했다는 점도 고무적이다. 이제 필요한 것은 행동과 정책이다. 세계보건정상회의는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포용적 대화의 장’을 통해 논의를 촉진하고 있다. 전 세계 전문가뿐 아니라 현장 경험을 가진 인사들이 동등한 위치에서 의견을 나누며 현실적 해법을 찾는다. 이것이 우리의 가장 큰 역할이다.”
―기후·보건 협력에는 정책 분절, 자금 사일로, 지정학 갈등 등 다양한 장벽이 있다. 가장 시급한 과제는 무엇인가.
“가장 큰 문제는 정책과 자금의 분절화다. 각국 정부를 보면 보건부·환경부·재무부가 제각각 정책을 세우고 협력보다는 경쟁한다. 예를 들어 2022년 전 세계 기후금융 1조3000억달러 중 90% 이상이 온실가스 감축(mitigation)에 쓰였고, 기후 적응(adaptation)에는 5% 정도만 배정됐다. 감축이 불필요하다는 뜻은 아니지만, 이미 현실화한 위기에 ‘적응’하지 못하면 대가는 훨씬 커질 것이다. 기후금융이 성장한 배경에는 ‘표준화된 측정 단위’, 즉 CO₂ 톤이라는 공통 화폐(common currency)가 있었다. 그러나 기후 적응, 특히 건강 적응에는 이런 표준화된 지표가 아직 없다.”
―해결책은 무엇인가.
“전 세계 보건 커뮤니티는 기후 적응의 성과를 수치화하고, 투자 가치로 설명할 수 있는 새로운 지표를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투자자와 금융권이 생산성 향상, 사망률 감소 등 실질적 효과를 이해할 수 있다. 최근 기후 적응 분야의 자금 투입이 늘고 있지만, 국제개발 재원 축소로 다시 줄 가능성도 있다. 각국 정부는 지금이 투자 우선순위를 재정립할 시점이다. 오늘 기후·건강 적응에 쓰지 않은 1달러는 미래에 몇 배의 비용으로 돌아온다. 위기는 이미 현재형이다. 더는 미룰 수 없다.”
―앞으로 10년을 내다볼 때, 기후와 건강의 교차점에서 가장 시급한 과제는 무엇인가.
“첫째는 ‘공통 화폐(Common Currency)’를 만드는 것이다. 재무장관이나 임팩트 투자자가 기후·건강 투자의 영향을 측정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자금이 유입된다. 둘째는 민간 부문 참여 확대다. 기후 적응이 지역사회의 건강에 실질적 영향을 미친 사례가 세계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이런 파일럿 프로젝트를 확장하고 제도화해야 한다. 나는 이를 ‘이중편익(double dividend)’ 모델이라 부른다. 기후 대응과 건강 개선을 동시에 달성하는 방식이다. 셋째는 자금 조달이다. 기후 적응 분야는 여전히 재원 부족에 시달린다. 개발재원 삭감이 이어질수록 격차는 커질 것이다. 각국은 재정 전략을 재구성하고, 개발은행·민간·자선 자본이 결합하는 ‘스마트 금융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복잡한 국제 질서 속에서 WHS는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나.
“신뢰는 세 가지 기반 위에 세워진다. 공유된 기준과 규범, 확실한 근거, 사람 간의 교류다. 세계보건정상회의는 이 세 가지를 모두 갖춘 드문 플랫폼이다. 우리는 과학에 뿌리를 두고 있고, 전 세계 30여 개 대학과 공중보건대학이 참여하는 ‘학술연합(Academic Alliance)’이 강력한 과학적 기반을 제공한다. 그러나 과학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서로 다른 목소리가 한자리에 모여 직접 논의할 수 있는 ‘대화의 장’이 필요하다. 다극화된 세계에서 기존의 국제기구는 예전만큼 효과적이지 않다. 그렇기에 사람들을 다시 모으고 신뢰를 회복할 새로운 방식이 필요하다. 세계보건정상회의는 여전히 그런 ‘신뢰의 공간’으로 남아 있다.”
―앞으로의 전략은 무엇인가.
“내 목표는 건강 회복력(Health Resilience)과 기후·건강 회복력을 투자 가능한 자산군(Investable Asset Class)으로 만드는 것이다. 글로벌 헬스 커뮤니티는 민간 부문으로부터 배워야 한다. 자금 조달 방식, 투자 수익 측정, 임팩트 계산법 등이다. 이런 접근을 도입해 파일럿 프로젝트의 성과를 수치로 입증하고, 이를 바탕으로 개발은행·국가 예산·민간·자선 자본 등에서 자금 유입을 늘려야 한다. 무엇보다 각 이해관계자가 자기 울타리를 넘어 협력(co-create)해야 한다. 이것이 앞으로 우리가 집중해야 할 과제다.”
―카스텐 대표가 생각하는 ‘더 나은 미래’는 어떤 모습인가.
“나는 일곱 살 아들의 아버지다. 그가 살아갈 미래를 상상할 때 마음이 편안할 수 있는 세상이 ‘더 나은 미래’라고 생각한다. 우리 세대는 다음 세대에게 지금보다 나은 지구를 물려줘야 할 의무가 있다. 물론 현실은 쉽지 않지만, 희망을 잃지 않아야 한다. 인류는 수천 년 동안 변화와 적응으로 생존해 왔다. 지금이야말로 다시 행동할 때다. 아이들을 위한 ‘더 나은 미래’를 만들려면 지금 바로 움직여야 한다. 올바른 시점에 올바른 사람들을 연결해 실질적 해법을 만들어내는 일, 그것이 앞으로 내가 해야 할 일이다.”
홍콩=김규리 더나은미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