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나은미래 x 희망친구 기아대책 공동기획]
우리는 N년째 항해 중입니다 <2> 비자가 허락한 꿈만 꿀 수 있는 청년들
한국에서 태어나거나 자란 이주배경청년들은 자신을 ‘한국 사회의 구성원’으로 여긴다. 그러나 사회는 여전히 그들을 낯선 시선으로 바라본다. 법적으로는 외국인, 정서적으로는 이방인 사이 어딘가에 서 있는 셈이다.
대부분 부모의 비자에 동반된 상태로 한국에 정착하지만, 성인이 되는 순간 그 자격은 효력을 잃는다. 이후에는 스스로 비자를 새로 취득해야 한다. 그 절차는 단순한 행정이 아니라, 앞으로의 삶을 설계하는 출발점이 된다. 이에 따라 진학과 취업의 선택지도 갈린다.
<더나은미래>가 심층 인터뷰한 이주배경청년 7명은 짧게는 9년, 길게는 22년 동안 한국에서 살아왔다. 현재 체류 자격은 유학(D-2), 재외동포(F-4), 영주(F-5) 등으로 다양하다. 7명 중 2명은 이미 귀화를 마쳤다. 공통점은 ‘부모를 따라 한국에 왔다’는 점이다.
안지영 사단법인 피난처 매니저는 지난 9월 희망친구 기아대책이 주최한 ‘2025 이주배경아동, 사회적 연결을 위한 6가지 시선’ 포럼에서 “부모의 비자 종류에 따라 아동의 체류 자격이 결정된다”며 “결혼이민자나 북한이탈주민 자녀는 국적 취득 기회가 있지만, 그 외의 아동들은 대회 출전, 장학금, 인턴십 등에서 배제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그는 “이들을 단순히 ‘이주배경’으로 묶기보다 상황별 접근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같은 또래 한국 청년에게 대학 진학이나 이직은 단순한 선택이지만, 이주배경청년에게는 신분이 걸린 결정이다. 휴학이나 진로 변경이 체류 자격 상실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제도가 이들의 삶을 직접 규제하는 구조다.
◇ “작가가 되고 싶지만, 비자가 허락하지 않아요”
“작가가 꿈이라 웹소설을 연재하고 있어요. 예전에 출판사에서 계약 제안을 받았지만, 그때는 ‘미등록 이주아동’ 신분이라 불가능했죠. 지금은 유학비자(D-2)로 국어국문학과에 재학중인데, 졸업 후엔 또 새로운 비자를 받아야 해요. ‘작가’는 체류 자격 요건에 포함되지 않거든요.”
박승민(21·가명)씨는 “매번 새로운 사례를 만들어야 하는 느낌”이라고 했다. 졸업이 다가오자, 다음 체류 자격을 찾아야 하는 과제가 남았다. 꿈을 지키기 위해서다.
이주배경청년이 선택할 수 있는 체류 자격은 세 가지로 나뉜다. 첫째는 학업 목적 비자다. 유학(D-2)과 연수(D-4) 비자는 대학과 어학연수 과정을 위한 체류 자격으로, 학기 중 근로는 주 20시간(석사 이상은 30시간)까지만 허용된다. 졸업 후 전공과 관련된 분야에서만 취업이 가능하며, 그렇지 않으면 최대 2년짜리 구직비자(D-10)로 전환해야 한다. 단순노무직은 불가능하다.

둘째는 거주 목적 비자다. 거주(F-2)나 영주(F-5) 비자는 대부분의 직종에서 근무할 수 있지만, 발급 요건이 까다롭다. 일정 수준의 소득, 체류 기간, 한국어 능력 등을 충족해야 한다.
셋째는 특수형 비자다. 재외동포(F-4)는 한국계 외국인에게 부여되며 취업이 가능하지만 일부 직종은 제한된다. 특정활동(E-7)은 전문 지식이나 기술을 가진 외국인에게 부여되며, 법무부가 지정한 대학 강사, 번역가∙통역가, 의료 코디네이터 등 92개 전문 직종에서만 취업할 수 있다.
올해 4월 신설된 국내성장인력(E-7-Y)은 한국에서 성장한 외국인 청년(만 18~24세)을 위한 제도로, 18세 이전 7년 이상 국내에 체류하고 초·중·고교를 한국에서 졸업했다면 대학 진학 여부와 관계없이 취업이 가능하다. 인구감소 지역에 4년 이상 거주한 경우에는 지역특화 우수인재(F-2-R) 자격으로 정주 기회를 부여한다.
◇ 체류를 위한 선택, 진로는 뒤로 밀렸다
체류 자격은 단순한 ‘거주 허가’가 아니라,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결정짓는 제도적 장치다. 언뜻 선택지가 많아 보이지만, 비자 조건이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진로를 설계할 수 있다.
몽골 출신 유학생 A씨는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며 석사 과정을 마쳤다. 졸업 후 구직비자(D-10)를 받았지만 체류 기간이 짧아 매번 연장을 반복해야 했다. “비자를 보장해준다는 회사에 취업했는데, 알고 보니 전환이 불가능했어요.” 한 달 만에 회사를 그만두고 다시 학교로 돌아왔다. “공부가 목적이 아니라, 체류를 유지하기 위한 선택이었어요.”
한국노동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2010~2015년 이주배경청년은 비이주배경청년에 비해 관리자·전문가·사무직·서비스직 진출 확률이 3~4%p 낮았다. 반면 기능직(4.9%p), 단순노무직(1.5%p) 비율은 더 높았다. 미취업 확률도 3.7%p 높았다.
“중학교 1학년 때 한국에 왔어요. 컴퓨터 전공으로 외국인 전형에 합격했을 땐 ‘이제 꽃길이다’ 싶었죠. 그런데 졸업 후 2년 안에 취업하지 못하면 본국으로 돌아가야 한대요. 결국 4대 보험 들어주는 안정적인 회사만 찾게 됩니다.” (한국노동연구원 ‘이주배경 청년의 노동시장 이행 연구’ 중 전문가 A씨)
권오영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원하는 직종이 있어도 체류 자격상 인정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포기하는 경우가 많고, 인정되는 일자리를 찾기도 쉽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미성년 시절 부모를 따라 입국한 이주배경청년은 성인이 되는 순간 동반비자 자격이 사라져, 스스로 체류 자격을 감당해야 하는 현실에 놓인다”고 덧붙였다.
이어 “현행 비자 제도는 한국에 장기 정착을 희망하는 이주배경청년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하고 있다”며 “인구감소 시대를 걱정하면서도, 정작 한국에서 자라 한국문화를 이해하는 청년들의 체류 안정은 여전히 제도 밖에 머물러 있다”고 지적했다.
김규리 더나은미래 기자
김지영 더나은미래 인턴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