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 × 더나은미래 공동기획] 사회적기업의 다음 10년 <下>
늘봄학교·통합돌봄·표준식단까지…정책 변화를 대비한 현장의 ‘연대 기반 해법’
지역 돌봄과 교육 서비스가 빠르게 재편되면서 사회적기업들 앞에 놓인 질문도 달라지고 있다. 혼자 만들 수 있는 프로그램의 범위와 깊이는 한계가 있고, 학교와 지자체가 요구하는 서비스는 더 전문적이고 다층적으로 변하고 있다. 학교 방과후 교육과 돌봄을 통합한 ‘늘봄학교’, 의료·주거·돌봄을 잇는 ‘통합돌봄’은 이 변화를 상징한다.
정책 환경의 속도에 맞추기엔 개별 기업의 역량만으로는 버거웠다. 교육·돌봄·식단 등 분야별 전문성을 묶어 새로운 서비스를 설계하는 ‘협업’이 필수가 된 이유다. 이러한 흐름을 배경으로 올해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의 ‘성숙기 사회적기업 지원사업’이 출범했다. 초기 생존기를 넘긴 기업들이 3곳 이상 컨소시엄을 꾸려 공동 서비스 개발과 운영 체계 정비를 추진하도록 설계된 협업 중심 프로그램으로, 최대 3억 원까지 매칭 지원한다. 올해는 여섯 개 컨소시엄이 선정됐다.
오영택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 성장지원팀장은 “성숙기 지원사업은 성장 단계에 오른 사회적기업이 변화된 사회서비스 수요에 대응할 수 있도록 협업 기반으로 설계된 프로그램”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여러 기업이 움직임을 함께하기 시작하면서 기존에 가능성을 논의만 하던 모델들이 실제 서비스로 구현되기 시작했고, 협업이 지닌 확장 가능성을 현장에서 체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 ‘각개전투’ 아닌 ‘협력’…교육 사회적기업, 컨소시엄으로 길을 열다
“각개전투보다 협력하면 더 다채로운 활동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수원 지역에서 교육 사업을 해온 사회적기업들이 내년 늘봄학교 도입을 앞두고 가장 먼저 나눈 고민이었다. 늘봄학교는 학교마다 필요에 맞는 교육·돌봄 프로그램을 선택해 운영하는 구조로, 관련 시장도 빠르게 커지고 있다. 교육 분야 사회적기업에게는 기회이자 경쟁의 무대다.
더즐거운교육은 보드게임 기반 안전·SDGs 교육을 실행하는 사회적기업이다. 수원 지역의 교육 사회적기업들과 꾸준히 “함께 움직이면 어떨까”를 논의해 왔고, 마침 성숙기 사업이 그 논의를 현실로 옮겨줄 기회가 됐다.

진흥원 사업을 계기로 공예문화협회(공예 체험), 팝그린(생태교육), 굿컴퍼니(신체활동), 지오그라피(캘리그라피), 재재상점(자원순환) 등 여섯 개 기업이 컨소시엄을 구성했고, 각 사의 강점을 반영해 40차시 교육과정을 공동 개발했다. 이화여대 교육대학원의 자문을 통해 교육의 전문성도 확보했다.
협업은 콘텐츠 개발에 그치지 않았다. 기업들은 프로그램을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위한 협동조합 ‘온봄사회적협동조합’ 설립도 추진하고 있다. 빠르면 연내 인가가 완료돼, 늘봄학교 프로그램을 모아 제공하는 ‘늘봄허브’에 조합 단위로 입점할 예정이다. 최지영 더즐거운교육 대표는 “늘봄이라는 정책을 계기로 만났지만, 컨소시엄으로 일하면서 더 큰 가능성이 보였다”며 “향후 다른 공모사업이나 위탁사업에도 함께 도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 베테랑들의 협업, ‘내 집에서 돌봄 받을 권리’를 넓히다
내년 3월 27일부터 통합돌봄 제도가 본격 시행된다. 노인이나 돌봄 대상자가 병원·시설로 이동하지 않고도 살던 동네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주거–돌봄–의료’를 통합 제공하는 방식이다. 지자체는 개인별 계획을 수립하고 필요한 서비스를 연계한다.

광진구의 사회적기업 도우누리는 이 변화에 가장 ‘준비된’ 조직 중 하나다. 광진구는 2015년부터 사회적경제 기반 돌봄 협력 모델을 도입해 왔으며, 도우누리는 그 과정에서 주거편의·영양·일상돌봄을 아우르는 현장 경험을 쌓아 왔다. 이번 성숙기 사업도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컨소시엄에는 청소·방역, 영양관리, 먹거리 준비, 정리수납 등 지역 돌봄을 구성하는 13개 기관이 참여했다. 민동세 도우누리 대표는 “법제화 이후에는 여러 기관이 중복 방문하는 구조적 비효율을 해결하는 것이 핵심 과제”라며 “이번 사업에서 중점적으로 실험한 것 역시 기관 간 연계 효율을 높이는 방식이었다”고 설명했다.
도우누리는 올해 일상돌봄 대상자 53명에게 서비스를 제공했고, 일상·영양·주거편의 매뉴얼 3종을 제작했다. 의료기관·돌봄기관·사회적경제기업이 참여하는 지역 네트워크를 월 1회 정례화하고, 향후 광진구 통합돌봄 플랫폼으로 발전시키기 위한 기반을 구축하고 있다.
◇ ‘잘 먹는 것이 돌봄’…먹거리 돌봄을 전국 표준으로
“건강한 식단은 사회적 처방전입니다.”
행복도시락 최준 사무국장의 말이다. 행복도시락은 기획재정부 1호 사회적협동조합으로, 취약계층에게 균형 잡힌 도시락을 제공하는 기업이다. 이들은 단순한 배식이 아니라 ‘존엄성을 보여주는 건강한 식단’을 지향한다.
이번 성숙기 사업에는 전국 행복도시락 센터가 참여해, 통합돌봄 대상자를 위한 노인 표준식단 40종을 공동 개발했다. 사실 진짜 목표는 따로 있었다. 지역별 격차가 큰 먹거리 돌봄 품질을 전국적으로 표준화하는 것이다.

현재 전국 약 200곳의 자활센터 중 상당수는 영양사를 두지 못해 균형 잡힌 식단 제공이 어렵다. 행복도시락은 이러한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먹거리돌봄 기본사회 전국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자활센터·행복두끼 수행기관 등 다양한 조직이 참여하는 공동사업이 시작됐고, 교육·매뉴얼·품질 기준을 전국 단위로 확산하는 기반이 마련되고 있다.
최 사무국장은 “건강한 식단은 단순히 먹거리 문제를 넘어 개인과 지역사회의 건강과도 연결돼있다”며 “과학적이고 표준화된 식단 기준을 확산시켜 통합돌봄의 질을 높이겠다”고 밝혔다.
다만, 협업 기반 생태계를 더 넓혀야 한다는 과제는 남아 있다. 장용석 연세대 교수는 “협업이 지속되려면 조직 내부에 시간과 인력 여력을 확보하는 것이 필수”며 “사회적기업진흥원과 같은 중간지원조직도 촉진자 역할을 더욱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승국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 원장은 “이번 사업으로 사회적기업들이 개별 역량을 넘어 협업 기반으로 교육·돌봄·식단 등 다양한 분야에서 시장 경쟁력을 갖출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어 “앞으로도 경쟁력을 갖춘 사회적기업이 더 큰 경제·사회적 가치를 창출할 수 있도록 지원을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채예빈 더나은미래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