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적이 바뀌어도, 시선은 그대로였다

[더나은미래 x 희망친구 기아대책 공동기획]
우리는 N년째 항해 중입니다 <4> 편견과 차별이 만든 ‘정체성’의 벽

한국어로 꿈을 꾸고, 한국에서 자랐지만 자기소개 앞에서는 늘 망설이게 된다. 

“그래서 너는 한국인이야, 중국인이야?”

김지영(22)씨는 이 질문이 가장 어렵다고 했다. “주위 사람들에게 ‘동포’라고 말하면 ‘조선족이 왜 동포냐’는 반응이 돌아올까 봐 두려워요. 어디에도 완전히 속하지 못한다는 생각이 제일 힘들었어요.”

한국에 온 지 9년이 넘은 김씨는 여전히 구직 사이트에서 ‘외국인 불가’ 문구가 눈에 밟힌다. “아르바이트 공고 중 ‘외국인은 받지 않는다’는 말을 생각보다 자주 봤어요. 대학 취업 상담에서도 ‘F-4 대졸자는 잘 안 뽑는다’는 말을 들었죠.”

이 경험은 결코 개인적인 일이 아니다. 통계청이 발표한 ‘2024 국내 체류 외국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전체 체류 외국인의 17.4%가 사회적 차별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차별 이유로는 ‘출신 국가’(54.5%), ‘한국어 능력’(31.2%), ‘외모’(9.1%)가 주로 꼽혔으며, 특히 유학생(D-2)의 차별 경험률은 27.7%로 가장 높았다. 청년층에서의 차별 인식이 두드러진 결과다.

◇ 서류는 바뀌었지만, 세상은 변하지 않았다

귀화를 하면 달라질까. 고등학생 때 한국 국적을 취득한 정세원(27·가명)씨는 서류상 ‘한국인’이지만, 일상에서는 여전히 ‘외국인’이다. “외모만 보고 ‘외국인인가 보다’ 생각하는 시선이 있어요. 서류를 낼 때만 ‘한국인이었어요?’라는 반응이 돌아오죠.”

2020년 귀화한 임수현(23·가명)씨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면접에서 이주배경이라는 걸 드러내고 싶지 않아요. 최대한 자연스럽게 이야기하려 해도, 몇 마디면 ‘외국인이죠?’라는 질문이 나와요. ‘나도 이제 한국인’이라고 당당하게 말하고 싶은데, 겉모습만 보고 ‘외국인’이라는 생각이 앞선다는 순간 체념이 되죠.”

편견은 사실 사회 진입 이후가 아니라 학교에서 시작됐다. 송연우(26·가명)씨는 고등학교 시절 한 교사의 말을 잊지 못한다. “선생님이 수업 들어오시면서 ‘여긴 짱O 새O들 없지?’라고 하셨어요. 모두가 저를 쳐다봤죠. 선생님이 미안하다고 했지만, 그 한마디가 오래 남았어요. 겉으론 포용적이었지만, 결국 다르다는 걸 느꼈죠.”

북한이탈청년 허신아(23)씨는 출신을 감추며 살아야 했다. “북한에서 왔다고 하면 사람들이 갑자기 말을 줄이곤 했어요. ‘빨간 옷만 입냐’ 같은 말을 들을 때마다 마음이 다쳤어요. 그래서 한동안은 강원도에서 왔다고 말했죠.” 그는 “나는 누구인가, 왜 차별을 받아야 하나”라는 생각 끝에 결국 약물치료를 받기도 했다.

◇ 이주 과정의 그늘, 돌봄의 공백으로 남았다

이주 과정에서 부모의 재혼, 가족 분리, 경제적 곤란을 함께 겪은 청년도 많았다. 인터뷰에 참여한 7명 모두 성장기 동안 한 차례 이상 가족과 떨어져 살아야 했다. 어떤 이는 부모가 외화벌이를 위해 먼저 한국으로 이주하면서 조부모나 친척 손에 맡겨졌고, 어떤 이는 부모님의 재혼으로 새 가족과 함께 살게 됐다. 또 한 명은 부모의 강제 출국 이후 홀로 남겨졌고, 다른 한 명은 북한에 두고 온 가족과 지금도 연락이 닿지 않는다. 경제적 어려움과 정서적 불안이 겹치면서 학교 적응과 진로 탐색의 기회 역시 제한됐다.

“부모님은 두 분 다 필리핀에 계세요. 아버지는 제가 다섯 살 때 체포돼 강제 출국하셨고, 어머니는 올해 출국 유예 기간이 끝나 나가셨어요. 초등학교 때가 가장 외로웠어요. 어머니가 늦게까지 일하셔서 돌봄교실이나 청소년센터에 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박승민(21·가명)씨의 말이다.

7명의 사례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모두 성장기에 ‘부모의 장기 부재’와 ‘가족 분리’를 경험했다는 점이다. 부모와의 정서적 유대나 돌봄을 통한 지지를 기대하기 어려운 환경에서 자랐다. 이후 한국에서 부모와 재회하더라도, 재혼으로 인한 가족 구성의 변화나 생계형 맞벌이로 인해 돌봄의 공백이 이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단순히 한 지붕 아래 다시 모인다고 해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었다.

전문가들은 “이주배경청년의 문제는 단순히 국적이나 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사회가 타인을 ‘우리’로 받아들이는 감도의 문제”라고 말한다. 

정익중 아동권리보장원장은  “취업과 창업은 단순한 생계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가 한 사람을 구성원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의 마지막 단계”라며 “그 기회가 제한돼 있는 현실에서는 이주배경청년을 온전히 우리 사회의 일원으로 보긴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이주배경청년들이 사회에 기여할 수 있도록 진입 문턱을 낮추는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며 “국가의 지원뿐 아니라 민간의 참여, 국민 인식의 전환이 함께 이뤄져야 한국 사회의 포용성이 완성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규리 더나은미래 기자
김지영 더나은미래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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