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 Cares Wins] UNGC 25년, ‘사람의 얼굴을 한 시장경제’를 향하여

이은경 유엔글로벌콤팩트한국협회 실장

“세계의 기업인들과 유엔이 함께, 공유된 가치와 원칙에 기반한 ‘글로벌 콤팩트(Global Compact)’를 시작합시다. 이를 통해 우리는 시장경제에 인간적인 얼굴(human face)을  부여할 수 있을 것입니다.” — 코피 아난, 1999년 다보스포럼 연설 중에서

25년 전, 이 한 문장은 세계 기업사(史)에 새로운 장을 열었다. 코피 아난 당시 유엔 사무총장이 제안한 UNGC(UN Global Compact)는 인권·노동·환경·반부패 등 네 영역에서 기업이 책임 있는 행동을 약속하자는 선언이었다. 시장경제에 ‘인간의 얼굴’을 회복시키자는 시대적 제안이었다.

출범 당시 44개 기업으로 시작한 UNGC는 현재 160여 개국, 2만5000여 개 기업과 기관이 참여하는 세계 최대의 지속가능성 네트워크로 성장했다.

UNGC는 2004년 ESG 개념을 고안해 금융·자본시장의 언어를 바꿔놓았다. 주요 금융기관과 함께 ‘책임투자원칙(PRI)’을 만들고, 투자와 경영의 패러다임을 지속가능성 중심으로 전환시켰다. UNGC의 10대 원칙은 ESG 경영의 뿌리가 되었으며, 각국 정부의 지속가능성 정책과 공시제도, 책임투자 체계의 사상적 기반이 되었다.

이후 UNGC는 ‘자발적 선언’을 넘어 ‘실행 중심의 글로벌 표준’으로 진화했다. 공공과 민간의 경계를 넘어 협력의 플랫폼을 구축했고, 기업의 자발적 참여를 통해 지속가능한 시장 생태계를 만들어왔다. 기업과 사회가 대립이 아닌 상생의 구조로 나아갈 수 있음을 보여준 상징적 모델이기도 하다.

한국에서도 지난 20여 년간 UNGC Network Korea를 중심으로 380여 개 기업이 참여해 왔다. 정부·국회·시민사회·언론 등과 협력하며 ESG 생태계를 조성했고, 기업들이 지속가능경영을 내재화하도록 실질적 지원을 이어가고 있다.

지속가능한 사회를 향한 기업의 여정은 수많은 변화 속에서도 멈추지 않았다. ESG 규제와 시장이 자리 잡았고, 이제 기업은 지속가능성을 ‘리스크와 기회의 관점’에서 바라본다. 생존과 경쟁력의 문제로 인식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복합적인 대전환기를 맞고 있다. 변화의 속도와 파급력이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크다. 기후 전환과 AI 전환이 산업 구조와 사회 시스템, 일의 방식까지 재편하고 있다.

이제 기후위기는 환경문제를 넘어 경제·안보의 영역으로, AI는 효율과 혁신을 넘어 윤리와 책임의 문제로 옮겨가고 있다. 이는 곧 기업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다. 거대한 전환은 기업에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새로운 도전 과제를 부여한다.

“지속가능발전의 궁극적 목표인 인류 공동의 번영과, 기업의 지속가능성은 어떻게 조화를 이룰 것인가.”

앞으로의 기업 지속가능성 전략은 세 방향에서 진화해야 한다. 첫째, 기후 대응과 저탄소 경제로의 전환 과정에서 포트폴리오 전환과 실행력을 강화해야 한다. 둘째, AI 전환 시대에는 정의로운 전환과 책임 있는 활용이 필수다. 기술보다 중요한 경쟁력은 신뢰다.

셋째, 경쟁력 제고와 가치 창출의 핵심은 거버넌스 강화다. 리더십의 책임성, 이해관계자와의 투명한 소통이 지속가능성의 토대다. 기업의 지속가능성은 단순한 재무성과가 아니라 사회적 신뢰, 기술과 혁신에 수반된 책임, 지구와 인간 환경에 대한 회복탄력성 위에서 완성된다.

UNGC 25년은 ‘인간의 얼굴을 한 시장경제’를 향한 약속이 만들어낸 변화의 역사다. 그 약속은 여전히 유효하다. 코피 아난의 말처럼, 시장이 인간의 얼굴을 가질 때 비로소 기업과 사회는 함께 번영할 수 있다.

이은경 유엔글로벌콤팩트한국협회 실장

필자 소개

세계 최대 기업 지속가능성 유엔 이니셔티브인 유엔글로벌콤팩트의 한국네트워크(UN Global Compact Network Korea)에서 초창기부터 일하며 실무총괄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이해관계자들과 협력하며 ESG 전반, 특히 기업과 인권, 젠더 및 DEI, 컴플라이언스 분야에 활발한 강의와 자문 등을 하고 있으며, 기업의 지속가능성 생태계를 만들고 ESG 내재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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