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나은미래 x 희망친구 기아대책 공동기획]
우리는 N년째 항해 중입니다 <3> ‘정보 격차’에 갇힌 이주배경청년들
“비자 매뉴얼이 너무 자주 바뀌어요. 생계와 직결된 문제인데, 바뀔 때마다 갑자기 법의 보호 밖으로 밀려날 수도 있어요. 그런데 이런 변경 사항이 제때 전달되지 않습니다. 저도 제가 가진 비자로 제한된 직종에서 시간제 근로가 가능하다는 걸, 시행 6개월이 지나서야 알았어요.”
13살 때 중국에서 한국으로 이주해 성인이 된 뒤 F-4(재외동포) 비자를 받은 김지영(22)씨의 말이다. 그는 법무부 외국인 지원 포털 ‘하이코리아’에 들어가 “정확한 상담을 원하면 1345에 전화하라”는 안내 문구를 보고 전화를 걸었다. 오랜 대기 끝에 연결된 상담원은 “F-4 비자 소지자의 세금 신고는 우리 관할이 아니다”라며 고용노동부로 문의하라고 했다.
아르바이트 근무가 어려우니 중국어 과외라도 해볼 생각으로 “그럼 과외는 가능하냐”고 묻자 돌아온 대답은 “단순노무직이 아니면 괜찮다”는 식의 모호한 설명이었다. 결국 김씨는 스스로 법무부 매뉴얼을 찾아 하나씩 확인해야 했다. 그는 “한국어가 어려운 청년이라면 절대 혼자 해결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 제도는 있는데, 정보가 닿지 않는다
이주배경청년은 수시로 바뀌는 제도 속에서도 그 변화를 따라잡기 어렵다. 지원책이 있어도 정보 접근 경로가 제한적이고, 이들을 연결해주는 네트워크가 거의 없다. 결국 ‘있는데 모르는’ 상황이 반복된다. 지난 8월, 직장 인근 여의도에서 만난 정세원(27·가명)씨는 “사실 ‘이주배경청년’이란 말을 오늘 처음 들었다”며 “그런 단어를 몰랐으니, 나에게 해당되는 지원이 있다는 것도 몰랐다”고 말했다.
‘정보 장벽’은 단순한 행정 절차의 복잡함에서 비롯된 문제가 아니다. 사회적 연결망의 부재, 즉 정보를 전달하고 해석해주는 ‘사람과 구조’의 부재에서 시작된다. 제도와 정책이 마련되어도, 그 내용을 실제로 안내하고 활용할 수 있도록 돕는 연결고리가 없다.

하신아(25)씨가 가장 필요한 지원으로 꼽은 것도 ‘정보 연결’이었다. “사이트나 프로그램을 알려주는 게 많으면 좋겠어요. 이주배경 청년들끼리 정보를 나눌 수 있는 그룹도 있으면 좋고요. 그런데 직접 찾지 않으면 몰라요. 어딘가에서는 하고 있을지도 모르는데, 저는 아예 몰랐어요.”
◇ 청년의 불안은 ‘정보의 단절’에서 시작된다
정보의 부재는 단순한 불편을 넘어 진로와 생계의 불안정성을 키운다. 비자, 취업, 직업훈련 등 핵심 영역의 정보를 제때 얻지 못하면, 준비 과정 전체가 불확실해진다.
한국노동연구원의 ‘이주배경 청년의 노동 시장 이행 연구(2024)’에 따르면, ‘일자리를 구할 때 예상되는 어려움’으로 가장 많이 꼽힌 항목은 ‘취업 등에 대해 상의할 사람을 찾는 것(69.5%)’이었다. 이어 ‘나의 전공이나 경력, 흥미에 맞는 일자리를 찾는 것(68.8%)’, ‘취업 및 일자리 정보를 얻는 것(63.8%)’, ‘취업에 필요한 교육이나 직업훈련을 이용하는 것(60.7%)’ 순이었다.

탐색의 기회를 놓친 이들은 결국 불안정한 일자리로 내몰린다. 같은 연구에서, 생애 첫 일자리는 평균 22.5세에 시작해 68%가 비정규직이었고, 월평균 소득은 157만 원, 4대 보험 가입률은 46.3%에 그쳤다. 탐색 없이 진입한 첫 일자리의 질이 낮을수록 이후에도 비슷한 고용 형태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경향이 확인됐다.
이아서(26)씨는 “지원책이 있더라도 어디서 신청해야 하는지도 모른다”며 “지금은 마치 ‘물고기를 낚으라’ 하면서 낚싯대만 건네주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이주배경청년과 정책을 이어주는 중개인 같은 역할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법무부는 지난해 9월, ‘국내 성장 기반 외국인 청소년’을 대상으로 교육권과 취업·정주권을 확대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그동안 한국에서 자란 외국인 청소년은 성년이 되면 부모의 비자 효력이 사라져, 대학 진학(D-2) 외에는 합법적인 체류 수단이 거의 없었다. 이에 법무부는 고등학교 졸업만으로도 구직·연수(D-10)나 취업(E-7-Y) 비자를 신청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하고, 인구감소지역 장기 정주자를 위한 우수인재(F-2-R) 비자도 신설했다.
하지만 시행 반년이 지난 지금, 현장의 체감도는 여전히 낮다. 대부분의 청년이 제도의 존재조차 알지 못했고, <더나은미래> 취재 결과 올해 신설된 취업(E-7-Y) 비자 발급 건수도 7건에 그쳤다.
법무부 관계자는 “통상적으로 자격 비자의 경우 연말과 연초에 집중적으로 발급되는 경향이 있어, 4월 시행 이후 학기 중에는 발급 건수가 많지 않다”며 “연말·연초 발급 현황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제도 개선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어 “현재는 비자 관련 사항을 교육청을 통해 안내하고 있으나, 앞으로는 이주배경 관련 기관이나 센터 등을 활용해 청소년 눈높이에 맞는 홍보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김규리 더나은미래 기자
김지영 더나은미래 인턴기자





















