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배경청년을 ‘직접’ 채용하면 알게 되는 것들

[더나은미래 x 희망친구 기아대책 공동기획]
우리는 N년째 항해 중입니다 <6>
3개월의 기록 끝에 남은 질문은 ‘우리 사회의 포용성’이었다

“선배, 이주배경청년 당사자 간담회가 열렸는데요. 대학생 두 명이 기자 일을 궁금해하더라고요.”

모든 시작은 전화 한 통이었다. 기자의 삶이 궁금하다니? 이주배경청년을 늘 ‘취재 대상자’로만 떠올렸지, 같은 책상에 앉아 함께 취재하는 ‘동료’로 상상해본 적은 없었다.

기자 업무의 핵심은 낯선 사람과 마음을 여는 기술이다. 어쩌면 이주배경청년이 이런 일을 더 자연스럽게 해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다. 또, 현장에서 부딪히는 경험 자체가 청년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그 길로 ‘이주배경청년’ 지원에 가장 진심이라고 생각하는 비영리단체 ‘희망친구 기아대책’의 문을 두드렸다. 새로운 변화를 만들 수 있겠단 기대 덕분인지, 기획안은 빠르게 윤곽을 갖췄다. 우리가 직접 채용해보자. 그렇게 시작된, 조금은 무모하고 어쩌면 필요한 실험.

◇ “비자부터 공부해야 할 것 같은데요”

지난 7월의 마지막 날, 더나은미래 내부 회의실. 채용 담당자의 표정이 제안보다 먼저 반응했다.

“이주배경청년을 저희가 직접 채용하는 거예요? 비자 종류가 뭐예요? 종류에 따라 다를 텐데… 고용노동부에 문의를 해야 하는지 법무부에 해야 하는지… 서류를 도대체 어떤 걸로 하고 어느 부처를 알아봐야 할지 그런 걸 찾아봐야 하긴 할 거예요.”

단순한 제안처럼 보였던 아이디어는, 곧바로 여러 층위의 현실적 질문을 끌어올렸다. 비자 유형별 근로 허용 범위, 행정 절차, 문의해야 할 부처까지…어느 하나 단순한 것이 없었다.

“유학 비자는 근무에 어려움이 좀 있죠. 한국 체류 기간이나 한국어 능력시험 급수에 따라 근무 허가 받을 수 있는 시간이 정해지기도 하고, 생각보다 장시간 근무는 어렵던데요.”

회의실 분위기는 금세 차분해졌다. ‘채용해보자’는 말이 쉽게 나왔지만, 그 뒤에 붙는 조건과 제약은 생각보다 촘촘했다. 채용 담당자의 메모장에는 금세 해야 할 일들이 빼곡히 적혔다. 현실의 벽은 늘 서류와 규정에서부터 모습을 드러냈다.

“이주배경청년 인턴 채용 실험”의 첫 장면, 8월 7일 면접 현장. /김규리 기자

일주일 뒤, 인턴 면접날. 더나은미래 내부 회의실에서 김지영(22) 씨를 만났다. 한국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재학 중인 인턴 후보였다. 잠시 스친 “한국어는 어느 정도일까”라는 걱정은 곧 사라졌다. 자연스럽고 유려한 한국어가 이어졌다.

입가까지 올라오는 “한국어 능숙하네요”라는 말은 삼켰다. 그 말이 칭찬일지, 구분짓는 표현일지 판단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지영 씨는 중국 옌지에서 조부모 손에서 자랐다. 한국어는 조선어 교사였던 할머니에게서 배웠다고 했다. 부모님은 먼저 한국에 자리 잡았고, 그는 9년 전 뒤늦게 합류했다고 했다.

이력서에는 증명사진 대신 사람 형상의 아이콘만 있었다. ‘서류 과정에도 장벽이 있었나’ 싶어 이유를 묻자 “그 디자인이 가장 예뻐서요”라고 웃었다. 예상한 ‘장벽’은 좀처럼 나타나지 않았다.

대망의 ‘비자 확인’ 순서였다. 지영 씨는 재외동포(F-4) 비자를 갖고 있었다. 근로 제한이 거의 없고, 별도 허가도 필요 없는 유형이다. 주말이면 집 근처 프랜차이즈 샌드위치 가게에서 알바를 한다고 했다.

“어떤 비자는 학교에서 일하면 따로 확인 절차가 필요하다던데요?” 질문에 지영 씨가 차분하게 답했다. “F-4는 취업 범위가 2년 전부터 더 넓어졌어요.” 그 순간, 비자 유형을 검색하던 채용 담당자의 표정이 눈에 띄게 풀렸다. 채용 과정 내내 가장 큰 변수처럼 느껴졌던 문제가 뜻밖에 단숨에 정리됐다.

지영 씨가 일하는 매장의 점주 김수현(50) 씨는 ‘반강제적 비자 전문가’였다. “외국인 직원 처음 뽑을 때 공부 많이 했어요. 제약이 많으니까 일부 사업장은 그냥 법을 좀 어긋나게 고용하고 현금 처리하는 경우도 있다더라고요. 저는 기준법 안에서 고용하려면 공부가 필수였어요.”

이주배경 인력 채용이 개인 사장에게까지 ‘정책 공부’를 요구하는 현실이 그대로 드러났다.

◇ 이주배경청년 인턴과 함께한 일상, 3개월의 기록

지영 씨와 3개월 간 근무하며 가장 많이 한 말은 두 가지다. “자리에 앉아서 들어도 돼요” 그리고 “죄송하다고 사과할 일 아니에요”.

지영 씨는 누군가 사무실에 들어오면 벌떡 일어났고, 질문을 받으면 거의 자동으로 “죄송합니다”가 뒤따랐다. 돌이켜보면 이런 높은 긴장도는 이주배경 여부와 무관했다. 전형적인 사회초년생의 모습이었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그 긴장이 ‘3개월 내내’ 유지됐다는 것. 마치 장기 면접을 보는 사람 같았다.

그는 “제가 도움이 못 된 것 같아 죄송하다”는 말을 종종했지만, 객관적으로 일을 꽤 잘하는 인턴 기자였다. 인터뷰 질문지 작성부터, 정책 리서치, 기획안 초안 작성까지 매번 기대 ‘이상’의 결과물을 가져왔다.

평소엔 샤이(Shy)한 성격이었지만, ‘당사자’로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낼 때만큼은 눈빛이 달라졌다. 최대한 다양한 국적의, 다양한 비자를 소지하고 있는 청년을 만나는 것을 미션으로 줬다. 학교 수업까지 병행하는 일정이 꽤 빠듯해 보였는데도 “제가 다른 분도 섭외해봐도 될까요?”라고 되묻곤 했다. 덜한 적은 없었다. 더하면 더했지.

지난 9월, 희망친구 기아대책이 주최한 ‘이주배경아동, 사회적 연결을 위한 6가지 시선’ 포럼에서 김규리 더나은미래 기자(왼쪽)와 더나은미래에서 인턴기자로 활동하고 있는 이주배경청년 당사자 김지영 활동가(오른쪽)가 발표하는 모습. /김형탁 기자

예상치 못한 ‘확장 미션’도 있었다. 지난 9월, 선배 김규리 기자와 함께 이주배경청년 취재기를 바탕으로 한 뉴스 형식의 토크쇼를 포럼 현장에서 진행하게 된 것이다. 무대 앞, 지영 씨는 마이크를 잡았다. 떨림은 있었지만, 또박또박 자신의 이야기와, 자신이 보고 들은 주변 청년들의 경험을 정확히 전했다. 그날 그는 더 이상 ‘인턴’이 아니었다. 자신의 서사를 스스로 기록하는 한 명의 기자였다.

꼭 이주배경청년이 아니더라도, 어떤 청년에게나 직장의 관계와 문화에 적응하는 데엔 시간이 걸린다. 지영 씨도 예외는 아니었다. 친한 친구에게서는 “굳이 조선족이라고 밝힐 필요 있겠냐”는 조언을 들었고, 다른 누군가는 정체성을 털어놓는 그에게 “나한테 너는 그냥 한국인”이라고 말했다고 했다. 그 말들을 들었을 때의 심경을 물었지만, 지영 씨는 잠시 말을 멈췄다.

한국에 들어온 지 9년이 지났지만, 정체성은 여전히 그 어드메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소속감’이라는 단어로는 온전히 담기지 않는, 어떤 조건에 도달해야만 사회의 일원으로 인정받는 듯한 감각. 표류에 가까운 그 감정이 어렴풋이 전해졌다.

이주배경 인력을 채용해본 현장에서도 ‘장벽’의 성격은 각기 달랐다. 예컨대 기아대책 ‘행복한나눔’은 그동안 북한이탈주민을 채용해왔기 때문에 비자 문제가 주요 변수로 등장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문수진 나눔가게팀장은 “업무는 가르치면 되지만, 관계 적응은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표현 방식이나 문화적 배경의 차이에서 비롯된 작은 오해가 반복되고, 이를 사실 확인과 교육으로 다시 풀어가는 과정이 필수적이라는 뜻이다. 결국 현장에서 가장 먼저 마주치는 벽은 제도보다 ‘관계’에 가까웠다.

이주배경청년 취재를 함께한 두 후배 기자가 처음으로 포럼 연단에 섰다. 현장에서 바라본 순간을 기록한다. /김경하 기자

3개월을 함께한 시간을 돌아보면, 특별히 ‘다른 점’을 집어내는 일이 쉽지 않았다. 지영 씨는 이상할 정도로 성실했고, 맡긴 일은 하나씩 정확히 해냈다. 억지로 특징을 찾으라면, 책임감을 과하게 떠안으려는 모습 정도였을까. 그마저도 그가 ‘이주배경청년’이라서라기보다, 막 사회에 발을 내딛은 청년들이 흔히 보여주는 지나친 조심성과 성실함에 가까웠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배경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중 어떤 배경은 유독 편견과 선입견이 더 촘촘히 얽혀 있기도 하다. 그 많은 배경 중 하나가 ‘이주’라는 이유만으로 프레임을 씌워온 게 아닐까.

‘이주배경청년’이라는 액자를 잠시 걷어내고 보니, 채용 이후 쓸 문장들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그는 똑부러진 인턴이었고, 성실한 청년이었으며, 가끔 수줍고, 때때로 용기 냈던 이야기의 주인공이었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의 3개월을 돌아보면 ‘이상한 점’을 찾기는 어려웠다. 결국 이상했던 건 인턴이 아니라 변화하는 현실에 비해 여전히 더디게 확장되고 있는 우리 사회의 ‘포용성의 정도’였다.

김경하·김규리 더나은미래 기자

※ 이주배경청년 7인의 이야기는 <우리는 N년째 항해중입니다> 아카이브 페이지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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