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교 위기 마을에 핀 ‘음악꽃’…1만4000명 홀린 계촌 클래식 축제

제12회 계촌 클래식 축제, 평창 계촌마을서 열려
현대차 정몽구 재단 12년 지원으로 ‘문화예술 지역상생’ 모델 구축

“돗자리 챙겼어? 양산도 꺼낼까?”

지난 6일 오후, 강원 평창군 방림면 계촌리 계수나무 그늘 아래 관객들이 하나둘 자리를 잡았다. 아이들은 잔디밭을 뛰어다녔고, 어른들은 돗자리를 펴고 앉아 부채질을 했다. 무대 뒤편으로 산과 나무가 둘러섰고, 바람과 새소리가 클래식 선율 사이로 스며들었다.

올해로 열두 번째를 맞은 ‘계촌 클래식 축제’의 풍경이다. 이번 축제는 지난 5일부터 7일까지 강원도 평창군 방림면 계촌리 일대에서 열렸다.

계촌 클래식 축제는 현대차 정몽구 재단과 한국예술종합학교, 계촌클래식축제위원회가 공동 주최한다. 2015년 시작된 축제는 ‘예술이 일상이 되는 마을’을 목표로 이어져 왔다. 올해도 축제 기간 클래식 공연과 지역 문화 체험 프로그램이 열리며 관람객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개막일인 5일에는 계촌 길 콘서트와 파크콘서트, 계촌별빛오케스트라 및 바이올리니스트 이지혜·김현서, 피아니스트 김송현이 출연한 별빛콘서트가 열렸다. 6일에는 클래식 언박싱, 플루티스트 이예린·CMK앙상블의 햇살콘서트, 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와 첼리스트 한재민이 함께한 별빛콘서트가 이어졌다. 마지막 날인 7일에는 아코디언 연주자 김주연·채경아, 기타리스트 김유정, 디토 체임버오케스트라와 바이올리니스트 대니 구 등이 무대에 올라 축제의 대미를 장식했다.

축제장 곳곳에는 공연 외에도 예술 체험 프로그램, 지역 주민이 참여하는 플리마켓, 지역 특산품 먹거리 부스, 드론 라이트쇼, 포토존 등이 마련됐다. 현대차 정몽구 재단은 올해 1만4000명이 넘는 관람객이 축제장을 찾은 것으로 집계했다.

◇ 클래식이 흐르는 밤, 문 없는 공연장

기자가 계촌마을에 도착한 지난 6일 오후 3시께, 계촌로망스파크에서는 CMK앙상블 공연이 한창이었다. 약 500명의 관람객이 잔디밭과 객석에 앉아 앙상블 연주를 감상했다. 무대 뒤로는 산과 나무가 펼쳐졌고, 바람과 새소리가 음악 사이로 스며들었다.

이날 오후 7시에는 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와 상임지휘자 아드리앙 페뤼숑, 첼리스트 한재민의 공연이 이어졌다.

이지혜 음악감독(한국예술종합원 기악과 교수). /이지혜 음악감독

◇ 이지혜 계촌 클래식 축제 음악감독 인터뷰

“관객들이 음악과 자연에 가까워졌기를 기대”

올해 축제의 음악감독은 이지혜 한국예술종합학교 기악과 교수가 맡았다. 독일 뮌헨국립음대에서 바이올린을 전공한 이 감독은 2017년 트리에스테 국제콩쿠르에서 1위와 현대곡상을 수상했다.

이 감독은 공연 직후 진행된 <더나은미래>와의 인터뷰에서 계촌 클래식 축제의 가장 큰 매력으로 ‘야외 무대’를 꼽았다. 그는 “일반 공연장은 문을 기준으로 안과 밖이 나뉘지만, 이곳은 그런 경계가 없다”며 “무대와 관객, 자연이 하나의 공간 안에서 어우러진다는 점이 특별하다”고 말했다.

야외 공연장은 연주자에게도 새로운 감각을 열어준다. 이 감독은 “실내 공연장과는 전혀 다른 경험”이라며 “바람의 흐름, 주변 풍경, 시간에 따라 변하는 빛까지 음악의 일부처럼 다가온다”고 했다.

공연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자연은 중요한 영감이 됐다. 그는 “이 공간에 어떤 음악이 어울릴지 계속 상상하게 됐다”며 “새소리와 바람 소리, 물 흐르는 소리가 음악과 어우러질 때만 느낄 수 있는 감동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클래식 음악이 꼭 공연장 안에서만 울려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자연 속에서 듣는 음악은 또 다른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덧붙였다.

이 감독은 “이번 공연을 통해 관객들이 음악뿐 아니라 자연과 함께하는 시간을 즐겼기를 바란다”며 “앞으로도 열린 공간에서 다양한 음악적 경험을 전할 수 있는 무대를 만들고 싶다”고 전했다.

◇ 현대차 정몽구 재단이 계촌을 선택한 이유

강원 평창군 계촌마을에서 열리는 계촌 클래식 축제는 단순한 공연 행사가 아니다. 현대차 정몽구 재단이 지난 11년간 추진해 온 ‘문화예술을 통한 지역 상생’의 실험장이자 대표 사례다.

축제의 출발점은 2015년이다. 당시 재단은 한국예술종합학교와 함께 농촌 지역에서 문화예술 프로젝트를 펼칠 방안을 모색했다. 이 과정에서 주목한 것이 계촌초등학교 오케스트라였다.

당시 계촌초는 전교생이 악기를 배우고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활동하는 전국적으로도 드문 학교였다. 재단은 학생들에게 더 많은 음악 교육 기회를 제공하고, 주민들이 함께 문화예술을 향유할 수 있는 축제를 만들면 학교와 지역이 함께 성장할 수 있다고 봤다.

신혜민 현대차 정몽구 재단 사업팀장은 “처음부터 교육 자체가 목적이라기보다 지역과 상생할 수 있는 문화예술 모델을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며 “계촌초 오케스트라는 학생 교육과 지역 축제를 잇는 좋은 연결고리였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축제는 학생들의 무대를 마련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주민 대상 문화예술 교육, 학생 음악 교육, 지역 주민 참여 프로그램 등을 연중 운영하며 마을 전체가 문화예술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구조를 만들었다.

그 결과 계촌은 ‘클래식 마을’이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얻었다. 오케스트라 교육과 축제를 경험하기 위해 도시에서 농촌 유학을 오는 가정도 생겼다. 학생 수가 유지되면서, 한때 우려됐던 폐교 위기도 넘길 수 있었다.

신 팀장은 “재단은 축제와 교육을 지원했을 뿐인데, 결과적으로 지역 활성화와 도시재생 효과까지 나타났다”며 “계촌은 문화예술이 지역의 가능성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 보여준 사례”라고 평가했다.

◇ 온라인으로 이어간 축제, 관객층을 넓히다

계촌 클래식 마을 조형물. /구지훈 기자

코로나19 시기에도 계촌 클래식 축제는 멈추지 않았다. 2020~2021년에는 외부 관람객 없이 지역 주민만 제한적으로 현장에 참여했고, 공연은 유튜브 생중계로 전국에 송출됐다.

오히려 온라인 전환은 축제 인지도를 넓히는 계기가 됐다. 공연장이 문을 닫고 무대가 줄어든 시기, 피아니스트 백건우, 손민수 등 정상급 연주자들이 계촌 무대에 올랐다. 현대차 정몽구 재단 장학생들도 연주자로 참여했다.

코로나 기간 온라인으로 축제를 접한 관객들은 이후 현장 관람객으로 이어졌다. 여기에 피아니스트 임윤찬, 조성진 등 정상급 연주자들이 무대에 오르면서 계촌을 찾는 발걸음은 더욱 늘었다. 위기를 지나며 계촌 클래식 축제는 오히려 더 넓은 관객층을 확보하게 된 셈이다.

◇ 전국이 주목하는 ‘클래식 마을’로…미래는 지역 자립

계촌 클래식 축제가 전국적인 관심을 받게 된 이유는 공연 라인업만이 아니다. 주민과 학생, 클래식 음악이 어우러져 지역을 변화시키는 과정 자체가 하나의 콘텐츠가 됐다.

아티스트들의 인식도 달라졌다. 과거에는 ‘계촌이 어디냐’는 설명부터 해야 했지만 이제는 많은 연주자들이 축제를 알고, 한 번쯤 서고 싶은 무대로 인식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지역 변화도 가시화됐다. 평창군은 축제 인프라 확충에 예산을 투입하고 있으며, 국토교통부 ‘민관협력 지역상생협약 사업’ 선정으로 100억 원 규모의 사업비를 확보했다. 이를 기반으로 평창 클래식웰컴센터 건립과 문화 콘텐츠 개발이 추진되고 있다.

재단이 그리는 축제의 미래는 ‘지역 자립’이다. 최재호 현대차 정몽구 재단 사무총장은 “주민과 지자체가 스스로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운영하는 구조가 만들어진다면 계촌은 더욱 지속 가능한 문화예술 마을로 성장할 수 있다”며 “계촌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문화예술 마을로 자리 잡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계촌 = 금윤호·구지훈 더나은미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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