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재단 ‘신뢰 기반 지원’ 적극 적용 5곳뿐…운영비 20% 벽 여전 

2026 기업공익재단 리포트<3>
기업공익재단 21곳 중 15곳, 인건비·운영비 사용 20% 이하
전문가 “인건비·조직 역량 투자 없인 지속가능성 떨어져” 

최근 필란트로피 영역에서는 현장 조직에 지원금 사용에 있어 큰 재량을 주고, 복잡한 정산과 보고 부담을 줄이는 ‘신뢰 기반 지원’이 논의되고 있다. 국내 기업공익재단에서도 이를 일부 도입한 곳이 적지 않지만, 현장 조직이 지원금을 인건비와 운영비로 활용할 수 있는 범위는 여전히 제한적인 경우가 많았다.

신뢰 기반 지원은 사업 목적과 예산 항목을 세세하게 지정하기보다 현장 조직의 판단을 존중하고, 다년간 포괄적인 재원을 제공하는 방식이다. 사업비뿐 아니라 단체의 인건비와 운영비를 인정하고 신청·보고 절차를 간소화하는 것이 핵심이다.

21개 기업공익재단 가운데 신뢰 기반 지원을 ‘이미 일부 사업에 적극 적용하고 있다’고 답한 곳은 아산나눔재단, 이랜드재단, CJ나눔재단, DB김준기문화재단, SK행복나눔재단 등 5곳(23.8%)이었다.

일부 요소만 제한적으로 적용한다고 답한 곳은 삼성복지재단, 유한재단, 하나금융나눔재단, IBK행복나눔재단 등 4곳이었다. 반면 아직 구체적으로 검토하지 않았다는 곳은 10곳(47.6%)이었다. 

◇ 운영비 30% 이상 허용 1곳, 보고서·정산 방식은 다양 

외부 비영리단체에 사업비를 지원할 때 일반 인건비나 단체 운영비로 사용할 수 있는 비율을 물은 결과, 10곳(47.6%)이 ‘10~20%’라고 답했다. 5곳(23.8%)은 10% 미만이었다. 전체 조사대상 21곳 가운데 15곳(71.4%)이 운영비 사용 비율을 20% 이하로 두고 있는 셈이다. 30% 이상을 허용한 곳은 IBK행복나눔재단 한 곳이었고, 삼성복지재단·이랜드재단·SK행복나눔재단 등 3곳은 제한 없이 단체 자율에 맡긴다고 답했다. 

삼성복지재단은 사업마다 필요한 인력과 운영비 구조가 다르다는 점에서 일률적인 비율을 두기보다 파트너 단체의 판단을 존중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재단 관계자는 “사업 목표와 예산 범위를 충분히 협의한 뒤에는 파트너가 사업 특성과 조직 상황에 맞게 예산을 구성할 수 있도록 자율성을 부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재단은 이런 자율성을 부여하기에 앞서 파트너의 전문성과 실행 역량을 중요하게 본다고 했다. 재단은 “신뢰 기반 지원이 책임의 완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라면서 “지원 전에 기관의 단기적인 성과뿐 아니라 해당 분야의 전문성과 실행 역량, 조직의 안정성과 투명성, 현장과의 관계 등을 종합적으로 살핀다”고 덧붙였다. 

보고와 정산은 재단별로 차이를 보였다. 8곳(38.1%)은 영수증 등 회계 증빙을 확인하되 성과보고서는 5~10장 내외로 요구한다고 답했다. 삼성복지재단, 신협사회공헌재단, 예강희망키움재단, DB김준기문화재단, SK행복나눔재단 등 5곳(23.8%)은 정형화된 틀 없이 파트너 단체의 자체 양식이나 인터뷰를 활용한다고 했다. 아산나눔재단과 현대차정몽구재단은 외부 회계감사로 정산 증빙을 갈음하고 핵심 성과를 중심으로 보고받는다. 

반면 건별 영수증 원본을 대조하고 20장 이상의 정성·정량 성과보고를 요구한다고 응답한 곳은 KB금융공익재단 한 곳이었다. KB금융공익재단은 신뢰 기반 지원의 어려움에 대해 ‘사업 성과 측정의 어려움’을 꼽았다. 그러면서 “절차를 간소화하더라도 공익법인으로서의 법령상 의무와 재원 집행의 투명성에 대한 요구를 함께 충족할 수 있는 균형점을 찾고 있다”며 “공익 분야 전반의 논의와 제도 환경의 변화를 살펴보면서 개선할 부분이 있는지 지속적으로 검토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 법·제도·책임성 우려 10곳…“사업비 넘어 조직에 투자해야” 

기업공익재단들은 신뢰 기반 지원을 확대하기 어려운 이유로 ‘지원기관의 책임성·투명성에 대한 우려’(10곳)와 ‘공익법인 관련 법·제도 및 규제’(10곳)를 가장 많이 꼽았다. 이어 내부 회계·감사 기준(7곳), 사업 성과 측정의 어려움(4곳) 순이었다.

전문가들은 신뢰 기반 지원의 핵심이 비영리조직의 역량을 키워서 장기적인 사회문제 해결로 이어질 수 있게 하는 것이라고 제언한다. 

신현상 한양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는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결국 사업 자체가 아니라 사람과 조직”이라며 “사업비는 지원하면서도 좋은 인재를 채용·유지하기 위한 인건비나 조직 역량을 높이는 운영비에는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면 장기적으로 비영리조직의 역량과 사업의 지속가능성까지 약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2016년 SSIR 아티클에 소개된 브리지스팬(Bridgespan)의 분석을 언급했다. 우수 비영리조직 20곳의 비용 구조를 분석한 결과, 사업에 직접 투입되는 비용 대비 인건비·행정비 등 조직 운영에 필요한 비용이 40% 수준이었다는 것이다.

신 교수는 “한국에서도 지원금의 30% 정도는 인건비와 조직 운영, 인재 육성, 디지털 인프라 등 조직 역량 강화에 유연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검토할 필요가 있다”며 “중요한 것은 운영비를 얼마나 적게 썼느냐가 아니라 그 조직이 사회문제를 해결할 역량을 얼마나 갖췄느냐다”라고 말했다. 이어 “명확한 목표와 성과에는 책임을 묻되, 목표에 도달하는 방법과 자원 배분은 현장을 가장 잘 아는 비영리조직에 더 맡길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조유현·채예빈 더나은미래 기자 

관련 기사

댓글 작성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