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 × 더나은미래 공동기획] 사회적기업의 다음 10년 <上>
운영 체계 정비부터 시장 확장까지, 성숙기 기업들의 ‘집합적 임팩트’ 실험
10년 전, 강동구의 작은 가죽공방에서 출발한 사회적기업 ‘코이로’는 어느새 철도 굿즈 시장의 숨은 강자로 떠올랐다. 협업 기업만 18곳, 수서역에는 전용 매장까지 운영한다. 겉으로 보면 ‘성장 스토리’지만 고민도 많다. 디자인·생산 일정이 채팅방과 전화로 흩어지고, 협업 업체가 늘수록 “누가 어떤 업무를 언제까지 맡는지”를 정리하는 데만 하루가 지나갔다. 홍찬욱 코이로 대표는 “사업 규모가 커지면서 운영 방식도 그에 맞게 재정비할 시점이 됐다”고 말했다.
이처럼 성장의 문턱에서 드러난 운영의 한계는 코이로만의 고민이 아니었다. 성숙 단계에 접어든 사회적기업 상당수가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었다. 이러한 요구를 반영해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은 올해 ‘성숙기 사회적기업 지원사업’을 시작했다.
이 사업은 초기 생존 단계를 넘긴 사회적기업이 다음 단계로 도약할 수 있도록, 단일 기업 지원이 아닌 ‘기업 간 협업’을 중심축으로 설계된 프로그램이다. 최소 3개 이상의 사회적기업이 컨소시엄을 구성해 운영 체계를 정비하고 공동 제품·서비스를 개발하며 시장 확장을 시도하는 방식이다. 사업비는 기업과 진흥원이 1:1로 부담하는 매칭 구조로 최대 3억 원까지 지원 가능하며, 올해는 6개 컨소시엄이 최종 선정됐다.

코이로는 이 사업을 계기로 굿즈 사업의 운영 체계를 재정비했다. 협업 기업이 빠르게 늘면서 전화와 SNS로 오가는 방식만으로는 업무를 관리하기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이에 코이로는 디자인·제작·입고·물류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전사적 자원 관리(ERP)’ 시스템을 도입해 업무 흐름을 재정비했다. 굿즈 팀 간 네트워킹 워크숍을 열어 협력 구조를 다듬고, 시장 확장을 위해 철도 관련 굿즈를 모아 소개하는 온라인몰 구축에도 나섰다. 국가철도공단·코레일·SR 모두 전용 온라인몰이 없다는 점을 포착한 전략이다.
홍 대표는 “초기에는 미흡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전체 기업의 성장을 돕는 기반이 될 것”이라며 “브랜드 경쟁이 치열해진 굿즈 시대에 대비해 철도 영역을 넘어 다른 분야로도 사업을 확장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 사회적기업 10곳이 협력한 공동 플랫폼…시니어 디지털 교육이 ‘한 곳’에
성숙기 사업을 계기로 협업의 ‘판’을 다시 짠 기업도 있다. 퇴직 중장년 교육·상담·일자리 매칭을 지원해온 상상우리는 초고령사회 진입과 함께 급증하는 ‘스마트 경로당’에 주목했다. 전국 경로당은 3만7000여 곳으로, 편의점보다 1만3000곳이 많고 올해에만 2000곳이 늘었다. 상상우리는 기존에 준비해 온 시니어 콘텐츠 개발 계획을 이번 사업과 연결해, 협업 기반의 디지털·생활·안전 교육 플랫폼 ‘스마트봄’ 구축으로 확장했다.

이 플랫폼에는 시니어를 위한 다양한 디지털·생활·건강 콘텐츠가 담긴다. ‘상상우리’는 시니어 일자리 탐색과 복지 정보 안내를 맡고, 낙상예방 보조용품 기업 ‘해피에이징’은 낙상 예방·보행기 사용 등 안전 교육을 담당한다. 교육용 키오스크와 학습 솔루션을 개발해 온 ‘캐어유’는 스마트폰 활용과 보이스피싱 예방 등 실생활형 디지털 교육을 맡았다. 수공예 키트를 만드는 ‘더스치티’는 시니어가 쉽게 참여할 수 있는 수공예 활동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플랫폼 ‘스마트봄’은 내년 초 정식 출시를 앞두고 있다. 성숙기 사업 참여를 계기로 협력한 사회적기업은 5곳에서 10곳으로 확대됐다. 신철호 상상우리 대표는 “사회적기업이 협력하면 서로의 비즈니스 모델을 공유하고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 낼 수 있다”며 “이번 성숙기 사업처럼 이러한 연결이 더욱 활성화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 각자의 강점을 모아 엮어내자 시너지가 나타났다
지역 기반 사회적기업의 협업 사례도 눈에 띈다. 지역 행사와 사회연대경제 프로젝트를 기획해 온 ‘다이버스’는 로컬 브랜드가 성장하려면 오프라인 경험·온라인 판로·지역성이 유기적으로 결합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에 오프라인 팝업 운영에 강한 다이버스, 온라인 판로 지원 역량을 갖춘 오엠인터랙티브, 상품화 전문성을 가진 컨츄리시티즌이 컨소시엄을 꾸렸다.

이들은 올 하반기 동안 총 7회의 팝업스토어를 열어 2만 명을 모았고, 2억7000만 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참여한 사회적기업 브랜드는 16개, 소개된 로컬 제품은 300개가 넘는다. 팝업으로 끝나지 않도록 온라인 상품 페이지도 제작하고, 이스토어 36.5·오래오래함께가게 온라인몰 입점 등을 지원해 고객 접점을 만들었다. 각 기업의 강점을 결합한 성과다.
김명준 다이버스 대표는 이번 성숙기 사업의 가장 큰 성과로 컨소시엄의 결속력 강화를 꼽았다. 그는 “그동안은 오엠인터랙티브와의 협력 중심이었지만, 이번에는 컨츄리시티즌의 합류가 무엇보다 컸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는 주로 공공·대기업 프로젝트를 수행해 왔지만, 이번 기회를 통해 로컬 주체들의 어려움을 듣고 함께 상품화를 시도할 수 있었다”며 “협업의 시너지를 확인한 만큼 내년에는 외부 클라이언트와의 확장 사업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성숙기 사회적기업 지원사업의 의미를 ‘집합적 임팩트(collective impact)’ 실험으로 본다. 장용석 연세대 교수는 “앞으로 사회적기업 생태계가 도약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규모의 경제가 아니라 범위의 경제”라며 “이미 역량을 갖춘 사회적기업이 협업을 통해 시장 범위를 넓히는 것이 다음 단계의 성장 전략”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번 사업은 조직 간 협업 구조를 실험하고 제도화하는 과정이라는 점에서 사회적경제의 패러다임 전환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라고 평가했다.
채예빈 더나은미래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