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기후 규제 후퇴? 착시일 뿐”…기업의 2035 NDC 이행 전략 공개

‘제8회 탄소중립과 에너지 정책 세미나’ 현장
김성우 김앤장 환경에너지연구소장, 기업의 NDC 이행 전략 공개 

“EU가 지속가능성 규제를 풀면서 사실상 ‘탈탄소 목표를 후퇴하고 있다’는 시각이 확산하고 있지만, 이는 오해입니다. 이행 방식을 현실화한 것뿐입니다.” 

환경·에너지 전문가인 김성우 김앤장 환경에너지연구소장은 10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제8회 탄소중립과 에너지 정책 세미나’ 발표에서 이같이 주장했다. ‘탄소중립과 에너지 정책 세미나’는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의 제안으로 국가적 아젠다인 탄소중립과 에너지 정책의 해법을 모색하는 취지에서 2022년부터 개최됐으며, 이번이 8번째 행사다. 올해는 ‘새정부의 탄소중립·에너지 정책 방향과 과제’를 주제로 대한상공회의소와 서울대학교가 공동으로 개최했다.

환경·에너지 전문가인 김성우 김앤장 환경에너지연구소장은 10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제8회 탄소중립과 에너지 정책 세미나’ 발표에서 “EU가 지속가능성 규제를 풀면서 사실상 ‘탈탄소 목표를 후퇴하고 있다’는 시각이 확산하고 있지만, 이는 오해”라며 “이행 방식을 현실화한 것뿐”이라고 말했다. /조유현 기자

◇ “규제 대상 100곳→10곳 줄어도 배출량 99% 관리”

지난 9일(현지 시각) 로이터통신른 유럽연합(EU)이 그동안 추진해온 ‘기업 지속가능성 보고 지침’(CSRD)과 ‘공급망 실사 지침’(CSDDD)의 적용 대상을 크게 줄이는 방향으로 손질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당초 근로자 250명 이상 유럽 기업 약 5만 곳으로 예상됐던 CSRD 적용 범위는 근로자 1000명 이상·매출 4억5000만 유로 이상 기업으로 상향되면서 상당수가 의무 대상에서 빠지게 됐다. 비(非)EU 기업도 EU 내 매출이 4억5000만 유로를 넘는 경우에만 보고 의무를 진다. 공급망 인권·환경 실사 의무를 부과하는 CSDDD 역시 근로자 5000명·매출 15억 유로 이상 초대형 기업으로만 적용 대상을 좁혔고, 기업에 기후 전환 계획 수립을 의무화한 조항도 삭제하기로 했다. 규정 위반 때 부과할 벌금은 ‘글로벌 매출의 최대 3%’ 선에서 상한을 두고, 본격적인 의무 적용 시점도 2029년 7월로 미뤄졌다.

문제는 이러한 유럽의 흐름을 ‘규제 후퇴’로 해석하고, 국내 일각에서 “우리만 무리하게 앞서갈 필요가 있느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김성우 소장은 ‘규제 효율화’라고 분석하며, “EU가 규제 대상을 100개 기업에서 10개 기업으로 줄여준 것처럼 보이지만, 남은 10개 기업이 전체 탄소 배출량의 99%를 차지한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꼬집었다. 

◇ “단순 옥죄기서 산업 육성으로” EU의 변화는 ‘후퇴’ 아닌 ‘효율화’

김 소장은 이러한 ‘규제 효율화’의 근거로 최근 EU가 발표한 ‘청정 산업 딜(Clean Industrial Deal)’과 ‘옴니버스 패키지’를 들었다. 청정 산업 딜은 EU가 청정 기술 제조 역량을 키우기 위해 투자 지원·인허가 간소화·공급망 강화 등을 묶어 발표한 산업 경쟁력 강화 패키지이다. 옴니버스 패키지는 기존의 환경·지속가능성 관련 규정들을 단순화해 기업의 행정 부담을 줄이려는 일괄 개정 조치다. 

이 두 정책이 규제의 방식을 ‘단순 옥죄기’에서 ‘산업 경쟁력 강화’로 전환한 신호탄이라고 김 소장은 봤다. 그는 “청정 산업 딜은 그린딜이 지금까지 ‘탈탄소 규제’에 치우쳤다면 앞으로는 산업 경쟁력과 병행하겠다는 방향을 분명히 한 것”이라며 “옴니버스 패키지를 통해서는 보고·실사 의무 등 규제를 단순화하는 대신, 청정 기술 공급·제조를 지원해 다배출 업종에 전달하려는 의도가 드러난다”고 설명했다.

EU 배출권거래제(EU ETS) 가격 흐름도 중요한 단서로 제기됐다. 통계 플랫폼 트레이딩 이코노믹스(Trading Economics)에 따르면, 12월 5일 기준 유럽의 탄소배출권(EU ETS) 가격은 톤당 81.98유로로, ‘80유로 선’ 안팎을 유지하고 있다. 김 소장은 “EU ETS 가격은 유럽이 탄소 전체를 후퇴시키는지 여부를 보여주는 가장 좋은 지표 중 하나”라며 “만약 시장이 EU의 정책을 ‘포기’로 받아들였다면 배출권 가격은 폭락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가격이 유지된다는 것은 시장 참여자들이 여전히 탈탄소 규제가 강력하게 작동하고 있다고 믿는다는 증거”라고 설명했다.

◇ 특허 기술 투자·재생에너지 구매 등 전략 강조 

김 소장은 국내 기업들이 EU의 규제 효율화 흐름에 맞춰 한국 정부의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 이행을 위한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한국 정부는 지난 11월 국무회의에서 2035년까지 2018년 온실가스 배출량(7억4230만tCO₂eq)의 53~61%를 감축하는 내용의 2035년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를 확정했다. 최대치(61%)를 달성하려면 2035년 순배출량을 약 2억9000만~3억5000만tCO₂eq 수준까지 줄여야 한다는 의미다.

김 소장은 기업들이 ▲특허 기술 투자 ▲재생에너지 구매(RE100·PPA 등) ▲배출권·국제상쇄 활용 등 세 가지 축에서 전략을 짜야 한다고 조언했다.

특히 기술 투자와 관련해 그는 “남들이 좋다는 기술을 무작정 따라가지 말고 ‘특허 데이터’를 의사결정의 핵심 도구로 써야 한다”고 했다. 예를 들어 원전 전력을 활용한 ‘핑크 수소’ 기술의 경우에도 막연한 투자 대신 특허 인용도와 글로벌 커버리지를 분석해 어떤 기업이 핵심 기술을 선점했는지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 소장은 “실제로 일본의 아사히카세이 같은 기업은 특허 데이터를 분석해 자사에 없는 기술을 가진 기업을 찾아 전략적 제휴를 맺고, 그걸 통해 사업 속도를 높이고 있다”고 덧붙였다.

재생에너지 구매 전략에 대해서도 김 소장은 “단순히 싼 가격의 재생에너지를 찾는 ‘최저가 입찰’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는 “전력구매계약(PPA)을 체결할 때 다양한 구매 방식을 혼합하거나 AI와 에너지저장장치(ESS)를 활용해 수요를 조정함으로써 비용을 통제하는 등 입체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탄소배출권을 단순한 규제 비용이 아닌 ‘금융 자산’으로 인식할 것을 당부했다. 김 소장은 “글로벌 오일 메이저 기업들은 이미 사내에 ‘트레이딩 데스크’를 두고 선물(Futures) 등 파생상품을 통해 가격 변동성을 방어(헤징)하고 있다”며 “우리 기업들도 공급망 내에서 감축 사업을 발굴해 배출권을 확보하고, 이를 금융 기법과 연계해 리스크를 관리해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10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제8회 탄소중립과 에너지 정책 세미나’ 개회사에서 “새 정부의 기후에너지환경부 출범과 2035년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 발표에 맞춰 새로운 시각에서 탄소중립과 에너지 정책의 해법을 논의해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조유현 기자

한편, 이날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개회사에서 “새 정부의 기후에너지환경부 출범과 2035년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 발표에 맞춰 새로운 시각에서 탄소중립과 에너지 정책의 해법을 논의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이어 “일본이 산업과 에너지 기술 정책을 결합해 성장과 안보를 도모하듯 우리도 기술 중심의 통합적 방법론이 필요하다”며 “산업구조가 유사한 일본과 그린 트랜스포메이션(Green Transformation, GX) 전략을 공동 설계해 시장을 창출한다면 아시아의 녹색 생태계를 선도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조유현 더나은미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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