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년 8월부터 1년 동안 교내 투자은행 학회에서 학회장으로 활동하며 국내 상장사 간 인수합병(M&A) 프로젝트를 여러 차례 다뤘다. 분석 대상 기업은 모두 사업보고서와 공시를 통해 방대한 데이터를 공개하고 있었고, 비교기업 분석부터 산업 구조 진단, 인수 주체 선정, 전략적 시너지 도출, 밸류에이션 모델링까지 일련의 과정을 체계적으로 수행할 수 있었다.
학부생 수준에서 재무적 투자자(FI·Financial Investor) 기반 거래인 ‘인수금융’을 깊이 다루기는 어려웠기 때문에, 대부분의 프로젝트는 결국 전략적 인수자(SI·Strategic Investor)를 중심으로 거래 구조를 설계하고, 양사의 전략적 시너지가 어떤 성과를 낼 수 있는지를 종합적으로 분석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시장 확대, 공급망 통합, 기술·R&D 시너지, 고객 기반 확장 등을 통해 인수의 타당성을 정량적 가치로 산출하는 작업이 핵심이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런 질문이 생겼다. “전략적 시너지를 정량화해 내는 이 방식이, 정보 공개가 많지 않은 스타트업에서도 가능할까?”이 의문이 나를 임팩트 생태계의 M&A로 이끌었다.
상장사에서는 정보가 제도적으로 보장되지만, 임팩트 조직은 전혀 다른 기반 위에 서 있다. 미션 중심적이고, 성장 궤적이 단선적이지 않으며, 정량화되지 않은 무형자산이 핵심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상장사 협상에서 익혔던 M&A 논리가 이곳에서는 어떻게 작동할 수 있을까.
지난 11일 열린 ‘플래닛 써밋’에서 그 질문에 대한 중요한 단서를 얻었다. 법무법인 미션의 김성훈 대표는 주식회사를 “고도의 신뢰 시스템”이라고 설명했다. 상장사 분석에 익숙한 내게 이 말은 익숙하면서도 낯설게 다가왔다. M&A는 결국 ‘누군가에게 회사를 파는 순간’이고, 그때 필요한 것은 숫자 그 자체가 아니라 숫자를 가능하게 만드는 신뢰라는 의미였다. 상장사는 공시 제도를 통해 이 신뢰를 제도적으로 보장하지만, 스타트업과 임팩트 조직은 신뢰를 아예 처음부터 설계해야 하는 출발점에 선다.
문제는 많은 스타트업들이 그 신뢰의 기반이 되는 시스템(데이터룸, 회계·법무 체계, 컴플라이언스, cap table 관리 등)을 갖추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미션’이나 ‘철학’이 아무리 훌륭해도 자본의 언어로 번역되기 어렵다. 실제로 FI는 미래가치 기반의 가치에 대해 보수적이기 때문에, 임팩트 생태계의 M&A는 현실적으로 SI 중심의 구조에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전략적 인수자의 관점에서 임팩트는 어떻게 가치로 재구성될 수 있을까. 이 질문은 강연 속 다양한 사례를 통해 더 큰 맥락으로 이어졌다.
가장 인상 깊었던 사례는 고재열 HGI 이사가 소개한 북미 웹소설 플랫폼 ‘래디쉬 미디어(Radish Media)’의 인수 건이었다. 래디쉬는 창작자 생태계를 구축하며 의미 있는 임팩트를 만들어낸 기업이었다. 그러나 인수합병 이후 상황은 달랐다. 재무적으로는 IRR 10배라는 압도적 성공을 거뒀지만, 미션은 사실상 단절됐다. 인수 주체에게 그 미션을 유지해야 할 유인도, 이를 보장할 구조적 장치도 없었기 때문이다. 이 사례는 임팩트가 ‘전략적 시너지’와 ‘정량화된 가치’로 구조화되지 않으면, M&A 이후 가장 먼저 희석되거나 사라지는 요소가 미션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준다.
그렇다면 임팩트 생태계에서는 어떤 형태의 시너지가 가능한가. 김정태 MYSC 대표는 M&A를 “미션의 릴레이”라고 표현했다. 사회·환경 문제는 한 세대가 완주할 수 있는 싸움이 아니며, 창업자가 끝까지 미션을 붙들고 있어야 한다는 전제가 오히려 지속 가능성을 해칠 수 있다는 설명이었다. 닥터노아 사례처럼 전문경영인이 미션을 이어받아 조직을 다음 단계로 성장시키는 구조가 오히려 생존 가능성과 임팩트의 확장성을 높일 수 있다는 점은 이를 잘 보여준다.
또한 SI 관점에서 임팩트는 전략적 시너지로 재해석될 수 있다. 고객 기반의 충성도, 브랜드 신뢰, 규제 친화성, 커뮤니티 기반의 확장성, 파트너십 네트워크는 모두 시장에서 정량적 가치로 측정될 수 있는 요소다. 즉 임팩트는 도덕적 가치를 넘어 사업 확장성과 비용 효율성을 높이는 실질적 자산이 될 수 있다. 이것이 정량화된다면, 임팩트 기업 역시 충분히 M&A의 언어(현금흐름, 시너지, 밸류에이션 등)로 설명될 수 있다.
강연에서 또 하나 인상 깊었던 지점은, 임팩트 생태계에서는 폐업·청산된 기업의 지적자산과 무형자산을 다음 생태계로 넘기는 시스템이 부재하다는 사실이었다. 해외에서는 이런 자산에도 시장 가격이 매겨지지만, 한국에서는 대부분 사장된다. 이는 임팩트가 아직 자본의 언어로 구조화되지 못했다는 방증이다. 결국 임팩트 M&A는 단순한 기업 결합이 아니라 ‘미션이 지속될 수 있는 구조를 어떻게 설계하느냐’에 대한 문제다. 상장사 분석이 기업을 숫자로 이해하는 법을 가르쳐줬다면, 임팩트 생태계는 기업을 ‘이어가는 방식’을 새롭게 묻게 한다.
누가 이 미션을 다음 단계로 가져갈 수 있을지, 사회적 가치를 자본의 논리 속에서도 어떻게 유지할 수 있을지, 전략적 시너지가 어떤 방식으로 정량적 가치로 전환될 수 있을까. 학부에서의 학회 경험은 M&A의 기술을 가르쳐줬고, 임팩트 생태계는 그 기술의 본질적 목적을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다. 앞으로 어떤 기업을 보더라도 숫자 뒤에 놓인 가치, 그리고 그 가치가 어떻게 지속될 수 있을지까지 함께 고민하게 될 것이다.
주혜진 MYSC 연구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