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테크에 150조 풀리는데…왜 기업은 여전히 돈이 없나

기후테크 기업들이 초기 투자 이후 실증과 대규모 설비투자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정부 재정이나 민간 투자 어느 한쪽에만 의존하기보다 정책금융과 민간자본, 국제기후재원이 위험을 나눠 부담하는 금융 구조가 필요하다는 제언이 나왔다.

현대차 정몽구 재단과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 국가녹색기술연구소(NIGT)는 지난 12일 서울 명동 온드림 소사이어티에서 ‘제2회 AI 시대의 기후테크 혁신 포럼’을 열고 기후테크 산업의 성장 단계별 자금 조달 방안을 논의했다.

이번 포럼의 핵심 화두는 ‘돈은 늘고 있는데 왜 기후테크 기업의 자금난은 계속되는가’였다.

기후테크 분야로 유입되는 공공 자금의 규모 자체는 커지고 있다. 정부는 올해 기후대응기금 운용 규모를 역대 최대인 2조9000억 원으로 확대했다. 첨단전략산업에 5년간 150조 원을 공급하는 국민성장펀드도 조성해 재정이 후순위로 손실을 우선 부담하는 방식으로 민간자본의 참여를 유도하고 있다.

국회에 발의된 ‘기후테크 산업 육성 및 혁신 생태계 조성에 관한 특별법안’에는 기후가치평가와 기후테크전문투자조합, 금융지원에 관한 내용도 담겼다. 기술개발 지원을 넘어 기후테크 산업을 금융시장과 연결하려는 제도적 기반이 만들어지고 있는 셈이다.

문제는 자금의 ‘규모’보다 ‘연결’에 있다는 것이 이날 논의의 공통된 진단이었다. 기후테크 기업은 연구개발 단계에서 정부 지원이나 초기 벤처투자를 받을 수 있지만, 기술을 실제 현장에 적용하는 실증 단계와 공장을 짓고 생산설비를 확대하는 스케일업 단계로 넘어갈수록 필요한 자금의 규모가 급격하게 커진다. 반면 이 시기에는 아직 매출과 수익성이 충분히 입증되지 않아 민간 금융이 위험을 부담하기 어렵다.

이날 주제발표에 나선 곽상훈 한동대학교 교수는 ‘기후테크 혁신생태계 조성을 위한 금융의 역할’을 주제로 기후테크 성장 과정에서 금융이 담당해야 할 역할을 짚었다. 이어 지현석 소풍벤처스 파트너는 ‘기후테크 분야의 민간 투자 현황 및 활성화 방안’을 발표하며 실제 투자 현장에서 기후테크 기업을 바라보는 기준과 자금 조달의 한계를 설명했다.

종합토론에서는 ‘누가 어느 위험까지 감당할 것인가’가 주요 쟁점으로 다뤄졌다. 윤지웅 과학기술정책연구원장이 좌장을 맡고 지광철 재정경제부 초혁신경제추진단장, 이제석 녹색기후기금(GCF) Specialist, 박용진 KIS자산평가 상무, 심채윤 한국투자증권 과장, 지현석 소풍벤처스 파트너, 곽상훈 교수가 참여했다.

논의는 크게 세 갈래로 이어졌다. 먼저 초기 시장 형성 과정에서 정책금융이 어느 수준까지 위험을 부담하고, 어느 시점부터 민간 금융이 참여할 것인지가 다뤄졌다. 정부 자금이 민간 투자를 대체하기보다 민간이 감당하기 어려운 초기 위험을 먼저 떠안아 후속 투자를 끌어내는 ‘마중물’ 역할을 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다.

기후테크 기업의 가치를 어떻게 평가할지도 주요 과제로 제시됐다. 기존 재무지표만으로는 아직 시장이 형성되지 않은 기술의 탄소감축 효과나 미래 사업성을 제대로 반영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정부가 도입을 추진하는 ‘기후가치평가’ 역시 단순히 정책 지원 대상을 가려내는 기준에 머무르지 않고, 금융기관과 투자자가 실제 투자 판단에 활용할 수 있는 신뢰도 높은 평가체계로 발전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국내 자본만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대규모 기후 프로젝트에 국제기후재원을 어떻게 연결할 것인지도 논의됐다. 녹색기후기금(GCF)과 같은 국제기후재원을 국내 기후테크 기업의 해외 실증과 시장 진출 과정에 연계한다면 기업의 성장자금을 확보하는 동시에 글로벌 시장 진입 가능성도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기후테크 금융의 관건은 개별 자금원을 늘리는 데 그치지 않고 연구개발부터 실증, 스케일업, 투자금 회수까지 성장 단계에 맞춰 자금이 끊기지 않도록 연결하는 데 있다는 데 의견이 모였다.

정무성 현대차 정몽구 재단 이사장은 “기후테크는 기술의 가능성이 확인되더라도 이를 뒷받침할 자금이 제때 연결되지 않으면 시장에 도달하기 어렵다”며 “정책금융과 민간자본, 국제기후재원이 각자의 역할을 나누면서도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지는 기후금융 생태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번 포럼은 현대차 정몽구 재단과 과학기술정책연구원, 국가녹색기술연구소가 7월부터 9월까지 세 차례에 걸쳐 진행하는 ‘AI 시대의 기후테크 혁신 포럼’의 두 번째 행사다. 1회 포럼에서는 기후테크 혁신을 위한 공공·민간 협력(PPP)을 다뤘으며, 이번 2회에서는 이를 작동시키기 위한 금융 구조에 초점을 맞췄다. 오는 9월 열리는 3회 포럼에서는 앞선 논의를 바탕으로 제도와 입법 과제를 구체화할 예정이다.

이날 행사에는 최재호 현대차 정몽구 재단 사무총장, 윤지웅 과학기술정책연구원장을 비롯해 기후테크 분야 연구자와 기업, 금융·투자기관, 정책 관계자 등 60여 명이 참석했다.

조유현 더나은미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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