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기업공익재단 리포트<9>
현장 파트너의 자율성 보장하고 관계 중심 성과관리
위기에 처한 가정을 가장 먼저 발견하고, 어떤 지원이 필요한지 정확히 파악할 수 있는 사람은 지역에서 활동하는 사회복지사나 봉사자들이다. 이랜드재단과 이랜드복지재단은 이러한 현장의 전문성과 판단을 공익사업의 핵심 원칙으로 삼고 있다. 재단이 일방적으로 지원 대상과 사업 방식을 결정하기보다 지역 복지기관과 비영리단체, 봉사자들이 축적해 온 경험과 관계망을 적극 활용하는 방식이다. 일부 긴급지원 사업에서는 현장 봉사자에게 지원 결정권까지 위임하고, 외부 비영리단체에는 인건비와 운영비도 유연하게 지원하며 현장의 자율성을 보장하고 있다.
이랜드재단 관계자는 최근 <더나은미래>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무엇을 이룰지는 함께 정하되, 어떻게 이룰지는 현장이 가장 잘 안다”며 “기준은 함께 세우고, 실행은 맡기고, 소통은 끊지 않는 것이 우리가 생각하는 신뢰 기반 지원”이라고 설명했다.
◇ 위기가정 발견·지원 결정 등 현장에 권한 맡긴 ‘SOS위고’

이랜드복지재단의 위기가정 지원사업 ‘SOS위고(SOS WE GO)’는 현장 중심 지원 방식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전국 지방자치단체와 읍·면·동 행정복지센터, 종합사회복지관 등 지역 복지기관, 교회 및 SOS위고봉사단과 협력해 복지사각지대에 놓인 위기가정을 발굴하고 지원한다.
지자체와 복지기관은 행정정보와 사례관리 전문성을 바탕으로 위기가정을 발굴·연계하고, 전국 약 120명의 SOS위고봉사단은 지역사회에서 위기 징후를 찾아낸다. 봉사단은 사회복지 실천가, 지역 활동가, 교수 등 다양한 분야의 시민으로 구성돼 있다. 이후 전문 현장매니저가 직접 가정을 방문해 위기 상황과 필요한 지원을 확인하고, 재단은 이들의 현장 판단을 토대로 지원 여부와 규모를 결정한다.
보호자의 돌봄 없이 약 두 달간 생활하던 미성년자 형제자매를 발견한 사람도 SOS위고봉사단으로 활동하던 박승호 포천 하랑센터 목사였다. 엘레나(가명)와 동생들은 아버지가 집을 떠난 뒤 적절한 돌봄을 받지 못한 채 지내고 있었다. 박 목사가 이들의 어려움을 발견해 재단에 연결하면서 주거비 300만 원과 생계비 240만 원 등 총 540만 원의 지원이 이뤄졌다.
긴급생필품과 긴급의료비도 현장 봉사자에게 지원 결정권을 위임했다. 현장에서 즉각적인 도움이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SOS위고카드’로 직접 결제할 수 있다. 다른 지원 항목은 현장 파트너의 의견과 전문 현장매니저의 실사 결과 등을 종합해 재단이 최종 결정한다.
이랜드복지재단 측은 “위기 상황에서는 개입이 늦어질수록 어려움이 심화될 수 있다”며 “현장에 있는 협력기관과 봉사자들은 이웃의 어려움을 가까이에서 가장 잘 이해하고, 필요한 도움을 연결하며, 지원 이후의 변화까지 함께 살피는 동반자”라고 설명했다.
사업의 또 다른 핵심 중 하나는 지원 속도다. 긴급 물품은 24시간 이내, 생계·주거·치료비는 3일 이내 지원할 수 있는 체계를 운영한다. 가정별 상황에 따라 생계비와 주거비, 치료비, 자립비 등을 조합해 최대 700만 원까지 지원한다. 재단이 2025년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2024년 한 해 동안 지원한 약 1200가정 중 약 300가정에는 긴급 물품을 24시간 이내 전달했다.
실제로 손자와 함께 열악한 주거환경에서 생활하던 이정욱 씨(가명)는 국민임대주택 입주 대상자로 선정됐지만 보증금을 마련하지 못해 이사하지 못하고 있었다. SOS위고에 지원을 신청한 뒤 불과 3일 만에 입주보증금을 지원받아 새로운 집으로 옮길 수 있었다.

지원금 지급 이후에도 지역 복지기관과 교회, 봉사단이 후속 돌봄을 이어가며 위기가정의 일상 회복과 자립을 돕는다. 재단은 인공지능(AI) 기반 시스템을 활용해 위기지표 자가진단과 신청정보 분석, 심사자료 요약 등을 지원하는 등 현장 판단을 뒷받침하는 심사 체계도 운영하고 있다.
◇ “운영비·인건비도 지원”…비영리단체의 자율성 보장
이랜드재단의 ‘돕돕 프로젝트’는 현장 기관의 자율성을 존중하는 신뢰 기반 파트너십을 실천하고 있다. 돕돕 프로젝트는 ‘돕는 자를 돕는다’는 의미로, 가정 밖 청소년과 자립준비청년 등 복지사각지대에 놓인 미래세대를 지원하는 비영리단체를 발굴하고 돕고 있다. 2025년 기준, 총 61개 비영리단체를 지원했으며, 이를 통해 아동·청소년과 청년 1만7810명에게 맞춤형 지원을 제공했다.
일반적인 공모사업에서는 지원금의 사용처가 특정 사업비로 제한되거나, 인건비와 기관 운영비의 사용 비중이 정해져 있는 경우가 많다. 반면 이랜드재단은 사업 목적과 단체의 상황에 따라 지원 방식을 유연하게 결정한다. 재단은 “외부 비영리단체가 지원금을 일반 인건비나 운영비로 사용하는 데 별도의 비율 제한을 두지 않는다”고 답했다. 다만 모든 단체에 일률적으로 운영비를 지원하는 것은 아니다. 재단의 사명과 맞닿아 있고 자립 기반이 약한 단체에는 개별 사업비뿐 아니라 조직 운영에 필요한 인건비와 운영비 자체를 지원한다는 설명이다.
지원 방식이 유연하다고 해서 성과관리까지 생략하는 것은 아니다. 재단은 지원에 앞서 단체의 고유한 사명과 실제 활동이 얼마나 부합하는지 검토하고, 성과지표(KPI)와 역할, 책임을 함께 정한다. 이후 구체적인 실행 방식은 현장에 맡기되 정기적인 대화로 사업의 진척 상황과 어려움을 확인한다.
이랜드재단 관계자는 “현장을 깊이 알지 못하면 그 파트너십에 맞는 기준을 세울 수 없다”며 “어디까지 믿고 맡길지는 현장을 얼마나 아느냐에 따라 결정된다”고 말했다.
이러한 방식이 처음부터 순조로웠던 것은 아니다. 재단은 특히 회계 정리나 결과보고서를 작성해 본 경험이 없는 소규모 비영리단체와 협력하면서 현장의 자율성과 기부금 집행의 투명성 사이에서 고민했다고 밝혔다. 재단은 일률적인 서류 제출을 요구하기보다 현장 활동가들과 지속적으로 소통하며 단체의 운영 방식에 맞는 관리 방법을 함께 찾아갔다.
가정 밖 청소년과 거리 위기 청소년을 지원하는 한 비영리단체와의 협업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 단체는 거리에서 청소년들을 직접 만나 상담과 돌봄을 제공하며 장기간 신뢰 관계를 쌓아왔다. 그러나 현장에서 긴급한 지원이 필요한 상황에 대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청소년에게 당장 식사를 제공하거나 병원에 데려가고, 교통비를 지원해야 하는 일이 수시로 발생했지만, 매번 내부 결재와 증빙 절차를 거치기 어려워 활동가들이 사비로 비용을 부담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에 이랜드재단은 해당 단체와 협의해 지원금 집행 방식을 조정했다. 사전에 지출 가능한 항목과 범위를 정하고, 그 안에서는 증빙 부담을 줄여 현장 상황에 맞춰 신속하게 지원할 수 있도록 했다. 대신 결과보고는 영수증 등 지출 내역뿐 아니라 지원받은 청소년의 실제 변화에 초점을 맞췄다. 단체가 사례관리를 통해 파악한 청소년들의 변화를 재단과 공유하고, 이를 다음 지원에 반영하는 방식이다.
재단 측은 “정기적인 대화를 통해 성과뿐 아니라 어려움까지 솔직하게 나누는 관계가 서류보다 더 확실한 투명성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조유현 더나은미래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