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착에 빠진 사회혁신 생태계…”해법은 협력 방식 전환”

사회혁신 생태계 구성원 37.9%, 현재를 ‘고착’ 상태로 인식
루트임팩트 공동연구보고서, 해법으로 ‘미션 중심의 창발적 협력’ 제시

사회혁신 생태계 구성원 10명 중 4명은 현재 생태계가 ‘고착 국면’에 접어들었다고 인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성장 과정에서 전문성과 효율성은 높아졌지만, 새로운 시도와 협력은 오히려 어려워졌다는 진단이다.

루트임팩트가 진저티프로젝트, 임팩트리서치랩과 발간한 연구보고서 ‘판을 바꾸는 협력: 사회혁신 생태계에 던지는 새로운 제안’에 따르면, 설문에 참여한 생태계 구성원 103명 가운데 37.9%는 현재 사회혁신 생태계가 ‘고착 국면’에 있다고 응답했다. ‘이완 국면’이라는 응답은 26.2%, ‘성장 국면’은 22.3%, ‘재조직 국면’은 13.6%였다.

루트임팩트는 진저티프로젝트, 임팩트리서치랩과 연구 보고서 ‘판을 바꾸는 협력: 사회혁신 생태계에 던지는 새로운 제안’을 공동 발간했다. /루트임팩트루트임팩트는 진저티프로젝트, 임팩트리서치랩과 연구 보고서 ‘판을 바꾸는 협력: 사회혁신 생태계에 던지는 새로운 제안’을 공동 발간했다. /루트임팩트

이번 연구는 2025년 11월부터 2026년 3월까지 생태계 구성원 130여 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103명을 대상으로 한 온라인 설문조사를 비롯해 대면·서면 심층 인터뷰와 포커스그룹인터뷰(FGI)를 통해 생태계의 현주소와 시스템 체인지, 협력에 대한 인식을 살폈다.

연구진은 고착 국면을 단순한 침체나 실패로 해석하지 않았다. 성장 과정에서 축적된 관계와 자원, 역할, 운영 방식이 안정화되면서 효율성과 예측 가능성은 높아졌지만, 동시에 새로운 시도에 대한 유연성이 떨어지고 변화에 대한 민감도도 낮아진 상태라고 설명한다.

◇ 성장은 했지만 변화는 둔해졌다

보고서는 생태계 고착의 원인으로 네 가지를 꼽았다. 영역별 분절, 성과 입증 중심의 문화, 형식적인 협력, 그리고 성공 공식의 반복이다.

“시민사회, 임팩트, 사회적 경제, 인권, 여성, 환경, 청년, 교육, 복지, 로컬 등 영역이 너무 분절돼 있고, 내가 속한 네트워크에만 관심을 갖고 있는 것 같다” 한 시민사회단체 이사장의 말이다. 보고서는 각 영역이 전문성을 키워온 과정에서 생태계 내부의 경계도 함께 강화됐다고 분석했다. 청년, 돌봄, 기후, 노동 등 여러 사회문제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음에도 대응은 여전히 개별 영역 중심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는 지적이다.

성과를 입증해야 한다는 압박 역시 생태계의 유연성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지목됐다. 설문 결과 프로젝트 평가에서 중요하게 다뤄지는 항목으로 ‘성과 입증'(31.1%)이 가장 많이 꼽혔고, ‘근본적 변화'(23.8%), ‘정량 성과'(23.2%), ‘학습과 성찰'(22.0%)이 뒤를 이었다. 보고서는 측정 가능한 성과가 사회적 가치를 설명하는 데 기여해왔지만, 성과 입증이 핵심 기준으로 고착될 경우 단기 지표로 환산하기 어려운 시도는 과소평가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관계의 변화나 인식 전환, 제도적 조건 변화처럼 장기간에 걸쳐 축적되는 변화는 뒷순위로 밀릴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공동의 문제 재정의와 자원 배분, 권력 구조의 재설계 등을 포함하는 ‘시스템 조율형 협력’을 경험했다는 응답은 18.4%에 그쳤다. /Magnific

협력 역시 실질적인 문제 해결보다 역할 분담과 성과 관리 수준에 머무는 경우가 많았다. 설문조사 결과 공동의 문제 재정의와 자원 배분, 권력 구조의 재설계 등을 포함하는 ‘시스템 조율형 협력’을 경험했다는 응답은 18.4%에 그쳤다. 협력을 주도하는 조직의 지원을 받아 사업을 수행하는 형태의 협력이 많다는 현장 실무자의 목소리도 반복적으로 나왔다.

과거의 성공 방식이 반복되는 경향도 나타났다. 한 생태계 현장의 실무자는 “새로운 사업을 하기엔 투자나 지원받기가 어려워 기존에 잘됐던 사업에서 약간만 비틀어 마치 새로운 것처럼 진행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털어 놓았다. 보고서는 사회문제 해결의 본질보다 투자 경로에 적합한 모델이 더 쉽게 주목받으면서, 기존 성공 사례를 반복하는 경향이 강화될 수 있다고 짚었다.

◇ 시스템을 바꾸는 열쇠는 협력

보고서는 이러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시스템 체인지(System Change)’를 주목했다. 개별 사업을 추가하는 방식이 아니라 문제를 반복적으로 만들어내는 구조와 관계, 자원 흐름, 사고방식까지 함께 변화시키는 접근이다.

시스템 체인지의 핵심은 협력에 있었다. 보고서는 대안으로 ‘미션 중심의 창발적 협력’을 제시했다. 현재의 협력이 자금의 흐름을 중심으로 형성되는 경우가 많다면, 앞으로의 협력은 공동의 목적을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핵심 질문도 달라져야 한다고 봤다. ‘누가 도움이 되는가’가 아니라 ‘누가 이 문제를 함께 보다 효과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가’를 기준으로 협력의 대상을 결정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보고서는 시스템 체인지를 위해 시민사회·사회적경제·임팩트 투자·공공·정책 영역이 경계를 넘어 협력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판을 바꾸는 협력: 사회혁신 생태계에 던지는 새로운 제안’ 보고서 갈무리

또 시민사회와 사회적경제, 임팩트 투자, 공공 영역 등 다양한 주체들이 경계를 넘어 참여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복합적인 사회문제가 다양한 제도와 이해관계가 결합한 형태로 나타나는 만큼, 단일 영역 안에서 해결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를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는 특정 조직이나 개인이 모든 것을 통제하는 방식이 아니라, 서로 다른 사람과 자원, 관점을 연결하고 조율하는 역할이 생태계 전반에 분산되는 새로운 형태의 리더십도 필요하다고 봤다.

◇ 현장의 목소리 “분절 대신 연결이 필요하다”

이러한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지난 4일 서울 성동구 KT&G 상상플래닛에서는 ‘플래닛 서밋 2026: 판을 바꾸는 협력의 조건’이 열렸다. 행사에는 사회혁신 분야 활동가와 연구자, 투자자, 중간지원조직 관계자 등 54명이 참석해 연구가 제기한 문제의식과 앞으로의 협력 방향을 논의했다.

루트임팩트는 지난 4일 서울 성동구 KT&G 상상플래닛에서 ‘플래닛 서밋 2026: 판을 바꾸는 협력의 조건’을 열고 사회혁신 생태계의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루트임팩트

패널로 참여한 전일주 임팩트얼라이언스 팀장은 임팩트 생태계가 성장과 함께 더 세분화되면서 영역 간 간극이 커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앞으로의 협력은 이러한 분절을 연결하고 공통의 문제 인식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창모 한양대 글로벌사회혁신단(SSIR Korea 센터) 센터장은 “복잡한 사회문제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단기 성과 중심의 접근을 넘어 서로 다른 주체를 연결하고 조율하는 ‘오케스트레이터’의 역할이 중요해지고 있다”며 생태계 차원의 협력 구조에 대한 투자와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루트임팩트는 연구에서 제안한 방향을 실제 현장에서 검증하기 위한 협력 실험 계획도 공개했다. 오는 8월부터 돌봄을 첫 번째 파일럿 주제로 선정하고, 연구기관과 공공, 기업, 솔루션 조직, 당사자가 함께 참여하는 시스템 체인지 프로젝트를 추진할 예정이다.

발표자로 나선 박은비 루트임팩트 매니저는 “이번 연구가 생태계 구성원들에게 지금 우리가 어디에 서 있는지 돌아보고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고민할 수 있는 하나의 지도가 되기를 바란다”며 “이제는 연구를 넘어 실제 현장에서 새로운 협력 방식을 실험하고 검증해 볼 차례”라고 이야기했다.

채예빈 더나은미래 기자

관련 기사

Copyrights ⓒ 더나은미래 & futurechosun.com

댓글 작성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


더나은미래 특별기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