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사회적경제원 x 더나은미래 공동기획] 협력의 힘, 임팩트를 더하다 <1>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목욕탕의 탄생 
“혈압이 124 나왔네요. 오늘은 전신욕보다 반신욕이 좋겠어요.”
경기도 안성시 일죽면 ‘일죽목욕탕’ 입구에서는 어르신들이 순서대로 서서 키오스크로 혈압을 잰다. 수치에 따라 적절한 목욕법이 안내되고, 탈의실 한편엔 온수를 마실 수 있는 온수대가 마련돼 있다. 욕탕 안에서는 10분마다 ‘안전벨’이 울리고, 낮은 벽체 너머로 서로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28년 된 노후 공중목욕탕이 이렇게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목욕탕’으로 다시 태어난 것은 어느 한 기업의 힘으로 된 일이 아니다. 경기도사회적경제원을 중심으로 안성시, 안성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안성의료사협), 광고회사 이노션, 월드비전, 사회복지공동모금회 등 6개 기관이 손을 맞잡은 결과다.
이와 같이 다양한 주체가 공동의 목표를 두고 협력하는 사회문제 해결 구조를 ‘콜렉티브 임팩트(Collective Impact)’라고 부른다. 2011년 존 카니아(John Kania)와 마크 크레이머(Mark Kramer)가 스탠퍼드 소셜 이노베이션 리뷰(SSIR)에 처음 제시한 이 개념은, 복잡한 사회문제는 단일 조직으로 해결할 수 없으며 공통의 목표와 이해관계자 간 협력이 필요하다는 데서 출발했다.
이 모델은 ▲공통 목표 설정 ▲성과 공유 ▲상호보완적 활동 ▲지속적 소통 ▲협력을 조정하는 ‘백본 조직(Backbone Organization)’이라는 다섯 원칙을 중심으로 작동한다.
경기도사회적경제원은 2023년, 이러한 구조를 바탕으로 한 ‘사회환경 문제해결 지원사업’을 시작했다. 참여 기관에는 최대 2년간 1억2000만원의 사업비를 지원하며, 사경원은 단순 행정지원이 아닌 ‘조율자’ 역할을 맡는다. 사회문제를 제안한 조직이 적합한 기업·기관을 찾을 수 있도록 연결하고, ESG·디자인·기술 등 전문 파트너를 매칭한다. 올해까지 총 177개 기관이 참여해 지역 활성화, 돌봄, 기후대응 등 74개 프로젝트가 추진됐다.
◇ 함께 고친 목욕탕, 낙상 사고 10분의 1로
경기도 안성의 ‘일죽목욕탕’은 이 사업의 대표 성과로 꼽힌다. 이노션은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공사비를 포함한 사회공헌 기금을 기탁하고, 브랜드 리뉴얼과 공간 리모델링을 주도했다. 경기도사회적경제원은 돌봄 커뮤니티 조성과 건강 콘텐츠 제작을 위한 기금 지원, 사업 설계와 조정 역할을 맡았고, 안성시는 공사 승인과 행정 절차를 담당했다. 월드비전은 모금회를 통해 이노션의 기금을 안성의료사협 등에 배분해 취약계층에 목욕탕 이용 바우처를 제공했다. 안성의료사협은 지역 내 건강·돌봄 체계를 강화하며 ‘커뮤니티 목욕탕’의 새로운 모델을 만들었다.

이 프로젝트는 원래 이노션의 사회공헌 프로젝트 ‘소셜공간 리브랜딩 사업’에서 출발했다. 사라져가는 지역 공간을 사회적 가치로 되살리자는 취지였다. 24개 지자체 80여 곳 중 최종 대상지는 1997년 건립 이후 한 번도 리모델링되지 않은 안성시 일죽면의 공중목욕탕이었다.
신지나 이노션 시니어 매니저는 “대중목욕탕은 취약계층이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는 중요한 사회적 공간이지만, 점점 사라지고 있고 남은 곳들도 노후화로 안전사고가 잦다는 점에 주목했다”고 말했다. 실제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2003년 전국 1만여 개였던 목욕탕은 2022년 6000개로 줄었다.
이노션은 당초 디자인 중심 리뉴얼을 계획했으나, 공사 직전 안전사고가 발생하면서 방향을 ‘안전 중심’으로 전환했다. 의료·돌봄 전문기관인 안성의료사협이 의학 논문과 의료 데이터를 검토해 히트 쇼크(Heat Shock) 예방 설계를 도입했다. ▲입구 건강측정 키오스크 ▲워밍업존 ▲10분 간격 안전 알람 ▲낮은 벽체 구조 등은 모두 이 과정에서 도출된 결과다.
1년의 협업 끝에 일죽목욕탕은 2024년 11월 새롭게 문을 열었고,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 인테리어 부문 최고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리뉴얼 전후 비교 결과 낙상 경험률은 10.7%에서 1.2%로, 온열질환 경험률은 6.0%에서 2.4%로 감소했다.
◇ 공간을 넘어, 돌봄 생태계로
이 사업은 공간 개선에 그치지 않았다. 안성의료사협은 지역 어르신 중심의 건강리더 모임 ‘일죽동친(일죽면 동네 친구)’을 조직해 경로당 운동 프로그램과 동행목욕을 운영하고 있다. 어르신이 건강해야 목욕탕을 이용할 수 있다는 현실에서 출발해, 일상 속 돌봄을 확산하려는 취지다. 현재 60~70대 주민 40여 명이 건강리더로 활동한다. 이들은 4주간의 유산소·근력 중심 교육을 마친 후 직접 경로당에서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지난달 24일, 기자가 안성시에 위치한 하주천 경로당에 들어서자, 어르신 10여 명이 둥그렇게 모여 팔을 흔들고 있었다.
“발을 당기세요, 당근 뽑아요!” “팔 크게 벌렸다가 짝! 파리 잡아유!”
건강리더 4명이 구령을 외치자 어르신들은 웃음을 터뜨리며 동작을 따라 했다. 일죽동친 2기로 활동 중인 송계순(75) 어르신은 “운동은 혼자 하기 어려운데, 여럿이 모여 하니 더 즐겁고 힘이 난다”며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고 다른 어르신들도 ‘나도 해볼까’ 하는 마음이 드는 걸 볼 때 가장 뿌듯하다”고 말했다.
유소희 안성의료사협 팀장은 “회장·부회장·조장을 선발해 주민 주도의 지속가능한 체계를 만들었다”며 “시설 개선에 그치지 않고 의료·디자인·돌봄이 결합된 지속가능한 공동체 돌봄 모델이 완성됐다”고 설명했다. 안성의료사협은 향후 건강리더를 일자리로 연계해 가정 방문 모니터링 등 통합돌봄으로 발전시킬 계획이다.
경기도사회적경제원은 ‘일죽목욕탕’ 프로젝트를 “다양한 주체가 공동의 목표 아래 사회문제를 해결한 협력형 거버넌스 모델”로 평가한다. 공공이 논의의 장을 열고, 기업이 혁신을 주도하며, 사회적경제 조직이 현장에서 실행력을 발휘하는 구조라는 것이다. 김성근 경기도사회적경제원 사회가치연계팀장은 “공공이 신뢰의 틀을 설계하고, 민간이 혁신의 주체로 참여한 사례”라며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새로운 협력 구조가 자리 잡고 있다”고 말했다.
안성=조유현 더나은미래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